선산엔 5대조 조상님…
내 고향, 아린 기억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석이 가까워져 고향 선산 성묫길에 나섰다. 고속버스가 종착역에 도착했다. 고향까지는 시외버스로 1시간이상이 소요되고, 그곳에서 선산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했기에 마음이 바빠 왔다. 서둘러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 않아, 낯설었다. 마침, 안내 조끼를 입은 60대 후반의 안내원이 서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갈려면 어디로 가지요?” “저기로 가서 저리로, 그리고...” 짜증이 잔뜩 섞인 말투에 역정까지 가미되어 있었다.

이 시대는 어디에서나 화(火)기가 가득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불만,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恨)일까, 아니면 사회에 대한 저만의 분노일까?

나는 심히 불쾌했지만 “영감님, 길을 물어 죄송해요.” 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는 야릇하면서 겸연쩍은 듯한 감정도 포함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언행이 상대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를 모르는 바보 같아 보였다.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년부턴 절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작정했다.

고향에는 친 인척이 한 사람도 없다. 하여 선산 돌보는 것도 우리 대(代)에 끝이 아닐까 하는 쓸쓸함도 있다. 한 집안의 흥망성쇠는 자손들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국가의 운명에 부침하기도 한다. 선산에는 5대조까지 조상들을 모셨다. 선대 조부모님 한분은 동학혁명에 수성군에 참여하여, 동학 농민군에 참수 당하셨다.

1894년 동학혁명은 고부 군수였던 조병갑의 비리와 학정으로 농민들의 원성이 커졌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봉기해 관아를 습격했다. 횡포를 일삼던 아전들을 처벌하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보국안민 척왜양창”을 기치로 내걸고 남도땅을 휩쓸고 다녔다. 농민군은 그해 11월 공주 우금치 전투와 태인 전투에서 패배하고 급격히 쇠락한다. 지도부였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체포되고 구심점을 잃은 농민군들은 나주와 화순을 지나 장흥으로 모여 들었다.

동학의 장흥 접주였던 이방언(1838-1895)을 중심으로 농민군(1만~3만명)이 집결하여 장흥읍 석대들에서 전투를 한다.

12월 3일 전투를 시작하고, 12월 4일 장흥 벽사역(장흥읍 원도리)과 장흥부(장흥읍 동동리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당시 수성군이었던 96명이 체포되어, 장흥 서초등학교 근처(쇠전머리)에서, 모두가 참수 당했다.

반외세·반봉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세상을 뒤집으려 했으나, 이런 성과는 잠시였고, 동학농민 혁명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된다. 수많은 농민군이 희생됐다. 이 혁명은 아이러니하게 결국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장흥(고향)은 124년 전부터, 슬픈 역사를 지닌 비극적인 지역이다. (피아간 사상자가 2000명이 넘었다.)

수성군 넋을 기리는 사당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르지만, 읍내 남산공원 아래 영회당(永懷當)이었다. 어린날 모친을 따라 추모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해방이후, 고향 장흥은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불리울 정도로 “좌우의 이념” 대립이 극심한 지역이었다. 격동의 역사를 처절하게 치른...

우리 집안은 6.25전쟁으로 거의 가족이 해체돼버렸다. 동학,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혹독하게 겪어온 비운의 집안이기도 하다. 그래 고향을 찾으면 늘 참참함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상경 길에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어린 시절, 앞·뒷집으로 가족처럼 지냈던 박건수 형이다. 우리 집안의 사정을 잘 알아, 나와는 지금도 애틋하게 지내고 있다.

故鄕回想 고향회상
吾鄕耽津江寧岸 오향탐진강녕안
白雲飛下水淸靑 백운비하수청청
愛弟釣魚黃醬樂 애제조어황장락
今日魚群躍遊戲 금일어군약유희
故時回想哀落淚 고시회상애락루
何時再歸慕江山 하시재귀모강산

내 고향 탐진 강녕안
힌구름 나는 아래 물은 맑고 푸르러
사랑하는 아우와 고기 낚아 된장에 찍어 즐겼네
오늘도 고기떼는 뛰며 놀겠지
옛 시절 돌이켜 생각하니 애달파 눈물을 떨구네

어느 때 그리운 강산에 다시 돌아 갈가

“나는 오늘도 타향에서 맴돈다”

맹추 에

麗澤 박건수

여택 박건수형은 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잘 알려진 역학자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고향을 그리워하며 유년의 어느날 고향의 강에서 낚시질 했던 동화 같은 추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는 “천지인역경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나그네다. 영원의 길을 순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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