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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권 칼럼] “조국의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 최수권 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 승인 2019.06.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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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남산에 위치한 건국반공순국선열 기념비. <사진=필자제공>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 의용대가 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보면 조선 의용대가 6.25 남침 때 동원된 “인민군의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이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게 참 이상하다.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이 정권의 초기부터 청와대 지시에 따라 서훈까지 염두에 둔 “김원봉 복권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도됐다. 국방부는 지난 2017년 8월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운동사 발굴 및 활용” 이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독립군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김원봉의 이름을 창군 역사에 포함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는 김원봉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창군역사에 담는 일만 남았다 한다. 보훈처는 김원봉의 서훈과 관련된 법률 검토도 비밀리에 했고, 김원봉의 관련 세미나까지 열었다.

김원봉의 서훈에 나선 이유는 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영화 ‘암살’을 관람하고 페이스 북에 ‘김원봉선생 마음속으로 나마 최고급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했다. 글쎄 영화란 관객을 의식해 주인공의 활동을 미화시키고, 과장시켜 극적인 영상으로 감성을 자극해 관객을 동원한 오락물이다. 국가적으로 한 인물을 평가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전문 분야의 사람, 기관에 맡겨야지 즉흥적인 생각, 느낌으로 의인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

▲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 <사진제공=국립여성사전시관>

조선 의용대 후신인 조선 의용군은 6.25 직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전력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 6.25 새벽 남침한 연대 21곳 중 10곳이 조선의용군 출신이었다.

1948년 북한 김일성 정부수립 때 국가 검열상에 올랐던 김원봉이 초대국방상(국방부장관) 역할도 맡았다는 기록도 있다. 국방상은 군사 행정을 총괄하는 역할이어서 김원봉이 6.25 이전부터 남침준비에 깊이 관여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1948년은 남한 내, 좌우대립이 극심한 시대였다. 그때 김원봉은 스스로 월북을 한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고 북 헌법 수립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6.25가 한창이던 1952년 노동상으로 자리를 옮겨 전장물자와 인력을 공급했다. 전쟁 전후해서 간첩을 교육해 남파하는 역할도 맡았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김원봉은 “경애하는 우리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 김일성 수상의 주위에 더욱 굳게 단결하자”며 거듭 찬양했다. 이어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가 령도하는 위대한 선진국가 소련의 진정한 원조를 받음으로써 미국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분쇄하자고 했다. 그가 지닌 사상은 이렇듯 골수 빨갱이였다.

그런 그를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뿌리가 됐다? 얼마나 한심하고, 열불 나는 일인가?

현충일 추념사의 논란이 일자 “통합을 강조하고자 한 말인데..., 왜 김원봉 서훈 논란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변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조선일보 인용)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은 치열했다.

해방 후 건국에 이르기 까지 남로당과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났고, 해방 전후의 어수선한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남북통일정부를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좌익과 남북협상파의 반대가 극심해서였다. 당시 우익을 반공과 건국의 방향으로 강하게 끌고 간 세력이 반공청년 세력, 반공청년단들이었다. (대한독립청년단, 광복청년회,서북 청년회 민족청년단, 대동청년단, 청년조선 총동맹 등)

그 청년단은 대한청년단으로 뭉쳤고, 전후에는 청우회로 다시 뭉쳤다.

1948년 5월 10일 총선시 공산도당은 총선에 맞춰 온갖 파괴 공작을 책동했으나 애국 청년단체들의 활동으로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우익을 반공과 건국의 방향으로 강하게 이끌고 간 세력이 반공청년단들이었다. 조병욱선생은 그들이 없었다면 치안유지도 건국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해방 후 한반도는 주인 없는 무정부 상태였다. 오로지 자유민주냐 공산화냐 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매년 서울 남산 중턱에 세워진 “건국반공순국선열 기념비를 참배한다. 해방 전후와 6.25전쟁에 목숨 바쳐 산화한 17,274분의 위패가 모셔진 추모비이다. 지금은 변화된 세태를 반영하듯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벌써 잊혀진 과거일 뿐이다.

그곳에 서면, 나는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부친께선 해방 후 반공청년단 간부이셨고 6.25 적 치하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만세삼창으로 최후를 마쳤다. 그날 전 가족이 반동의 집안으로 거의 총살당한 비운의 집안이다. 부친은 그 추모비에 이름 한 줄로만 남아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대의를 선택한 부친의 죽음은 가문에 자랑이나, 영광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어려서부터 경험해 오고 있다.

순국열사 기념비엔 노산 이은상 선생 추모시가 있다.

해 돋는 동방의 나라
아름다운 내 조국
화랑의 얼을 이어 받은 너와 나
피와 사랑으로 얽힌 동지여
자유 평화 정의를 들고
승리의 신념으로 뭉쳐 나가자.
밝고 바른 영광의 새 역사
이루기까지 이루기까지.

나는 6월이면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조국은 무엇이며, 자신의 삶을 바쳤을 때, 내 가족의 안위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희생은 어떤 신념일까? 어떻게 지켜온 나라고, 성장한 나라인데 과거를 쉽게 해석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많은 선인들의 목숨으로 지킨 이 나라를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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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권 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econotalk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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