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일 글로벌사이버대 뇌교육융합학과 겸임교수·행정학박사 @이코노미톡뉴스] 본 칼럼은 조선국왕의 경호실인 선전관청(宣傳官廳)에 근무하는 선전관(宣傳官)의 채용절차를 고찰해봄으로써 현대사회서 대부분의 공무원이 공개경쟁채용시험에 의해 선발돼지고 있는 것과 다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전관은 무관 중에서도 청요직(청렴해야하는 중요한 직책) 또는 현직으로 불릴 만큼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선전관은 자손이 음직(선조의 음덕(蔭德)에 따라 그 자손을 관리로 임명하던 제도)을 물려받기도 했는데 자손에게 문음의 혜택이 내려질 만큼 이들 무반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조실록엔 공신 재상의 아들 가운데 나이 어리고, 쓸 만한 사람을 골라서 선전관에 소속시켜라(세조 10년11월 을해)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경국대전(이전 음자제)에도 명시하고 있다.

경국대전엔 “공신 및 2품 이상의 아들, 손자, 사위, 동생, 조카와 실직 3품인자의 아들, 손자, 일찍이 이조, 병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부장, 선전관을 거친 자의 아들로서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에게 시험을 보돼 취재과목은 오경 중의 하나, 사서 중의 하나를 자원에 따라 강한다.”라 돼있다.

이러한 조치는 조선왕조 건국과정이나 왕권강화와 국가체제 정비과정에서 드러나듯이 여러 차례의 공신이 배출되어 왔고 또 그에 못지않게 나름대로 공을 세운 원종공신 책봉자와 고위 관료집단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그에 걸 맞는 예우가 필요하였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이는 강력한 집권책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 왕권 강화를 도모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장된 신권(臣權)을 견제하기 위한 이중효과를 도모하는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대체로 앞에 열거된 관직(이조, 병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부장, 선전관)들은 청요직 혹은 현관이라 할 수 있고 반대급부로 자손들에게 문음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며 경국대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반 중에서 음직을 받은 관직은 부장과 선전관뿐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대우는 선전관이 국왕의 호위 숙위 등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예우차원에서 음직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선전관의 신분이 세조 8년에는 5품관 이상으로 임명됐다.

또한 세조 10년에는 영의정, 좌의정, 병조판서 등으로 강무선전관으로 임명하였으며 조선 중기에는 무재가 있고 진법을 아는 사람이 선전관이 되었으며 중종 20년경에는 선전관에 동반임명이 많았다.

앞의 사실로 보아 선전관이 지금까지 병종이었다는 학계인식은 근거가 확실치 않다. 이것은 다음의 사료로서 확인이 된다.

첫째, 세조실록(3년 9월 병자)에, “지각없는 갑사가 어가 앞에서 오줌, 똥을 누는데 가금하지 않으니 중죄인을 잡아다 국문하라는 사실”과, 둘째, 중종실록(9년 12월 을미)에 “금군(갑사, 별시위, 내금위, 겸사복 등)을 출납(出納)하였던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

셋째, 중종실록에, “무신들은 선전관의 직책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과, 넷째, 동 실록에, “대체로 군령은 선전관이 전담하고, 선전관은 국가가 장차 크게 쓸 사람이라고 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전관의 신분이 무신으로 된 것은 중종 23년경이다. 그리고 선전관은 병종이 아니기 때문에 갑사를 가금할 수 있었으며, 또한 내금위, 겸사복 등의 금군을 출납할 수 있었다.

▲ 필자 안병일 교수

따라서 선전관 입사자의 신분도 시대적 성격에 따라 변했던 것은 당연한 일로 무과출신자나 문과출신자를 중심으로 입사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문벌이 강화된 16세기 이후에는 문음(공신의 후손 등이 문벌로 벼슬에 임명됨)출신들이 대거 선전관으로 입사했다.

아울러 선전관은 세조시기에 서반승지로 호칭되었고 문관의 옥당(홍문관의 별칭으로 국왕에게 학문적 자문을 하던 관청), 전랑(문무관의 인사를 관장한 관리), 한림(예문관의 관리로 청요직으로 선망 받음)등의 관직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문관은 한림 무관은 선전관이라 칭할 정도로 안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승지는 청요직(淸要職-청렴해야하는 중요한 직책)이라 불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선전관은 실록에 자주 청요직이라 불려 진 것으로 보아 국왕의 측근에서 중요한 참모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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