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자구 노력 성공 사례①]

건설침체로 고전분투

전부문 감량 위기극복

벽산건설, 수주·축소·수익경영

2년반 만의 명예회복

벽산건설이 IMF 이후 워크아웃에 들어간지 2년반 만인 지난 9월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벽산건설은 역경을 딛고 오뚜기처럼 일어서 이제 당당한 입장에서 수주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이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무엇보다 IMF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일감이 크게 감소한데서부터 비롯됐다.

국내 건설수주액은 IMF 전 80조원에 이르던 것이 정부 발주공사의 감소와 민간 건축공사 및 주택 신규사업의 중단 등으로 한 때 48조원까지 감소했다. 여기에 구매중단 및 해약사태로 미분양 아파트까지 늘어나면서 회사 경영을 크게 압박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금리부담이었다. 금리가 날로 치솟으면서 평균금리가 17?18%에 이르렀고, 종금사 같은 제2금융권 금리는 무려 35?36%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채권금융기관은 어음할인을 중단하고 여신을 축소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제2금융권에서는 여신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이 같은 살인적 금리에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회사는 이제 결단을 내야만 할 시점에 이르렀다. 가만히 있으면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IMF 직후 ‘워크아웃’이란 기업 회생안을 처음 도입했다.

정종득_벽산건설.jpg

<벽산건설 丁鍾得(정종득) 사장>

금리압박 벗으려 워크아웃 신청

벽산건설은 이 제도가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처음 도입된 제도라는 데 대해 관심을 갖고, 일단 워크아웃 신청여부를 검토했다. 용어자체부터 생소한 것이어서 과연 이 제도가 ‘독’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약’이 될 것인지를 신중히 검토했다.

그 결과 워크아웃 기간동안에는 원금 상환이 유예되는 등 플러스 요인이 많다고 판단, 주 채권은행인 한빛은행(당시 한일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막상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생각처럼 약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기업이 어려워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회사를 괴롭혔다.

벽산건설 등 6개 사가 수주전을 벌인 한 재건축 사업 현장에서는 라이벌업체인 D사가 팜플렛에 ‘벽산은 워크아웃 기업이니 언제 망할지 모른다’며 재건축 주민들에 악선전을 해 수주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도 맛보아야 했다.

벽산건설은 이 회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 회사측의 사과와 함께 실비의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한번 멍든 회사 이미지는 쉽게 치유하기 어려웠다.

이런 악선전 때문에 건설회사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분양자체가 벽에 부딪쳤고 아파트 분양자들은 중도금 납부를 거부, 회사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팔릴 수 있는 알짜배기부터 매각

그러나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아파트 분양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띄워 ‘워크아웃 기업은 화의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과는 달리 원금상환을 유예할 뿐 이자는 정상으로 내는 등 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또 벽산건설 임직원은 물론 가족까지도 회사 홍보 및 판매에 적극 나서게 했다.

이와는 별도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도 병행했다. 먼저 수익성이 있는 계열사 매각에 착수, 도시가스 3개사(춘천, 익산, 순천)와 벽산에너지, 신용금고 및 창투사를 처분했다. 수익성이 없는 계열사를 매각 대상에 올려봐야 팔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그야말로 알짜배기 기업만 매각했다.

또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사업용지도 팔았다. 이렇게 해서 워크아웃 신청당시 17개사이던 계열사를 6개사로 축소했다.

이와 함께 비 주력분야인 유통시설(안양, 전주)은 E-랜드에 임대하는 등 철저히 주력업종인 건설부문에 사력을 집중했다. 계열사 처분 등으로 얻은 수익금은 전액 차입금 상환에 사용,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1천7백억원을 갚았다.

인원감축 작업도 진행됐다. IMF전 1천2백명이던 인원이 3년간에 걸친 인원감축 작업결과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5백50명으로 줄었다.

노조는 보너스 전액 반납

남아있는 직원들은 보너스 6백%를 전부 회사에 반납함으로써 능동적인 자구노력을 보였다.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노사간·임직원간 단합을 강조한 경영진의 호소를 직원들이 잘 따라 준 것이 회사의 경영개선에 큰 보탬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하도급 공사계약을 공개경쟁입찰방식으로 바꾸었다. IMF전까지는 건설업체 관행상 오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에 순번제로 하청을 주었으나 이제는 공개경쟁 입찰에 부친 결과 공사원가가 20%나 절감됐다. 또 자재는 인터넷을 통한 공동구매를 활용, 15% 정도의 원가 절감효과를 거두었다.

회사의 원가 절감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선별수주와 기준에 미달하는 공사의 수주포기로 경영을 개선했다.

민·관 가릴 것 없이 워크아웃 기업을 배척, 수주 기회가 제한적이었으나 전 직원들이 발주처를 분담해 회사의 공사경험과 과거 공사실적 등을 집중 홍보한 결과 벽산아파트의 인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는 9천6백17억원, 올 상반기에는 연간 매출액의 70%인 5천7백80억원 분량을 수주하는 실적을 올렸다.

직장예배가 정신적 지주 역할

벽산건설이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한데는 직장예배 실시에 따른 직원간 화합과 단합도 밑거름이 됐다고 회사측은 보고 있다.

우리나라 직장예배의 효시로 알려진 벽산건설에서 지금까지 50년동안 실시되고 있는 직장예배는 직원간 화합과 자신감 고취 등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金仁得) 명예회장이 극장사업을 하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극장에 사람이 많아 교회에 못나가고 월요일에 극장직원과 예배를 본 것이 우리나라 직장예배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김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기독실업인회를 이끌어 왔었다.

직장예배를 통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종득(丁鍾得) 사장의 설명이다.

채권단의 전폭적 지원도 회사의 정상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

한빛은행 등 채권단은 회사의 경영진을 신뢰, 일정기간 채무상환을 유예하고 1백억원의 출자 전환과 1천5백억원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함으로써 회사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해 주었다.

특히 채권단이 파견한 경영관리단이 회사에 상주하면서 현장을 직접 지원하는 등 회사와 채권단간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정상경영의 기틀이 됐다.

벽산건설은 이제 경영도 정상화됐고, 수익성도 많이 회복된 만큼 주주와 고객, 그리고 채권단에 적극 보답하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정 사장은 밝힌다.

이를 위해 특히 공급과잉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주택부문에 대한 비중은 40%로 줄이고, 대신 토목과 민자사업, 재건축 등 비주택 부문은 60%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부동산경기가 회복국면에 진입했으므로 사업성이 좋은 토지는 헐값에 매각하기보다는 직접 개발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정 사장은 오늘도 ‘지리(地理)는 불여천시(不如天時)요, 천시는 불여인화(不如人和)’라는 격언을 믿는 사람이다. 이는 ‘지리적으로 아무리 유리한 요새를 가지고 있어도 이것은 하늘이 주는 시간과는 같지 못하고, 하늘이 주는 시간도 사람간 화합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