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술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한해가 저문다.

무성했던 성장의 여름을 지나, 서정의 계절을 넘어 침잠과 한기가 삼라만상에 고사의 그림자처럼 감싸 오는 계절이다. 돌아보니 참 멀리까지 왔다는 사념에 차오른다. 내 지나온 세월들을 떠 올려보니 그저 고마운 일들뿐이었다. 이 날까지 내가 누리고 지탱해온 하나부터 모두가..., 가족 친지 나와 동행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힘들었던 시간들에 부추기고 끌어주던 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 나로서는 생각할수록 은혜롭기 그지없고 감사한 안팎이다. 그런데 그 무량한 보살핌 가운데, 나는 별로 겸양하지 못했고 그렇게 덕스럽지 못했다. 위세와 허풍 속에 요행 따위나 계산하는 투정이었을지 모른다.

근간, 아내의 핸드폰에 저장된 내전화번호의 이니셜(성명)이 “허세쟁이”로 저장된 것을 우연히 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철이 들면서 부터, 여태껏 살아오면서 형제는 물론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상은 내가 어려워지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해 버리거나, 관계를 정리해 버린다. 천사 같은 말을 해도 내면에는 행여 그 감당할 수 없는 불길한 것들이 전염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꼭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에 모습이고 보통사람들의 삶의 방법이지 않을까?

오래전 일이다.

아내가 지인과 통화를 하고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사연인즉 일상적인 안부전화를 끝냈는데, 통화 버튼이 끊기지 않았는지 전화기 너머로 그쪽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집, 사업이 좋지 않다는데, 왜 통화 하느냐?”는 등 부인을 몰아세우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이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아내는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그와의 좋은 기억만하고 지금도 교류한다. 직장을 끝내고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사업을 15년 넘게 했다. 오랜 직장 경험으로 자신도 있었지만, 그 변화하는 시대흐름을 앞서가기에는 너무 벅찼다. 시대나 시장의 변화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회사를 정리했다. M&A 시켰다.

회사 운영할 때 일이다. 갑자기 자금 흐름이 안 좋아졌다. 기천만원의 어음만기일이 돌아왔다. 가까운 이들에게 전화로 사정을 알리고, 자금을 융통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순간 떠오른 친구Y가 있었다. 기독교신자인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여유는 없지만 은행대출은 가능하니, 은행금리만 대납하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 그의 도움 없이 위기를 해결했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은 여태껏 잊을 수가 없다. 연말이어서, 주변의 이런 저런 모임이 많다. 나는 지난해부터 내가 살아오면서 작은 도움을 받았거나, 말빚을 진 이웃들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친구Y는 그때의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직장을 끝내고 사업을 시작할 때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나도 기억이 가물한 30년 전 사업초기 어렵던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얘기를 늘어 놨다. 나는 그에게 경제적인 것은 지원하진 못했다. 사실,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란 마음을 나누고, 내가 지닌 지식과 경험, 또는 인맥을 활용해 무형의 도움을 주는 것이 삶에 큰 기쁨이고, 살맛나는 세상일 것이다. 젊은 날 모셨던 직장 상사와 저녁 식사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대기업의 대표까지 지낸 분이고, 실력도 대단했다. 퇴직 후 창업을 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는 파산됐다. 불운은 늘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부인이 중병으로 20여년을 누워있다. 파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다. 거기에 칠십 후반의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마주 앉아 소주잔을 나누며 내가 그를 위로한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세월이 특별하고, 자랑스럽고, 남보다 앞서 갔다고 해도, 노년의 결과로 인생을 평가 받게 된다. 그가 집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나이가 있으니까, 신앙안에서 봉사활동이나 하고 있다.”고 답해주었다.

젊은 날 살기 바빠도, 종교 하나쯤은 가졌어야 했다며, 내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래요, 사는 게 어려울 때, 내 고민을 내가 믿는 신에게 50%쯤 책임지라고 떠넘기면, 얼마나 가볍겠냐”고 웃어주었다.

아내가 준비해준 봉투를 사모님께 전해 드리라며 건넸다. 그리고 돌아서는 내내, 가슴 아리는 그의 시선이 떠올라 울적한 밤이었다.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어제는 코스닥에 상장된 중견제조업체 C회장과 저녁식사를 했다. 칠십 중반인 C씨는 전망 없는 회사를 정리하겠다며 자문을 구해왔다. 회사를 정리해본 경험을 듣고 싶은 눈치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창업 60년이 지난 중견기업이다. 작금의 환경에 더 이상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60년의 업력이어서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데도 회사가 어렵다고 한다.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주어, 고생시키고 싶지 않고, 본인이 싫어한다며 정리계획이 단호했다. C회장은 내가 경험했던 정리절차를 구체적으로 물어왔고 나는 알려주었다.

근간 내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몇 명 더 있다. 참 걱정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삶에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다. 삶의 의미가 없고, 보람이 없고, 미래가 전혀 없을 때다. 그것이, 곧 죽음이다. 금년 연말은 가는 곳 마다, 우울한 소식과 절망적인 화두로 시작한다는 것이 섬뜩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망해가는 나라들의 징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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