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국보, 보물을 수집했던 조선 제일의 수장가 간송 전형필의 숨겨진 이야기 공개◆

△올해 말 민족의 얼과 혼을 지켰던 성북동 보화각에 새로운 공간 마련하고 선보일 예정△

[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그림, 글씨, 책, 도자기는 우리 민족의 혼이자 얼이라네."

값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명품 위주로 수집했던 조선 제일의 수장가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우리 문화재를 지켜며 좌우명으로 삼았던 위창 오세창의 가르침이다.

▲ DDP에 전시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사진=왕진오 기자)

1930년경 부모로부터 기와집 2천 채, 현재 시세로 따지면 6천억 원 상당의 땅을 상속받으면서 간송은 백만장자가 됐다. 당시 스승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서화 전적을 모으는 일은 오랜 인내와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머리에 새기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28년 첫 삽을 뜬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이자 간송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로 태어났다. 6.25 전쟁을 거쳐 올곧이 지켜온 이 터에서 2014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로 나들이를 나온 지 5년의 여정을 마무리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고려청자의 대명사인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존 개스비의 컬렉션 20여점 그리고 삼일운동의 중심에 섰던 보성학교의 이야기가 1월 4일부터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숀'이란 타이틀로 진행된다.

▲ DDP에 전시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사진=DDP)

골동품계에서는 '군계가 일학을 당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골동품이 아무리 많아도 명품 한 점을 당하지 못하고, 명품 한 점을 소장하고 있으면 다른 골동품들도 덩달아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구름 사이로 학이 날아올랐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 스무 마치, 백 마리....구름을 뚫고 옥빛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불교의 나라 고려가 꿈꾸던 하늘은 이렇게도 청초한 옥색이었던 말인가.'

당시 가격 2만 원(현재 시세 약 60억 원)에 거금을 주고 일본인 골동품상에게 구입한 '보물 중의 보물'인 천학매병에 대한 찬사다.

▲ DDP에 전시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사진=왕진오 기자)

또한, 당시 기와집 400채 값을 주고 뛰어난 안목으로 수집한 고려청자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일본 주재 변호사 존 개스비의 컬렉션을 일본 동경까지 건너가 인수하게 된 이야기와 20점 중 가장 빼어난 국보, 보물 9점을 비롯한 12점의 우아한 빛의 고려청자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932년 경성구락부 경매에 나왔던 모리 고이치 소유의 참기름 병으로 사용됐던 국보 제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 문화재 수호자로 알려진 간송 전형필이 보물과 국보를 구하기 위해 보낸 긴박했던 시간 속 사건들과 삼일운동 중심에 있던 민족사학 보성학교를 위기에서 구해내 교육자로 헌신한 그의 이야기들을 간송의 수장품들과 함께 풀어낸다.

▲ DDP에 전시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74호 '청자오리형연적'.(사진=왕진오 기자)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2014년 첫 전시 이후 3년간 진행하다 2년을 연장하게 됐다. 성북동에서 DDP로 나오게 된 이유는 많은 분들이 오기 불편하고, 줄을 너무 서서 기다리시는 것을 보고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구나하고 판단했다"며 "성북동 전시공간의 한계를 느끼고 대중적 공간에서 보다 편안하게 알리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충족한 것 같아서,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모색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현재 초기 지어졌던 보화각의 원형을 유지하며, 내부 시설을 공사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늦으면 올 가을 본래의 공간에서 오랜 기간 이어졌던 봄가을 전시를 통해서 국민들과의 만남을 준비 중에 있다.

▲ 'DDP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숀에 전시된 간송 전형필 인물'.(사진=왕진오 기자)

또한, 전인건 관장은 "기존 성북동 시설에 한계를 느끼고, 5년 전 DDP로 나올 때 유물 관리실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서울시와 문화재청과 협업을 통해 현대적 기준에 맞는 수장고와 보존처리실을 완비하고 200여 점의 유물을 관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공간이 아닌 상태에서 보화각 앞부분에 수장고를 신축하고 내년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완공 후에는 6.25 이전 간송이 사용됐던 공간으로 완벽한 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된 국보 6점, 보물 8점 혹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추사의 글씨, 겸재의 그림이라는 유물만이 아니라 수년간 공을 들인 뒤 남모르게 도쿄까지 가서 구해온 고려청자 이야기와 친일파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 한 겸재정선의 화첩, 경성의 중심에서 펼쳐진 경매회에서 일본인 대수장가와의 불꽃 튀는 경합을 승리로 이끌어 지켜낸 조선백자를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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