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명예, 마지막 창업1세대 부음
재일 한국기업인 모국투자 헌신평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일) 별세했다. 향년 99세다. (사진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일) 별세했다. 향년 99세다. (사진제공=롯데그룹)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한일 양국에 롯데그룹을 일으킨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비록 아흔아홉으로 천수를 누렸다고 볼 수 있지만 마지막 창업 1세대가 떠났다는 부음은 역시 슬픔이다. 고인은 한국경제 발전의 상징 브랜드로 꼽히는 고 이병철, 정주영 회장과 거의 같은 반열에 속한다. 고인은 일본에서 먼저 창업했지만 일본롯데보다 몇 배나 더 큰 한국롯데를 남기며 일생을 한국인 창업주로 살다 갔다.

서울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기어이 성취


고인은 경남 울주군(현 울산시) 태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이공학부를 나온 지식과 미래의 꿈을 엮어 롯데껌과 제과로 출발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사회와 잘 소통했기에 그의 롯데사업은 순조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후에는 5.16 정부의 모국투자 권유에 호응, 한국롯데를 크게 번창시켰다.

한국롯데 사업도 과자와 껌으로 시작했지만 호텔, 백화점에서 기계, 전자, 방위산업까지 모국의 경제, 사회 발전을 선도하는 분야에 집중하여 눈부신 성공을 보여 줬다. 그러나 먼저 일본에서 창업한 롯데를 기반으로 한국롯데를 일으키는 ‘왕복경영’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일본시장에서 돈 벌고 일본여성을 부인으로 맞아 사업하면서 일본으로 귀화를 거부하고 한국인으로 경영하기에 이런저런 애로가 따랐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고인은 일본인들과 친숙하게 교제하면서도 한국국적 지키기를 숨기지 않았다. 더구나 “한국롯데에서 번 돈은 한국 내에 재투자 한다는 원칙”아래 모계라고 볼 수 있는 일본롯데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어찌 일본측에서 좋게 볼 수 있었겠는가. 고인은 이를 철저하게 극복했던 것이다.

고인이 남겨 놓은 한․일 롯데의 계열사나 매출규모로 봐도 한국롯데가 월등하다. 고인은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롯데월드타워 사업을 오랫동안 꼽아왔다. 그러나 인․허가 과정부터 천신만고였지만 물러서지 않고 기어이 도전, 성취하여 123층, 555m의 수도서울 랜드마크를 우뚝 세웠지 않는가.

반면에 고인이 “노후까지 경영은퇴 없이 노욕을 보이지 않았느냐”는 일부의 지적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망국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고생 끝에 성공한 창업 1세대의 집념이자 신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노후의 건강이상 시기에 아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고 기억마저 희미한 배임혐의로 자신마저 휠체어 편에 재판 받고 실형 선고받은 장면은 오점이라 지적된다. 그렇다고 고인이 남긴 거대한 창업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평가절하 할 수 있으랴.

수많은 재일 한국기업인들의 모국 공헌


재일 한국기업인들의 모국투자 공적을 이야기 하자면 신 롯데명예와 동향 출신인 서갑호 회장을 비롯하여 섬유, 전자, 기계, 금융 분야까지 수많은 선각자들을 꼽을 수 있다. 이중 서 회장은 오사카로 건너가 막노동으로부터 억세게 돈 벌어 오사카 지역 동포사회를 단합시키고 한국영사관 건립해 주고 다시 도쿄로 올라가 한국대사관 부지를 무상 공여하기도 했다.

그 뒤 서 회장은 모국투자로 영등포에 방림방직 공장, 구미에 윤성방직을 설립하여 한국면방산업을 크게 일으킨 공적을 쌓았다.

김해 출신 청년 김한수 씨는 오사카의 포목상 밑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쌓아 귀국 후 경남모직, 한일합섬을 일으켜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어 섬유수출을 주도했다. 또 경북 칠곡 산촌 출신 김철호 청년은 오사카 철공소 견습공으로 출발하여 모국투자로 3000리호 자전거, 3륜 화물차, 승용차 브리사까지 자동차 산업을 일으켰다.

경북 영일만 출신 이원만 사장은 단신으로 도일하여 사업안목을 쌓고 나일론산업을 배워 코오롱그룹을 일으켰다. 이 사장은 5.16 후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수출공단 설립, 가발수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벌거숭이 산에 조림산업을 펼치고 있는 대통령에게 “전봇대를 목재 대신에 콘크리트 전주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5.16 정부 주도 고도의 ‘압축성장’기를 더듬어 보면 곳곳에 대일 한국기업인들의 공적이 축적되어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제1주의 정책 대목마다 재일 한국기업인들의 모국사랑, 투자헌신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의 구로 수출공단, 구미 전자산업공단, 울산 석유화학단지, 마산 수출자유지역 등등 가는 곳마다 일본서 번 눈물겨운 돈이 투자되어 모국의 경제발전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 확인된다.

이런 측면에서 신격호 롯데 명예의 별세를 계기로 수많은 재일 한국인 기업인들이 우리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되돌아보고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간절하다. 롯데그룹은 지금도 청장년기업으로 왕성한 성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당수 재일 기업인들이 경제개발 초기에 큰 역할을 하고도 창업 2세대를 만나기도 전에 사라져 이름마저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새삼 모국사랑, 모국투자 헌신 평가


재일 동포나 재일 한국인기업인들은 한․일 관계가 불안할 때마다 모국사랑 애국심은 더욱 고조된다고 말한다. 과거 망국(亡國)시절을 거쳐 조국 대한민국이 건국된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기 때문에 다시는 모국이 잘못되는 경우를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일 동포사회의 모국사랑은 신생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참가인 1948년 런던올림픽 선수단의 유니폼과 스포츠용품 제공으로부터 설명된다. 당시 올림픽 참가 자격은 획득했지만 나라에서 선수단 유니폼마저 준비할 능력이 없었다. 이때 재일 동포사회가 자발적인 모금으로 뒷받침해 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로부터 모국에 길․흉사가 생길 때마다 성금과 물자지원이 상례화 됐다고 한다. 6.25 전쟁은 물론이고 한․수해 복구지원, 5.16 후 방위성금, 새마을운동, 평화의 댐 성금, 88 올림픽 성공지원에서 IMF 구제금융 상환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기록으로 보면 재일 동포사회의 ‘고향발전사업’ ‘망향의 사업’ 등이 깨알처럼 쌓여 있다. 새삼 재일 동포, 재일 한국기업인들의 모국사랑을 평가하고 감사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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