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세계적인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양혜규(48) 작가가 영국에서 '움직임을 추적하며'란 타이틀로 7년 만에 사우스 런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3월 7일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에서 막을 올린 전시는 오랜 기간 지속해온 연작은 물론 장소 특정적 신작 등을 포함한 총 21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출품작은 제작 연도에 관계없이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물리적 공간적 혹은 역사적 목소리를 탐색하는 일종의 ‘추적’ 행위를 근간으로 한다.

일상적 사물과 공예적 전통을 아우르는 다양한 제작 방식은 이주, 소외, 차이 등 정체성의 정치학이라는 복합적 주제의식과 중첩된다.

전시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양쪽 코너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는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중 도보다리 중계 영상의 기록이다.

당시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는 도보다리 끝에 앉아 기자들이나 동반 스태프 없이 단둘이 담화를 나누었다.

비무장지대라는 상징적 장소와 정상회담이라는 구체적 시간대에서 유래한 음향은 사실 취재진의 발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를 제외하면 오직 새들의 지저귐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말의 정치적 의미나 삼엄한 경비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전시장 바닥 하부에는 영국의 예술가이자 삽화가,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윌터 크레인(Walter Crane, 1845~1915)이 1891년에 제작한 목재 패널이 숨겨져 있다.

'양혜규: 움직임을 추적하며'. 전시전경 사우스 런던 갤러리, 런던, 2019.(사진=국제갤러리)

양혜규는 크레인의 디자인에서 특정 선을 차용한 기하학적 디자인을 바닥 테이핑으로 표현했고, 이 모티프는 번역과 통역, 이주와 이동을 은유하듯 두 방향으로 회전하고 비스듬하게 재배치된다.

대형 기하학적 동차와 음향 요소 외에도 작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형의 작품군을 널리 활용했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편지 봉투의 보안 무늬 콜라주 작업 '신용양호자들(Trustworthies)'(2010년 이후)에서 이어지고, 콜라주 제작 과정에서 무뎌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칼날은 <날붙이 악보(Blade Notations)>(2019)의 주재료가 되기도 한다. 

주변 환경에서 날아든 머리카락, 먼지 및 곤충 등의 부산물이 그대로 드러난 표면 위에 특정하게 배열된 칼날은 언어, 코드, 잠재적 서사를 연상시킨다.

'멀미 드로잉(Carsick Drawing)'(2006/2016)은 이동의 과정과 경험을 추상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멀미가 심해져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됐고, 이렇게 완성된 총 10점의 드로잉은 덜컹거리던 버스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도모하는 그의 접근 방식은 고유한 작품을 통해 시간과 역사, 개인적 서사 및 연대, 물리적 기록간의 계층 구조가 무너진 은유적 공간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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