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양대 거장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 주요작 한 자리에◆

[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트로트 가수 송대관과 태진아, 원조 아이돌로 불리는 젝스키스와 H.O.T 는 장르를 떠나서 라이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예술인들이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지하 1층에 설치된 소정 변관식의 내금감보덕굴과 내금강 진주담 작품(리움미술관 소장)을 관객이 살펴보고 있다'.(사진=왕진오 기자)

120여 년 전 미술계의 양대 라이벌로 통했던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과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은 20세기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조선시대 말기의 화가 심전(心田) 안중식의 서화미술회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들이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조선 시대 대가들의 전통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각자 고유의 양식을 구축해 한국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이다.

하지만 외국의 유명 그림들이 화랑가들 휩쓸면서 홀대받아 지금은 애호가 중심으로 작품을 소장하고, 박물관 등의 전시를 통해서 볼 수 있는 희귀 그림이 됐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제백석)이나 최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백억 대 낙찰을 기록한 장대천(Zhang Daqian's), 자우키처럼 자국의 전통 회화를 기관이 꾸준히 키우는 것과는 대조될 정도로 그 가격이 일천한 것이 현실이다.

두 화백의 초기작인 1940년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대표적인 작품 80여 점이 4월 10일부터 서울 삼청로 현대 화랑과 갤러리현대 전관에 펼쳐진다. 가히 국가미술전시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 팔을 걷고 준비했을 정도의 규모를 상업 갤러리가 준비한 것이다.

청전 이상범, '효천귀로' 설치 모습. 1945, 129 x 256cm, 1945.(사진=왕진오 기자)

갤러리현대가 개관 5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를 마련한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靑田)소정(小亭)'전은 그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그림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전시를 준비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단원, 겸재 이후 국민작가라 불릴 수 있는 분들이다. 인기를 누렸던 단색화의 뿌리도 바로 한국화가 아닌 듯싶다"며 "치바이스의 그림도 부럽지 않지만, 그동안 한국 수묵화를 배척한 것을 바로 잡고 재평가를 통해 새로 조명 받는 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청전의 50,60년대 대표작들로 가득 채워졌다. 특히 대중들에게 최초로 공개되는 1945년 8월 15일에 완성된 '효천귀로'를 비롯한 4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과 함께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3미터 크기의 소정의 대형 작품도 볼 수 있다.

"우리의 그림에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뼛골이 배어져야 한다. 감히 나는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적인 그림을 그렸다고는 생각한다. 내가 그린 산수나 초가집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는 세계이다."

청전 이상범, '설경'. 90 x 213cm, 1960년대.(사진=갤러리현대)

청전 이상범이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대해 힘주었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청전은 산과 나무, 암석과 개천, 농부와 아낙의 모습을 한국적인 특유 서정적인 정취로 표현했다.

청전은 일본을 통해 도입된 서양 회화 기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수용하면서도 동양의 화풍을 절충해 1920년대 중반부터는 ‘사경산수화’를 만들어냈다.

1930년 전후로 작가는 전통 산수화 기법인 ‘미점준’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원근법을 수용해 대상 간의 거리감과 공간감을 부여했다.

청전은 한국의 산천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그리면서 중국 송 대의 화법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현재 ‘청전양식’이라 불리는 미점 법으로 산과 언덕을 안정된 구조로 전형 화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완숙기에 들어서면서 외진 산골과 언덕 풍경의 적막함, 소박함과 한국적 산양의 평범함을 그려냈다.

소정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종이에 수묵담채, 155 x 117cm, 1959.(사진=갤러리현대)

"난 산수가 전문이야. 산수풍경이 역시 그리는 재미도 있고 내 성격에도 맞아. 난 스케치를 많이 하는 편이지.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어. 어디 하면 그 곳의 강과 산, 나무, 돌, 집들이 훤하게 떠오르거든. 난 실지로 보고 스케치했던 것이 아니면 그리지 않게 돼."

차분하게 산수 풍경화를 그렸던 청전과 달리 소정 변관식의 화풍은 선이 굵은 강렬함을 드러낸다. 1937년부터 작가는 전국을 유람하며 실경산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적묵법과 파선법을 사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해 나갔다. 작가는 해방 이후에도 적묵법을 즐겨 사용했으며 개성적인 필묵으로 자신만의 수묵세계를 구축했다.

소정의 산수화는 전반적으로 힘차고 굳센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청전의 부드럽고 온화한 화풍과 자연스레 대조를 이룬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 설치된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 설치 모습'.(사진=왕진오 기자)

작가는 8년 동안 금강산을 사생하고 30년 이상 다양한 명소들을 변주하며 그려온 만큼 ‘금강산의 화가’로 불린다.

8년 동안 금강산을 사생하고 30년 이상 다양한 명소들을 변주하며 그려왔다. 소정의 작품세계에 있어 금강산이란 하나의 소재가 아닌 모든 회화의 모든 요소에 스며들어 있는 요소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홀대했던 전통 회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겸재, 단원 등 조선 시대 대가들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고유의 양식을 구축해 20세기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장을 연 대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6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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