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나카구스쿠·자카미·가쓰렌·나키진
역사 흐름 속 전쟁의 흉터와 복원된 美

▲ 슈리 성터의 성벽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오키나와(Okinawa, 大琉球)

슈리·나카구스쿠·자카미·가쓰렌·나키진
역사 흐름 속 전쟁의 흉터와 복원된 美


[배만섭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e톡뉴스)] 오키나와는 류큐제도를 관할하고 있는 일본 최남단의 현(縣)으로 16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에 편입된 지는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류큐’라고 이름은 명나라가 류큐 왕을 책봉하면서부터 유래되었고, 청나라 이후에는 현지 주민들이 불러온 지명인 오키나와를 행정구역으로 채택하였다.

과거 류큐왕국의 유산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많고 따뜻한 아열대 해양성 기후의 이국적 자연풍경과 함께 볼거리가 풍성하여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오키나와는 지리상으로 일본 본토보다도 대만(소류큐, 小琉球)에 더 가깝고 중국대륙과 한반도와도 가까워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첨예한 지역에 속한다.

현재도 격동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데, 대만과 오키나와 제도 사이 동중국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진 센카쿠 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류큐왕국은 15세기에 통일된 이후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적으로 편입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패망으로 미 군정시기를 거치다가 1972년 일본에 다시 반환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다르게 특이한 편이다. 특이한 성씨가 많고, 출산율(1.8명)은 일본에서 가장 높으며, 1인당 소득은 가장 낮고, 프로야구 팀들의 전지훈련장으로도 자주 애용되고 있으며, 주일미군의 대부분이 여기 오키나와에 산재돼 있다. 주일미군의 장기주둔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심한 편이고, 일본 본토에 대한 불평등 차별과 정부의 미비한 산업지원 등의 기타 여러 문제들로 인해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슈리성(首里城, Shurijo Castle Park)


슈리는 류큐 왕국의 옛 수도로 류큐 왕국의 정치·외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왕국이자 거성으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13세기 슌텐 왕조의 슌바준키(舜馬順煕)가 조성한 슈리성은 1453년에 일어난 시로·후리의 난으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고, 1945년 오키나와 전쟁으로 또 한 번 소실되었다가 1992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역사와 예술적 가치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육군 제32부대의 총사령부로 사용되다가 파괴되었다. 재건 이후에는 잠시 동안 류큐 대학의 캠퍼스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슈리성으로 복원되었다. 지금까지 옛 모습이 남아있는 슈리성 터가 2000년 12월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류큐 왕국의 최대 목조 건축물이기도 한 슈리성은 중국과 일본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슈리성은 역할에 따라 3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외관은 중국 자금성을, 구조는 한국의 견복궁을 토대로 지었다고 한다. 중심부에 높이 18m, 폭 28.8m의 붉은색 3층짜리 정전(正殿)이 있다. 총 253개의 기둥과 5만장이 넘는 기와가 쓰였으며, 왕을 의미하는 화려한 용무늬 조각이 정전의 가운데에 새겨져 있다.

해발 120m의 지대에 위치해 나하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아름다운 석양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매일 밤에는 라이트업이 실시된다.

슈레이몬(守禮門)


일본 지폐 2,000엔권의 앞면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슈레이몬을 보고 금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슈레이몬은 슈리성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1972년에 오키나와 현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확실한 건축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류큐 왕국의 제4대왕 쇼세이(尙淸王, 재위 1527~1555)의 시대로 추측하고 있다. 현판은 그 이후인 6대왕 쇼이이 왕때 중국인 삿보우시에게 편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편액에 적혀 있는 ‘슈레이노쿠니(守禮之邦)’라는 글자는 ‘류큐는 예를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과거 1579년 명나라 만력제(萬曆帝)가 류큐에 보낸 책봉조서에 쓰여 있는 구절에서 인용해 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류큐의 새 왕을 책봉하기 위한 책봉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왕과 대신들이 이곳에 나와 영접해 지극한 예를 표시했다고 한다.

소노향우타키이시몬(園比屋武御嶽石門)


슈레이몬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소노향우타키이시몬’은 석문으로 지난 2000년에 슈리 성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류큐 왕국의 대표적인 석조건축물이다.

원래는 류큐 왕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장소로, 석문은 기도를 올리던 배전(拜殿)에 해당되었고, 문 안쪽의 나무로 둘러싸인 숲은 성지에 해당된다. 이곳을 통해 국왕은 성 밖으로 나가는 순행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을 기원하던 신전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참배하러 찾아온다.

1519년 제3대왕 쇼신왕(尙眞王) 때 건축되었고 오키나와 전쟁으로 파손되었다가 1957년 지금의 모습으로 수복되었다. 1999년에는 중요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세이덴(正殿)


마지막 문인 호신몬(奉神門)을 지나 만나게 되는 세이덴은 슈리 성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류큐 왕국의 최대 목조건축물이다. 정전 앞에 펼쳐진 광장은 책봉식을 비롯한 의식과 예능의 무대로 쓰인 우나(御庭)로 불린다. 우나 광장 가운데에 높인 우키미치(浮道) 길은 국왕와 중국 책봉사만이 지나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정전은 14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화재(1709년)와 전쟁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고 재건되는 역사를 지녔다. 지금의 모습은 1992년에 철근콘크리트로 복원된 모습이다. 우나 광장의 밝고 붉은 하얀 가로줄의 길과 주홍빛 정전의 모습이 푸른 하늘색과 겹쳐 아름다운 대비적 조화를 이루어 많은 관광객의 필수 포토존이 되고 있다.

정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행정업무를 보던 호쿠덴(北殿)이 있고, 왼쪽에는 반도코로(番所)와 난덴(南殿)이 있다.

나카구스쿠 성터(中城城跡)


세계문화유산과 일본 100명성에 선정된 나카구스쿠 성터는 1440년 자키미 성의 주인 고사마루(護佐丸)가 가쓰렌의 성주를 견제할 목적으로 자키미 성을 이곳으로 옮겨와 증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지 않아 오키나와 내의 약 300여개의 성터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나카구스쿠 성터가 특이한 점은 지형을 활용하여 아름답게 조성한 성벽의 곡선미 때문이다. 석회암으로 구성된 성벽을 5각과 육각형으로 다듬어진 돌로 쌓았는데, 희귀한 점은 3가지 종류의 성쌓기 기술이 합쳐진 귀갑돌쌓기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미국 페리 제독이 성과 아치형의 문을 보고서 석축 기술력에 많이 놀랐다고 제독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에 적었다고 한다.

해발 167m에 위치하고 있어 성벽 위에서 중국해와 태평양 해상의 섬들을 한 눈에 전망할 수 있는 절경을 지니고 있다.

자카미 성터(座喜味城跡)


자카미 성은 1416년~1422년에 오키나와 제일의 축성가이자 류큐왕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무장이기도 했던 고사마루가 뛰어난 기술력을 동원해 병풍 모양의 곡선을 형성한 성벽을 만들어낸 성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그 모양새가 불가사리와 흡사하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석조 문이 남아있으며, 석회암 암반 위에 지어진 보통의 다른 성터와는 다르게 대지 위에 세워진 유일한 성이다.

외곽의 길이가 365m에 불과한 작은 규모이지만 1972년에 일본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슈터 성터와 함께 ‘류큐 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유산군’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944년에는 일본군의 고사포 진지로 활용되었고, 미 군정시기에는 미군 레이더기지로 사용되었다.

가쓰렌 성터(勝連城跡)


가쓰렌 성은 모치즈키아지(茂知附按司)가 13~14세기에 축성한 성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아하고 여성적인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는 가쓰렌 성은 자연 절벽을 이용해 경사진 언덕 위에 세워졌다.

마지막 성주인 아마와리(阿麻和利)가 류큐 왕국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슈리 왕조에 의해 1458년 멸망했다.

태평양을 향해 돌출된 모습의 성터 정상인 이치노쿠루와(一の曲輪)로 올라서면 드넓은 바다를 포함한 파노라마 풍경미가 펼쳐져 있다.

가쓰렌 성터 역시 복원된 모습으로 1972년에는 사적으로,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나키진 성터(今帰仁城跡)


나키진 성은 류큐 왕국 이전에 북산·중산·남산으로 나뉘던 삼산시대에 북산 왕이 통치하던 수도성이다. 상대적으로 나약했던 북산은 중산에 의해 1416년 패망했다.

이후 오키나와를 통일한 중산에 류큐 왕국을 세웠고 이 곳 나키진에 성을 건축했다. 1609년 일본 큐슈 반도의 지방 호족인 사스마 번의 침략으로 잿더미가 되어 방치하게 되었다.

성터는 해발 100m에 위치하며 성벽은 3~8m에 총 길이는 대략 1.5km 정도다. 기타 다른 성보다도 튼튼하고 오래된 퇴적층의 석회암을 사용해 견고하게 축조되었다. 복원과 발굴조사가 현재도 진행 중으로 일부 구간은 통제되는 곳도 있으니 유의. 날이 잘 맞으면 음력 7월의 제사 의례를 지켜볼 수도 있다. 나키진 성터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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