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장에 걸린 '북한산'으로 화제 됐던 민정기 작가 풍경화 선보여◆

[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빈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듯이 서울의 곳곳을 발품 팔며 눈에 담고, 역사 서적을 꼼꼼히 챙겨보며 기록한 풍경화가 눈길을 모은다.

▲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3관에 설치된 '사직단이 보이는 풍경'을 설명하고 있는 민정기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화폭에 담긴 장소들은 서울 종로구를 중심으로 한 세검정, 경복궁 일원과 작가가 생활하는 양평 지역의 익숙한 장소들이어서 사진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 그림은 40여 년 이상 풍경을 소재로 한 다양한 관점들을 다뤄온 작가 민정기(70)가 1월 29일부터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 3관에서 진행하는 'Min Joung-Ki'전에 펼쳐 놓은 작품들의 자태다.

특히, 민중미술 작가군 으로 분류됐던 작가가 대형 화랑인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도 사회적인 변화의 분위기를 물씬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민정기 작가는 "현실이던지, 민중미술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폭 넓게 봐주었으면 한다. 미술은 작은 단서, 기회, 찰나가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이다"라며 "창조력을 잡아내는 것은 개인적인 것과 연관이 있는데, 내 작품도 개인적인 관점에서 출발했고, 동인 전등의 전시를 통해 짬뽕되어 나오는 것이 작품에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 설치된 민정기 화백의 작품'.(사진=왕진오 기자)

민 작가는 그동안 산세, 물세 같은 지형적 요소와 그 안에 어우러진 인간의 흔적을 중점적으로 표현했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조선시대 이후 수도였던 서울 시내에 산재한 건축물이나 터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어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종로구에서 바라본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백사실계곡 등이 그것이다. 답사와 역사적 사실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릴 장소를 직접 다녀와 기억하고 있는 길들을 도해 적으로 연결이나 지리적 배치를 통해 작품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필연성을 확인한다.

특히 '유 몽유도원'은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미지 위에 현재의 부암동 풍경을 병치시킴으로써 부암동의 태곳적 지세와 변모된 현실풍경을 극명하게 비교한다.

'수입리(양평)'는 동양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전통적인 부감법과 투시도법을 재해석하며 산과 강의 현재적 상황을 민화적 양식을 차용해 풀어낸다.

▲ 민정기, ‘청풍계 1’. 130 × 162cm, Oil on canvas, 2019.(사진=국제갤러리)

또한 각 3매와 6매로 구성된 시리즈 '사직단이 보이는 풍경'이나 '인왕산'은 큰 화면을 그릴 때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병풍의 형식에 착안해 여러 개로 나누어진 화폭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의 화면에는 녹색 계열 또는 황색 계열의 통일된 색감으로 구성되어 마치 2차원적 화면의 평면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현대식 건물이나 간판이 과거로부터의 다양한 공간적, 시간적 층위들과 함께 해체된 후 재조합되는 것처럼 원근법을 무시한 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청풍계 1~2'는 대한제국의 관료였던 윤덕영이라는 인물이 일제강점기에 인왕산 자락에 지은 600평 규모의 프랑스식 건물을 예전의 지형을 바꾸고 가파르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들과 병치해 보여준다.

하지만, 윤덕영은 그 집에 입주도 못한 채 운명했으며 그 후 건물은 여러 쓰임새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소실되어 결국 1970년대 철거됐다. 작가는 이와 관련된 사료 연구와 답사를 통해 장소에 내재된 시간성을 복구,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본 화면들로 재구성했다.

▲ 민정기, ‘묵안리 장수대’. 211.5 × 245cm, Oil on canvas, 2007.(사진=국제갤러리)

민정기 작가는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집어넣는다. 청풍계를 그릴 때는 인력개발원 옆으로 난 계단에 올라가서 지어진 무허가 집이 없으면 그림이 싱거운 것 같아 일부러 끄집어 갖다 놓은 것으로 그림적인 소도구일 뿐, 현실을 그려 넣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옛 그림을 단서로 하기 위해 고지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지도는 자연을 강조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과거 수선전도에 인왕산을 입체적으로 그렸는데, 지금은 그런 요소가 주제가 될 수 없다. 변화된 주제와 더불어 오늘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재미가 쏠쏠하다"고 덧붙였다.

▲ '1월 29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민정기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민정기가 선택한 공시성의 방식은 '집단적 기억' 같은, 애초에 통합될 수 없는 대상의 성질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자 서구의 이분법적이고 선형적인 시간 인식에 대응해 보다 풍부한 서사를 구성하는 데 훌륭한 대안이 된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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