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오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1905년 을사늑약을 거쳐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에 이르자, 자택의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고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글로서 일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호소했던 척암 김도화의 문집 책판이 환수됐다.

'환수한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권9의 23~24장에 해당'.(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을미의병 시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척암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을 독일에서 지난 3월에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이번에 돌아온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척암선생문집'을 찍어낸 책판 1,000여 장 중 하나이며, 권9의 23~24장에 해당한다.

척암선생의 책판은 현재 20장만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이번에 매입한 책판까지 합치면 총 21장이 전해지게 됐다.

진흥원에 소장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이기도 하다.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지난 2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외 경매에 출품된 한국문화재 모니터링을 통해 독일의 한 작은 경매에서 발견한 것으로, 당시 출품된 아시아 문화재 500여 건 중 유일한 한국문화재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유교 책판' 중 일부인 '척암선생문집'.(사진=문화재청)

척암 김도화는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臨淸閣) 문중의 사위 가운데 한 명이다.

퇴계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1895년의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안동통문(安東通文)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 해 3월, 2차 안동의진에서는 71세의 나이에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지휘부를 조직하고 격문을 발송해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