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군 탈출 후 광복군 합류, 광복 이후 사학자의 길로

▲ 故 김준엽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 <사진=고려대학교>

[안경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故 김준엽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은 교육자라는 타이틀에 앞서 광복군이라는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회고록 '장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문화·사회·등 제반 건설사업이 때문에 국민 각자는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에 투신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 정의,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 by 김준엽


김준엽 총장(1920년 8월 26일~2011년 6월 7일)은 99년 전 오늘이었던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0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둘째 형은 이미 독립운동가여서 그도 형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항일의식이 강했다.

역사에 관심은 컸던 김준엽은 일본 게이오대학 동양사학으로 유학 시절에 강제징집되어 일본군에 편제돼 중국 장쑤성 서주(西周) 소재 쓰가다 부대에 배치되었다. 이윽고 그는 부대를 탈출해 조선인 출신 학병인 장준하와 함께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했다. 김준엽은 쓰가다 부대에서 탈출한 최초의 조선인 병사가 되었다.

광복군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투신하면서 CIA의 전신인 미국 첩보국 OSS의 특수훈련을 받아 국내 진공작전 수행의 특공부대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다.

▲ 한미 합동작전을 전개한 광복군(KIA) 제2지대 국내 정신 대원들(1945년 8월 20일),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고려대 총장이 총리보다 높다"
- 상아탑을 지킨 사학자로서의 애국교육인


광복 이후에는 사학자로서 교육자의 길을 선택해 조국의 부강을 위해 애썼다. 1949년부터는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지냈으며, 1957년에는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 전문 연구기관인 아세아문제연구소를 설립해 통일을 위한 공산주의 연구에 앞장을 섰다.

중국통으로도 알려져 있어 고려대에 중어중문학과를 신설했으며 중국 정부가 수여하는 중국어언문화우의장을 받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공화당 사무총장, 통일원 장관직을 제의받았으나 모두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40여 년 동안 2번의 총리직 제안과 총 12번의 입각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고 알려진다. 폴리페서가 아닌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1982년에 고려대 9대 총장이 되었다. 1985년 강제로 사임을 당해 1985년 2월 25일, 고려대 졸업식 날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총장의 사퇴를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항의시위는 신학기 개강까지 이어졌다.

총장 당시 김준협 총장은 "고려대 총장이 총리보다 높다"고 언급하면서 총리직을 고사했다고 알려져 고대생들의 자부심을 높인 바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총장 사임 이후에는 회고록 '장정'을 집필하면서 사학 후배 양성을 위해 끝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교육자의 집념을 보여줬다. 

2011년 6월 7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김준엽은 생전에 수여받은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에 이어 타계 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년)에 추서됐고, 장례 후에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애국지사로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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