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월호]

문화교류로 분단극복

언어 동질성 회복부터

라종억(羅鍾億) 이사장, 이벤트성 교류 그만

비판있지만 햇볕으로 남북관계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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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羅鍾億(라종억) 평통 경과분과 위원장>

문화적 이질감부터 해소

새해부터는 남북문화의 교류를 통해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통일부 인가단체로 발족한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은 정치적 이벤트성 교류에 집착하기 보다 문화적 접근으로 남북 동질성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한다.

이 연구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과학분과위원장인 라종억(羅鍾億)씨를 이사장으로 발족하여 서울시립대 안두순 교수가 원장을 맡아 운영되고 있다.

연구원 발족이후 지난해 말까지 4차례의 학술세미나를 가진바 있다.

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과학분과위원장에 선임된 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면 우선 상임위원에 대한 교육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교육을 통해 습득된 지식은 남북간 이질감 해소와 대 국민 홍보에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통해 좋은 제도를 연구하고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문화적 이질감 해소를 위해서는 문화·예술인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이벤트성으로 활용하는데는 반대합니다. 자칫 이들에 대한 우월성이나 영웅심으로 비쳐질 수가 있으니까요.”

남북간 언어 이질감 심각

라 이사장은 남북관계를 더욱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접근 외에 문화적 교류를 적극 펼 것을 주장한다.

그는 실체론적 접근보다는 민족문화의 동질성 회복에 의한 관계론적 사고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문화적 교류가운데서도 언어의 동질성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지금 남북의 언어 이질감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서로 이해 못하는 언어가 자꾸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언어 이질감은 남북한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 내 언어 이질감도 심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기성세대가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언어를 순화·발전시킨 사람은 어떤 의미로든지 포상을 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해요. 예를 들면 아름다운 시를 쓰거나, 동화를 만들어 어린이에게 친밀감을 심어주는 사람들을 상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라 이사장의 언어사랑은 말로써만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최고 경영자와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민주평통 경제과학 분과위원장이란 바쁜 직책 속에서도 시를 써서 세상을 순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2천년 5월 월간 조선문학에 나사랑5편의 주옥같은 시를 써 시인으로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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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등단 기념회에서의 라종억 시인>

대화물꼬 텄다는 사실이 중요

남북관계가 상당기간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남북고위급 회담도,이산가족 상봉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남북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도 시들해졌다.

6.15 남북정상회담 후 곧 이루어질 것 같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도 기약이 없다.

현재로서는 양측관계가 언제 활력을 되찾게 될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자 일부 국민들사이에서는 불안해하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다소 정체돼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너무 서두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고삐를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남북관계를 꼭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과 연계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현 정권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도 됩니다. 꼭 당대에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독일의 유명학자들도 한국이 남북관계를 너무 서둔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통일문제를 잘 못 접근하면 양측에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라 이사장은 최근의 남북관계를 이렇게 평가한다. 남북이 빠른 시일 내 통일을 이룬다 해도 통일비용 부담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서두를 일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한다.

퍼준다비판에도 햇볕정책 성과

양측 관계가 정체돼 있는 것은 무엇보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관 때문으로 그는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전 행정부에 비해 강경하게 유지하다보니 남북관계도 경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남한 정부가 정권말기에 놓여있어 북측이 과연 누구와 대화를 해야할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는 것도 남북관계 답보상태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6.15 남북정상회담 이전과 비교하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일부는 꿈에도 그리던 이산가족도 만나보았고, 금강산도 가보았습니다.

또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금강산관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현 남북관계는 정체돼 있다기 보다는 발전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듯합니다. 단지 기대가 너무 컸기에 발전이 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느낄 뿐입니다.”

그렇지만 야당과 일부 비판론자들은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너무 퍼준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다는 등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정부가 북한에 너무 퍼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지난 2천년의 경우 북한에 지원한 것은 16천만달러 수준에 불과합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전 남북간 긴장으로 인해 국방비가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북한 지원은 큰 부담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 서독은 통독을 위해 동독을 얼마나 많이 지원했습니까.

정부의 대북지원이 국민의 눈에 퍼주기라고 비치고 있는 것은 다분히 홍보부족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통일, 문화를 생각하는 경영인

라 이사장은 정부가 홍보를 하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지식으로 무장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개탄한다.

특히 남북간에 존재하고 있는 깊은 문화적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라 이사장은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대학(고려대 농대 임학과)졸업 후 전공을 살려 잠시 조경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조경에 대한 낮은 인식과 이에 따른 수요부족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직장이 동양고속이다. 동양고속은 라 이사장의 장인이 오너로 있는 회사다.

그는 그곳에서 기획실장으로 그룹경영을 맡아보다 동양고속 계열사인 국제실업(건설사)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인도네시아 시장에 최초로 진출하기도 했다.

현재는 토목·엔지니어링 회사인 () 중앙개발과 무전기, 스피드 건 등을 수출하는 백금정보통신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과학분과위원장과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직까지 합하면 13역을 하는 셈이다.

주위에서는 저한테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니 벅차지 않느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경영·통일·문화, 이 모두가 연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영기법은 기업이건 정치건 문화건 연관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업무를 한꺼번에 하다보면 시너지효과가 생겨 능률이 오릅니다. 저는 어릴 때는 박사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감탄해 하며 그를 불사신으로 여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습니다.”

명문 박사집 6남매의 막내

그는 전형적인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인 고 라용균(羅容均)선생은 독립운동가로 3.19운동 당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또 민주당 정권때는 국회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인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라 이사장은 61녀가 모두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집안의 막내이다. 현재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로 재직중인 둘째형 종욱(鍾旭)씨는 한국 최초의 미 하버드대 입학생이고, 주 영국대사로 있는 넷째형 종일(鍾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국 캠브리지대 박사이다.

라 이사장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곧 정치학박사 학위도 수여 받게 된다.

하나뿐인 누님 종란(鍾蘭)씨는 아직 박사학위는 갖고 있지 않지만 남편이 박사이니 누님도 박사인 셈이라고 라 이사장은 껄껄 웃는다.

종란씨는 장영신(張英信) 애경그룹 회장,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 부인 등과는 경기여고 동창이다.

라 이사장은 선친으로부터 세상 살아가는 도()를 깊게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비록 경제적 측면에서는 큰 도움은 주지 않았지만 그 보다 훨씬 소중한 정신적 교훈을 주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아버님은 세상을 네모난 나무판에 담긴 된장을 바가지로 퍼내듯 살아가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네모난 나무판에서 바가지로 된장을 푸면 된장이 다 퍼지겠습니까. 아무리 깨끗이 푼다고 해도 네 구석에는 항상 된장이 남아있기 마련이지요. 그만큼 세상을 너무 각박하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물고기도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사람이 너무 빈틈이 없이 완벽하게 살다보면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사람이 붙지 않는 등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라 해석된다. 오히려 말이나 행동이 약간 어눌하고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사람이 접근하기 쉽다.

나라사랑, 가족사랑, 친구사랑

라 이사장은 이러한 의미는 우리가 흔히 쓰는 영국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신사는 넥타이를 너무 똑바로 메도, 일류 메이커 제품을 많이 써도 안됩니다. 또 눈이 부실 정도의 실크 양복을 입어서도 안되고요.”

선친 라용균 선생의 이런 정신이 백봉(白峰) 신사상으로 승화됐다. 라용균 선생의 호를 따 지난 99년 제정된 백봉 신사상은 중앙언론사 정치부기자들의 설문을 통해 선정된 정치인에 매년 수여되고 있다.

991회때는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조순형(趙舜衡) 의원,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의원이 수상했고, 지난해는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 김부겸(金富謙) 의원이 각각 수상했다.

라 이사장은 어느 가장보다도 가정을 중시한다. 가정이 잘 돼야 만사가 잘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깊은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까.

집사람(李彩永)은 저와 동갑내기로 친구이자 어머니와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몇 년 동안 야인생활을 할 때도 용기와 격려, 그리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라 이사장은 슬하에 11녀를 두고 있다. 아들(範洙)은 미국 조지워싱턴에서 MBA학위를 받은후 현재 LG전자에 근무하고 있고 딸(蕙洙)은 보석감정사로 일한다.

라 이사장은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친척이 별로 없고, 천주교 신자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다 보니 형제자매간에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쉽다고 한다.

저의 호가 우범(友范)입니다. 벗이 물처럼 넘친다는 의미지요. 사람을, 친구를 좋아하다 보니 호도 그렇게 지었습니다.”

나라사랑, 가족사랑, 친구사랑이 오늘의 라 이사장을 있게 한 원천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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