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너무 잘 빠진, 군더더기 없는 작업은 다소 불편한 것 같아요. 지나가다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 드러나는 그런 작품으로 봐주길 바라죠."

3월 8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제여란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텅 빈 캔버스에 물감 덩어리를 무심하게 던져놓고 붓이 아닌 스퀴지(squeegee, 고무로된 두꺼운 판에 날을 붙인 미술 도구)를 갖고 바람에 일렁이듯 춤을 추는 나뭇가지처럼 휘젓고 나면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치는 화면이 눈앞에 등장한다.

화가 제여란(59, Je Yeoran)이 지난 30여 년간 일궈온 작업 세계를 한 눈에 보여주기 위해 3월 8일부터 서울 성북동313아트프로젝트에 'Usquam Nusquam'란 타이틀의 개인전을 진행한다.

제여란 작가는 "작가로서 확장된 몸으로 자유자제로 움직이고 있다. 초기 검은색 계열의 단색조 물감을 사용했지만, 화가에게 색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고 있다"며 "그림 안에서 요구되어지는 무엇인가를 해결한 후 부터는 계절이나, 캔버스를 마주하는 그날의 컨디션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 설치된 제여란 작가의 'Usquam Nusquam'시리즈.(사진=왕진오 기자)

제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면 물감의 두께가 여느 작품보다 두텁고 자연스럽게 흐르다 마른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드리운다.

제 작가는 "물감의 두께에 개의치 않는다. 너무 선명하면 그림이 아닌 것 같다"며 "책갈피처럼 내 작업 전반에 들어있는 무언인가를 끄집어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것 같다. 나의 첫 색은 밝을 수도 있지만 어떤 자극에 따라 색상을 고르지만 색을 결정하는 것은 계절이 결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풍경화처럼 대상을 바라보고 밑그림을 구상하는 과정이 아니다. 내면에서 촉발된 감각적 자극에서 작업이 출발하며, 그림 안에서 생겨나는 에너지와 전체가 이끄는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에 집중하며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제여란, '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110 x 110 cm, 2018.(사진=313아트프로젝트)

마치, 넓은 대지에 일렁이는 바람의 세기처럼 물감의 방향은 자유자재로 격정을 토로하듯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함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 작가는 "몸 안에 색도 있고, 곡선도 있는 것 같다. 몸이라는 것은 내 존재를 정의하는 척도다. 오감이라고 하지만 육감 등 소통의 채널이기도 그 자체이다. 내 작업은 몸이 추구하는 세계와 지나간 세계를 곁들이는 것이다. 몸을 떠나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사건으로서의 회화'라고 말한다. 그림의 유래가 외부 대상이 아닌 그림 안에 있다고 말한다. 신체적 움직임의 흔적이 이루는 회화적 표현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특정한 의미나 구체적인 재현에 도달하지 않는다.

무질서한 듯한 곡선의 얽힘과 색채의 순환 속에서 어떠한 연결 지점과 조합을 찾아내고, 형상을 떠올리는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몫이 된다.

'3월 8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제여란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바람이 몰아치듯 거친 붓질감이 화면에 가득하다. 하지만 붓이 아닌 밀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스퀴지를 사용한다. 몸의 율동을 캔버스에 그대로 들어내기 위함이다.

제 작가는 "내가 화가로서 일을 어떻게 하면서 나의 지금을 넘어서는 것이 과제다. 다른 그림을 추구하며 완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평적 지지 또한 작가라는 세계를 간직한 자아라는 개념과 예술을 조정하는 다양한 힘들도 부수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아직은 작업을 할만하다.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데, 극복해야할 과정이 아닌가 한다. 1년 농사를 지은 농부가 연말에 텅 빈 밭을 바라보는 심경처럼 한 해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시간에 다다르면 스스로 경외심이 생기는데 오래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완성될 때까지 공을 들이기도 하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과정보다는 계속 돌려보면서 고민을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걸어야 할 길이 아닌가 한다"고 이야기했다.

'3월 8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 설치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제여란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Usquam Nusquam' 시리즈는 작가가 내면 에너지의 충동을 따라가며 만들어낸 움직임의 회화다.

작가의 호흡에 따라 펼쳐진 색채의 향연은 감정의 솟음과 가라앉음이 반복되는 인간 내면의 은유이자, 고유함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임이 일어나는 자연 섭리의 표출이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