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미톡뉴스 디자인팀>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이코노미톡뉴스]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문제이자 자기를 검증하면서 또 다른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성장시켜 나가는 일인지 모른다. 살아 숨 쉬므로 발생하는 일들이 어떻게 보면 인간의 고뇌요, 이런 일상이 되풀이 하면서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보통사람의 삶의 형태인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길은 다기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고, 어울려 살아간다.

그 길, 마디마디에서 마주한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또는 교류하며 살아간다.

고향, 학교, 직장, 종교 그리고 사회의 친구들과 함께 하며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의 삶의 형태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나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성공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도시인들은 누구나 바쁘다. 운동할 시간을 낸다는 게 쉽지 않다. 나는 30년 전부터 스포츠센터에 등록하여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인이 생기고 가깝게 교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들이라 서로가 편해서 일 것이다.

회원들의 직업군이 다르기 때문에 삶에 유익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회원들을 지켜보면서, 이런 결론을 얻었다. 심성이 맑고 상큼한 성격을 지닌 이들이 성공한 사례를 지켜봤다.

방송혁이란 이의 이야기다.

(주)정신의 대표이사이다.

그와 30여년을 교류하며 지켜봤는데 사람이 단정하고 상대를 편하게 기분 좋게 해주는 언행이어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늘 기분 좋은 이였다.

몇 해 전 일이다.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날 새벽녘이었다. 나는 성당의 봉사 단원(레지오 마리애) 들과 함께 월2회 우면산 가꾸기와 등산로 주변 청소를 해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산 정상까지 봉사활동을 끝내고 하산길에 운동기구가 있는 등산로 쉼터에서, 눈을 말끔히 치우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방송혁이었다. 나는 놀랬다. 혼자서 하는 봉사활동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이후부터 우린 아주 가까워졌다.

그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매출액이 250억 원이며, 생산제품 전량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1991년부터 일구어 논 해외 거래처가 50여 곳이다.

근간은 KOTRA의 지원으로 런던,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 지사화 사업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생산 제품은 폴리에스테르(PE) 타폴린과 차광막, 안전망을 생산하는 회사다. 건설분야와 농업분야의 제품들이다.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재건 사업에 그가 제조한 제품이 사용됐다. 그렇게 제품의 품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30여 년간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거래처만도 5곳이라고 한다.

일전에 그가 카톡을 보내 왔다.

미국의 바이어와의 사연을...,

제이 킨더(Jay Linger)와의 상면은 25년 전인 1994년이었다.

그이가 부인과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국내 몇몇 회사를 찾아 상담을 했지만 수입해본 적이 없어서 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내게 마지막 상담을 해왔다.

제이 킨더는 부인 옆에 땀을 흘리고 서 있었다. 나는 가장이라는 체면을 살려주고 싶었다. 봉고차로 서울 대공원을 투어 해주고 잘 대접해 주고 미국으로 가게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1997년에 미국시장이 개방되어 뉴저지로 그를 찾아갔다. 그는 독점판매를 요구했다. 그렇게 거래가 시작됐고 상당량의 실적을 올렸다. 미국 9.11 테러 사건이후 월드트레이드센터 재건축에 제품(안전망)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시공되어 뉴욕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제이 킨더는 사업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표창장을 사무실에 걸어두고 내게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를 원했다.

막내딸을 미국 고등학교 유학을 보냈다. 딸은 유학 생활에 적응이 어려운 듯 했다. 홈식크에 적응자체가 힘들 때, 7시간을 부인과 함께 달려와, 딸을 돌봐주었다. 교무실에 들려 자신이 미국의 아버지라고 선언하는 등, 그렇게 많은 돌봄과 배려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됐다. 딸아이의 미국생활은 그에게 큰 빚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지금 딸은 코넬의대에 다니고 있다. 제이 킨더와는 참 많은 사연이 있었다.

2년 전쯤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암에 걸렸는데 잘 치료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손자를 데리고 디즈니월드도 다니고 자기 가족들과 추억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가 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6월 출장 중에 문자를 받았다.

It's very hard to say goodbye to you (너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다) 라는 마지막 문구에 눈물이 났다.

미국 그의 집을 찾았다. 믿길 수 없을 만큼 웃음 핀 얼굴로 그리고 미안해하는 형처럼, 고마웠다고 그리고 지난 일들의 기쁨을 더 이상 같이 못하는 걸 서운해 했다. 마지막 임종 순간은 나에겐 힘들었고,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그와의 만남 자체가 역사임을, 그가 가는 길에 확실히 알게 됐다.

4일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엔 그의 인생을 추억하는 추모객들이 가득했다. 15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추모객들이 유태인 교회에 모이기 시작했다. 교회 입구에는 그의 일생을 추억하는 사진틀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와 웃으며 식사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체 하면서 “너가 Mr, Bang이냐?”고 물어왔다. 그들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속에 내가 있었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인생 안에 같이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귀국길에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상대를 인생 안에 초대하고, 초대 받는 일인지 모른다. 나이와 지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는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경험의 축척에서, 오늘 나와 마주한 사람들과 관계되어 지는 함수관계로 나타난다. 곧 살아온 층이 높고 넓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 질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만남은 서로에게 어떤 숙명의 길 일지도 모른다.

어수선한 시대, 참 사랑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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