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인사동 터줏대감 선화랑(대표 원혜경)이 역량을 다해 밀고 있는 기획전 '예감'의 2019년 라인업이 공개됐다.

6일 오후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 함께한 왼쪽부터 '2019 예감'전 참여작가 구나영, 정혜경, 최재혁, 정운식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한국화 구나영, 설치 정운식, 조각·설치 정혜경, 서양화 최재혁 작가 등 4인이다. '예감'전은 선화랑의 차세대 대표 작가를 선보이는 자리로 2004년 첫 발을 내딛고 2016년부터 매년 첫 기획전으로 세상과 만나는 무게 있는 기획 전시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천재성이 아닌 작업 정신이 투철한 작가들을 섭외하고 화랑의 가치와 서로 마음이 맺어진 작가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그들의 발전 가능성을 예측한 후 꾸준히 지원해 선화랑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화랑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전시다"라고 설명했다.

'2019 예감'전은 '자서전-기억수집'이란 타이틀이 함께한다. 오랜 시간 기억, 노동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작가들을 하나의 테마로 엮은 것이다.

참여 작가 정혜경(41)은 지난해 선화랑에 열린 한국어류 조각회에 참여하며 독특한 작업으로 예감전에 합류하게 됐다.

정혜경, '거꾸로 쓰여진 편지-사랑하는 딸아'. 목판, 45 x 37cm, 2018.(사진=선화랑)

정 작가는 1997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을 계산해 보니 1억 5천만 원이나 됐다고 한다. 하지만 남는 것은 영수증이라는 숫자가 찍힌 흔적만이 남았다는 것에 긴 시간동안 삶의 무게를 보여주고 싶어 영수증 1억 5천만 원어치를 모아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또한, '거꾸로 쓰여진 편지'란 작품을 통해 엄마의 거친 목소리가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부모가 품고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반대적이라는 것을 상징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전시장 벽에 함께 걸었다.

정혜경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삶에 얽힌 개인사의 사건 속 사물과 텍스트를 경험할 수밖에 없고, 자아를 타자와 하기보다는 타자를 자기화 하는 방식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골동품에서 찾아낸 또 다른 정물...최재혁 ◆

누군가의 삶에서 경험과 일상을 담고 있는 소재를 익숙한 정물에 대입시켜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 최재혁(36). 그는 기명절지도나 책가도를 차용해 작가만의 정물화를 완성시킨다.

최재혁, 'still life#49'. oil on canvas, 162.2 x 130.3Cm, 2018.(사진=선화랑)

최재혁 작가는 "제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는 골동품에 한정시켰죠. 정물화의 전형인 바니타스와 일상의 이야기를 접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며 "한자와 연관된 밤, 감, 복숭아, 돌 같은 정물을 통해 복을 구하고 사물을 재현하며 밸런스와 볼륨감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최 작가의 이전 작품은 한 화면에 정물을 쌓듯이 일상생활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소장 욕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과 같은 의미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김환기 화백의 정물화를 좋아한 작가의 심성을 드러내듯 작업실 한 편에 김환기 작품이 놓여있다.

최 작가는 "누군가는 표현에 대한 퇴화라고 하지만, 저는 표현에 대한 회귀라고 말하고 싶다"며 "과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장 한 장 쌓여가는 작품들 속에서 작가적 견해와 시각적 가능성을 완성해 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구나영, '삶의 노래 no8'. 한지에 먹과 아크릴, 133 x 195cm, 2018.(사진=선화랑)

◆나무와 숲에 빗대어 특유의 서정적 감성을 수묵기법으로 표현, 구나영◆

자연의 재현이 아닌 작가 마음 속 풍경을 묵직한 먹으로 표현하는 작가 구나영(36)은 자화상을 화면에 그려낸다. 작품 속 상상의 숲 '팀북투'는 마음 안에만 존재하기에 가장 가깝고도 동시에 갈 수 없는 머나먼 곳이라고 한다.

구나영 작가는 "제 감정을 나무로 대변해 상징화했죠. 삶의 노래라는 작품에서는 눈보라가 흩날리는 가운데 버티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 특히 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며 "각자 치열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것, 시련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과 동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얀색 화선지를 마주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느낌이 오면 마치 칼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으로 붓으로 다양한 선을 그려내며 화면을 완성한다는 작가.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울림 있는 상황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덧그리고 물감을 더해서 두터운 재질감으로 감성을 전달한다.

공존, 조화, 평안, 위로 등 치열함 가운데 절실해지는 감정들을 그린 안에 담아, 마주하게 함으로써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정운식, 'I will'. 136 x 10 x 80cm, Aluminum,graffiti paint, 2016.(사진=왕진오 기자)

◆'그 분의 얼굴'에서 추억을 찾는 정운식 작가◆

"사람의 얼굴 하나하나는 장소를 상징하는 것 같았죠. 이곳에서 느낀 추억과 감정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배우 오드리 햅번, 해리슨 포드, 가수 비틀즈 등 익숙한 인물들의 모습이 알루미늄 패널이 층층이 겹쳐져 쌓인 모습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벽에 걸렸다.

작가 정운식(35)이 '누군가'의 '얼굴'을 통해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가 표현하는 얼굴은 과거와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 작가는 "기억과 회상을 하는 것에 대한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과거 기억 속 추억을 끄집어내려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고 컬러도 많이 가미해서 추억하는 감정이 행복했던 감성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군가의 감성으로 바라봤던 대상에 대한 기억의 완성이다.

유명인이나 귀에 익숙한 노래 가사를 부른 가수들의 모습조차도 작가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바라봤던 대상의 시점에서 포착된 형상이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 1층에 설치된 '2019 예감_자서전-기억수집' 전시 전경'.(사진=왕진오 기자)

무수히 많은 판들과 선들로 이루어진 공간을 가진 인물들의 얼굴은 단편적이지만, 그 파편들 속에서 돋아나는 생각과 추억, 기억들은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고 추억하는 것이 다르기에 선과 선, 판과 판이 만나 만들어지는 빈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 저마다의 삶 속의 기억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각자의 고유한 양식으로 표현하고 풀어낸 '2019 예감_자서전-기억의 수집'전.

전시는 무수히 쏟아지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그것을 공유하는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보다 타인의 삶을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될 수 있는 현실을 돌아보며, 삶에 대한 가치관 정립과 계획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시는 3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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