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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톡-오늘은] 9월 14일, 잊혀졌던 '장사(長沙)상륙작전'군번도 없는 무명의 학도병 용사, 일명 772부대
  • 안경하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 승인 2019.09.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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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전차상륙함 '문산호'-USS LST120이 좌초된 모습.(1950년 9월) <사진=미 해군>

[안경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9월 15일(1950년) 인천상륙작전은 이미 영화 등을 통해서 많이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보다 하루 전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적군의 오인을 유도하기 위한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


- 1950년 9월 14일 새벽, 부산항 출발 문산호

영덕의 '장사(長沙)상륙작전'은 지휘관 이명흠 대위 휘하로, 대구와 밀양지구에서 모집한 17~18세 학도병 600여 명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작전에 투입됐다. 이 임무는 원래 미8군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가 완벽한 후방 교란작전의 성공을 위해 맥아더는 고심 끝에 학도병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9월 14일 새벽, 육본 직할 제1 유격대대 이름으로 장사상륙작전이 개시됐다. 전차상륙함 '문산호(USS LST120, 2천366t)이 부산항을 출발했다. 

다음날 새벽 5시경, 총 786명이 탑승한 문산호가 상륙 해안에 접근했지만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상륙함은 좌초했다. 이를 파악한 인민군은 집중포화에 바다에 뛰어든 장병들은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해안 상륙에 임했지만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오후 2시 50분, 상륙은 성공했다. 이윽고 북한군의 고지를 점령한 수백 명의 군번조차 없는 학도병은 무명의 용사로 부활해 인민군 제5사단의 2개 연대와 전차 등을 포항과 영천 일대에 묶어두었다. 보급로가 끊어진 인민군의 낙동강 전선을 북상시켰다. 이는 다음날 새벽에 강행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작전명: 크로마이트)을 크게 도와준 셈이 되었다.

전사 139명·부상 92명, 39명 포로로 잡혀


- 적군 270명 사상, 포로 4명

상륙함이었던 문산호(선장 황재중)가 좌초되는 바람에 3일간만 작전을 수행하려고 했던 상륙부대는 귀환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인민군의 반격에 보급로가 없던 상륙부대는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다가 9월 19일, 해군이 보내준 LST 조치원호이 해안에 당도했다. 

상륙부대는 적군 270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으며 방어시설 토치카 11개소, 교량 2개, 도로 5개소를 파괴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인민군의 반격을 끝까지 저지했던 39명은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1997년이 될 때까지, 장사상륙작전은 기밀작전으로 그동안 우리에게 없었던 성공 작전이었다. 1997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인근을 순찰하던 해병대가 장사상륙작전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견했다. 이로써 장사상륙작전은 없었던 작전이 아닌 잊혀졌던 작전이 되었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들은 모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민간인 신분이었떤 문산호의 선장 황재중 씨는 지난해 6월 2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를 위해 쌰워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학도병들은 염려 마십시오"
by 작전 중 사망한 故 황재중 선장이 작전 개시 전에 남긴 말

작전에 참가한 군번없던 학도병들은 서울 탈환 후 북진작전이 시작된 1950년 10월 5일, 입대명령과 036군번이 내려졌다. 소속부대는 부산으로 귀항한 후 창설된 육본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가 되었다. 작전에 참가했던 문산호는 1991년 3월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한편, 장사상륙작전에 관해 배우 김명민, 최민호, 메간 폭스가 출연하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Battle of Jangsari, 2019)' 가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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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하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pr@economytal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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