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상실·북한 정권의 성공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전문가 4인 공동칼럼>

대북경계심 소멸·정치적 군대·안보 무지의 정부
동맹의 상실·북한 정권의 성공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북핵 전문가 4인 공동기고>: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 김태우(전 통일연구원장) / 송대성(전 세종연구소장) / 신원식(전 합참 작전본부장)

▲ 미국 폭스뉴스가 지난 7월 보도에서 8월의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과 매년 3월에 열린 키리졸브 연습 및 독수리 훈련 무기한 연기에 관해 미국의 공식발표가 곧 있을 것이라고 보도한바 있다. <사진@방송화면 캡쳐>

‘완벽폭풍(Perfect Storm)’이란 강한 폭풍을 만들어내는 모든 요소들이 결합된 경우를 말한다. 즉, 따뜻한 저기압 공기, 찬 고기압의 공기, 열대성 습기 등이 결합되어 강풍과 폭우로 해당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경우이다. 실제로 이런 폭풍이 가끔 출몰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안보에 완벽폭풍이 불어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보수인사들의 페이스북이나 카톡에 1975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있었던 사례가 빈번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 통일까지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최악의 상황을 예견하여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정부부터 장밋빛 낙관론에 젖어 행동하고 있고, 민중의 지팡이로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가야 할 방송들은 정부의 나팔수 역할에만 충실하다. 바람은 폭풍으로, 폭풍은 완벽폭풍으로 악화되어갈 상황이 조성되고 있지 않은가?

대북경계심 소멸

완벽폭풍을 만들어 내는 최대 요소는 당연히 국민의 대북경계심 약화이다. 북한은 6.25 전쟁을 위시한 수많은 도발을 저질러왔고 지금까지 무력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이 주도하는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랬던 북한이 올리브 가지를 흔들기 시작하자 한국 국민의 상당수는 북한군을 주적(主敵)이라 부르지 않고, 북한이 적화통일을 포기한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북한의 핵무기도 조만간 폐기된다고 믿거나 동족에게 사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부 국민은 통일이 되면 우리 민족의 핵무기가 된다고 믿기도 한다. 북한의 핵무기나 적화통일 의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졸지에 ‘이상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전쟁은 표면적으로 보면 군대가 수행하는 것이지만, 승패를 결정하는 근본 요인은 국민의 전쟁수행 의지이다. 미국의 클라인(Ray Cline)은 국력은 산술적으로 나타나는 국가능력(Critical Mass, Economy, Military)에 전략(Strategy)과 의지(Will)를 합하여 곱한 것이라고 했다. “Pp(Perceived Power) = (C + E + M) x (S + W)”의 등식이다. 이 등식에 의하면 전략과 의지의 합이 제로(O)이면 국력도 제로가 된다.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전쟁론」을 번역한 영국의 군사역사학자 하워드(Michael Howard)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국가의 사회적 차원(social dimension) 즉 국민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다. 안보의 완벽폭풍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구비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 군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헌팅톤(Samuel P. Huntington)은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은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고, 대신에 정치인들이 군의 전문성(professionalism)을 보장해주는 상호작용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군대의 전쟁 준비와 수행에 내재하는 고유 논리를 정치권이 존중해주지 않으면 군대는 정치권의 시녀가 되고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군대가 된다는 지적이었다. 현재의 우리 군대가 이렇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군과 군인을 무시하고, 군의 진급과 보직 결정에 지나치게 관여하며, 장거리요격미사일(L-SAM)의 시험발사를 연기한데서 알 수 있듯이 군사력 증강에도 간섭하고 있다. 북쪽을 바라봐야할 지휘관들은 서울을 바라보고 있고, 군사적 지식보다는 정치적 감각을 구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군대는 적에게는 ‘전율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군대는 북한에 대하여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군대가 남북관계 개선에 동원되고 있고, 군대의 전투준비나 훈련이 남북관계 개선에 저해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8년 9월 19일 서명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보듯 군사적 측면에서 세부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 대비태세의 약화를 초래하는 사항들이 삽시간에 합의되었다. 합의 이후에도 문제점을 해소하거나 보완하는 노력 대신 군이 나서서 문제가 없다고 홍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제 한국군 간부들은 병사들의 ‘탈없는 전역’을 관리하는 데에만 충실하면 되고, 군사이론을 배우거나 힘든 부대훈련을 계획 및 시행하는 어려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안보의 완벽폭풍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구비되고 있지 않은가?

안보 무지의 정부

클라우제비츠는 정부-군대-국민이 삼위일체(Trinity)가 되어 전쟁을 대비·수행하는 국가가 승리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정부가 이성(reason)을 갖고 군대와 국민의 전쟁준비를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성보다 감정과 이념에 휘둘리고 북한과의 관계만 개선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자세를 고수한다면 국민의 안보경각심이 고양될 리 없고 군이 대비태세를 강화할 수도 없다. 그래서 헌법 제66조 2항에는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책무를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로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정책을 꺼린다면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삼위일체는 불가능하다. 군대는 손을 놓고, 국민들은 모르겠다면서 당장의 평화라는 사탕맛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수역이라는 이름으로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위태롭게 하고, 영토수호를 의한 군의 활동을 자제시킨다면 영토가 보전되겠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최상의 상황만 가정하면서 안보의 빗장을 풀고 있다. 안보의 완벽폭풍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구비되고 있지 않은가?

동맹의 상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국가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그 동안 전쟁을 억제하고 경제적 번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을 억제하고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겉으로는 한미동맹이 견고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70년 전통의 동맹신뢰를 침식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한 간 군사분야 합의에 서명했고, 미국이 부과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오히려 한국이 약화시키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에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책임질 수 없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할 경우 그렇게 말한 사람이 신통력으로 그 상황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6.25전쟁 직전에 한국을 포기했고, 그래서 북한이 6.25를 도발했다. 닉슨, 카터, 부시(아버지) 정부 때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고 일부 철수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은 현재 주한미군 기지, 주일미군기지, 오키나와, 괌, 알래스카 등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고, 미 본토를 공격할 잠재력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자신의 초토화를 각오하면서 이들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위협할 때 미국이 한국에게 약속한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고 싶어도 한국 정부가 요구하지 않거나 거부한다면 미국도 어쩔 수가 없다. 미국이 떠난 후에 패망 직전 남베트남 지도자들의 푸념처럼 “미국을 믿은 것이 잘못이다”라고 원망할 것인가? 안보의 완벽폭풍을 위한 요소들이 점점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북한정권의 성공

2011년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하였을 때 상당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북한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도중에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북한정권은 견고할 뿐만 아니라 핵무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일사불란하게 대남전략을 밀고 나가고 있다. 한국정부로부터는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받은 듯하고, 조만간 미국도 인정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인정하면 국제사회도 인정할 것이고, 이미 국제사회는 북한의 전과(前科)는 기억하지 않고 있으며, 교황마저 방북을 고려하고 있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국내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역량이 빛을 발한 것이고, 대외적으로도 그의 외교전략 성공한 것이다. 그는 젊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안정된 위치에서 대남전략을 일관성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세를 북한의 눈으로 보면 더욱 희망적이다. 자신들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고,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남한 정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수행해주는 대변자가 되었다. 지금도 남한의 대통령은 세계를 향하여 북한에 대한 이해와 경제제재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유엔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더라도 자력갱생 경제 하에서 북한정권은 충분히 견딜 수 있고, 오히려 주민통제에는 유리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3대혁명 역량, 즉 자체혁명역량, 대남혁명역량, 국제혁명역량 모두가 강화되고 있다. 안보의 완벽폭풍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정부의 낙관론과 방송 탓인지 이제 국민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과거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 한일합방, 6.25 때도 그러했듯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은 적화통일이 된다고 우리 모두를 죽이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 스스로가 자문해야 한다. 내가 북한정권으로서 주도적으로 통일을 달성했다면 북한 인구 2,500만 명 대(對) 남한 인구 5,000만 명이라는 인구 격차를 그대로 유지하겠는가? 베트남은 공산화 이후 20년 간 국제사회와 담을 쌓은 채 ‘내부정리’에 몰두했었다. 그 기간 동안 남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보라. 국제사회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 20년 동안 국제사회가 베트남에 개입하여 바꾼 것이 있는가? 대한민국 안보의 완벽폭풍은 너무나 무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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