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정보라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일본의 무역보복 여파로 반도체주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대규모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는 큰 움직임 없이 지나가고 있다. 반도체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강화가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내부에서도 수출 규제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어 실제로 시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날 2.00%(1400원) 상승한 7만14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0.75%(350원) 하락했으나 LG디스플레이는 전일과 같은 1만7500원으로 장을 마감하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 전체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는 풀이다.

오히려 국내 반도체 소재 생산업체들은 대부분 이틀 연속 상승세다. 소재 대체재 개발에 힘이 실리며 국내 소재 업체가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레지스트 관련 업체인 동진쎄미켐은 전일 17.91% 상승에 이어 이날도 2.95%(350원) 오른 1만2200원으로 거래를 마쳤으며 이엔에프테크놀로지도 이틀 연속 상승 마감했다.

에칭가스 관련 기업인 솔브레인도 전일 4.66% 오른 이후 이날도 4.55%(2250원) 상승 마감했으며, 원익머트리얼즈도 이틀 연속 1.98%, 4.84%의 상승률을 보였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폴리이미드 관련 업체인 코오롱인더는 전일 2.69% 상승에 이어 이날도 0.91% 올랐으며 SKC코오롱PI는 전일 4.51% 상승했으나 이날 주가 조정을 받아 1.49% 하락 마감했다.

日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 보복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수출 관리 규정을 바꿔 오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첨단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우리나라가 수출 규제 대상 품목에 대해 수출 절차 간소화 등 우대 조치를 받아왔지만 4일부터 약 90일이 소요되는 허가 신청과 심사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제재 품목은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반도체 시각 및 세정 공정과 디스플레이 슬리밍 공정의 소재로 사용되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렉서블 OLED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다.

이 세 품목 모두 핵심 공정에서는 일본 제품이 주로 적용된다. 에칭가스는 일본 점유율이 70% 정도지만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전 세계 공급량의 90%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일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 보복 조치이며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정합적이며 자유무역과 관계가 없다”며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아베 총리 스스로 이번 조치가 한국 대법원이 과거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내린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본 내부에서도 보복 조치를 자제하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을 통해 “일본의 부품·소재·장비업체가 한국의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의 생산을 지원한다”며 “한국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일본 기업도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소재 국산화 가능성, 수혜 전망

증권업계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내 반도체 업체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인 소재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히려 국내 소재 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소재 업체들의 입장에서 실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 반발이 예상된다”며 “일본 정부가 보도된 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일본의 규제가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재고 부담이 큰 국내 메모리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감산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 사이클 바닥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며 “시행 기간이 장기화하지만 않는다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및 주가에 큰 악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도현우·박주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포토레지스트 중 현재 공정에 주력으로 사용되고 있는 제품은 규제 대상이 아니고, 에칭가스는 국내 업체가 수입선을 다변화해 놓은 상태여서 실제 규제가 시행되더라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 생산에 주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며 “향후 이들이 일본 기업의 위협을 현실로 느끼고 국내 업체 체력을 키워줄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업체의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들은 일본의 규제가 “실제 이들의 제품 생산에 차질을 주겠다기보다 일본의 첨단 기술력을 부각해 정치 협상용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현수·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일본은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를 무역 갈등에서 길들이기용,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고 일본이 반도체 선단 공정용 소재를 한국으로 수출하지 않으면 대만 외에 수요처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보다 무역 갈등 완화를 암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반도체 대형주의 투자심리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연구원은 또 “규제 소재의 공급이 부족하면 국내 소재 제조사가 상대적으로 수혜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원·이창민 KB증권 연구원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지금까지 해외 의존도가 컸던 한국 IT 소재의 국산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잠재적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업체들은 반도체, OLED 및 전기차 분야에서 적용되는 핵심 소재 일부를 2020년부터 국산화할 것으로 예상돼 IT 핵심 소재 개발과 상업 생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업체들은 IT 소재 국산화로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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