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지평리전투 기념비 제막식 행사(1966년). (사진=국가기록원)
6.25전쟁 당시, 지평리전투 기념비 제막식 행사(1966년). (사진=국가기록원)

[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이에 한국 국방부는 1957년 7월 15일 지평리 전투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 전적비를 세웠으며,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산군이 평화롭던 이 강산을 피로써 물들이고 조국의 가쁜 숨이 경각을 다툴 때 16개국 유엔군이 인류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정든 고국산천을 등지고 수륙만리 이역의 땅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지 이곳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제39군 예하 115, 116, 119, 125, 126의 5개 사단이 피에 굶주린 이리떼와 같이 인해전술로 덤빌 때 미 제2사단 예하 제23연대 전투단과 배속된 프랑스군 대대가 이를 격퇴하였으나 14일 재차 공격으로 완전 포위되어 통신이 차단되고 보급이 두절되어 탄환까지 제한된 판국에 백병전을 감행하고 사수하여 15일의 공중보급과 기갑사단의 증원으로 5배나 되는 적을 분쇄 격퇴하였으니 이 어찌 유엔군과 우리나라의 영광이며 자랑이 아닌가.

실로 임들은 우리 겨레를 살렸나니, 여기 그 위대한 공훈을 흠앙(欽仰)하며 감투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함과 아울러 전 장병의 영령 앞에 명복을 빌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지평리 전투에서 전설의 전쟁영웅 몽끌라르 장군이 노련한 백전용장의 지혜를 가지고 인해전술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중공군의 파상공격을 물리치고 지평리를 성공적으로 사수함으로써 중공군의 2월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고, 우리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다시 한 번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지평리 전투의 승리는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6․25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2대전투로 꼽히며, 또한 당시 참전하였던 프랑스대대가 6․25한국전쟁에서 거둔 가장 귀중한 승리로 평가되고 있으며, UN군의 전사를 통해 10대 대첩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만약에 이 전투에서 실패하고 50여 km 이상 남쪽으로 더 밀려났었다면 미 합참본부는 유엔군을 한국전에서 철수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지금 생각하여도 소름이 끼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프랑스대대의 한국전참전 결정에서부터 지평리 전투의 승리를 가져오게 한 하늘이 우리나라에 내려주신 한국자유 수호천사, 불세출의 전쟁영웅 몽끌라르 장군을 우리는 자자손손 잊지 않고 감사하고 공덕을 흠앙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지평리 전적지는 국방부정신전력원의 교육과정에 포함된 호국안보현장 답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11년 2월에 몽끌라르 장군을 6․25 한국전쟁 영웅으로 선정하였다.

필자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필자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프랑스 내에는 장군에 대한 흠앙의 헌정물(기념비, 광장, 거리의 명명)이 산재해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우리 모두도 지구상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국민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6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3성 장군에서 스스로 중령계급으로 강등하여 프랑스 대대병력을 지휘하기 위하여 한국전에 참전하여 영하 -20도의 혹한에서 밤을 지세우면서 진두지휘하고 부하들을 독려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신화적인 전쟁영웅 몽끌라르 장군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각적으로 기려야 하는 동상건립이나 명명식을 지평리 현장이나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거행하는 것이 장군에 대한 마땅한 예의와 도리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우리의 자유평화수호의지와 안보의식을 새롭게 다져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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