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귀향한 노병의 이야기

영화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킬컷

[최영훈 칼럼@이코노미톡뉴스]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140개의 검은색 화강석 판으로 이뤄진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가 있다.

4만 895명의 전사 및 실종 참전 용사의 명단이 써져 있는데, 이 중 21번부터 140번까지는 오직 미군의 명단이다. 명단은 주별로 분류되어 있는데 앨라배마로 시작해 와이오밍으로 끝난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180만 명에 달하는 미군이 참전했고 이중 3만6492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미국은 전사자 유해 모두를 선박을 통해 자국으로 옮겨 갔다. <그랜토리노>는 살아 귀향한 노병의 두 번째 전쟁 이야기다.

한국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온 월트 코왈스키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평생 디트로이트의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 얼마 전 아내의 장례를 치렀고, 신앙엔 냉소적이고 아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 요즘엔 늙은 개 데이지와 포치에 앉아 블루리본 맥주를 마시며 길을 감시하듯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월트가 애지중지하는 건 포드에서 일하던 시절 직접 조립한 72년형 그랜토리노와 M-1 개런드 소총이다. 일상은 삭막하다.

삼주에 한 번씩 이탈리아계 백인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그때마다 험한 욕을 주고받으며 이웃의 정(?)을 쌓는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일본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일본 자동차를 팔고 이웃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집 몽족 소년이 그의 차를 훔치려다 들키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월트는 포치 밖의 이웃에게,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걸 보기만 하던, 그 낯선 타인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이웃이 된다. 그 이웃을 위해 최후의 전쟁에, 한 사람의 군인으로, 미국인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어른으로 마지막 임무에 나선다.

팹스트 블루 리본(Pabst Blue Ribbon) 맥주. (사진=Pabst 홈페이지)
팹스트 블루 리본(Pabst Blue Ribbon) 맥주. (사진=Pabst 홈페이지)

마지막 전쟁으로 지켜낸 것


그 마지막 임무를 통해 그가 지키려한 것이 무엇인지, 왜 낯선 몽족 가족을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던졌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인종차별적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이발소 주인을 이탈리아계 미친놈으로 부르고, 이발비를 얘기하자 “네 아버지, 유대인이냐 왜 맨 날 이발비를 올리느냐.”고 유대인까지 싸잡아 욕한다. 이발소 주인은 월트에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망년 든 노인네.”같은 표현도 서슴지 않고, 폴란드계를 비하하는 표현인 “폴랙(Polack)으로도 부른다. 건설 현장 책임자인 아일랜드계 백인을 좋은 자동차나 탐내는 무리들로 폄하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시아계를 싸잡아 비하하는 용어도 등장한다. 미국 문화계의 진정한 보수로 존경받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차별을 보여주려 이런 장면을 넣은 것은 아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미국에 사는 모두가 과거 한때, 소외당했던 이민자이자 이방인이었으며, 현재 그 소외와 이방인의 위치에 있는 이라도 그는 미국인이며, 처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임을 말한다. 이를 위해 일부러 미국 백인 중에서도 성향이 분명해서 영화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등을 등장시킨다.

조롱과 농담의 대상이 되곤 하는 이들의 존재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양한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고, 그 다양성을 에너지로 성장하는, 말 그대로 문화와 인종의 용광로이자 이민자의 나라임을 상기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너를 비하하다면 나 또한 누군가한테 비하될 수 있고, 이렇게 다른 나도 미국인이듯 나와 다른 너도 미국이라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태생적으로 갖고 있어야만 하는 타자에 대한 존중과 연민의 절대적 필요까지 말한다.

월트가 죽은 후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인 그랜토리노가 월트의 손녀가 아니라 몽족 소년에게 유산으로 남겨지는 장면에 감독의 모든 메시지가 함축 되어 있다. 이민자의 나라의 정신을, 그 서로 다름을 수긍하고 용인하는, 똘레랑스의 나라 미국의 정신을 새로운 이민자가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미국이 미국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정신은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존엄성이 훼손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으로 확대 된다. 감독은 결국 그 정신이 이민자가 세운 나라 미국이 진정으로 지켜내야 할 가치이고, 나아가 종교와 인종, 세대와 성별이 다른 타자에 대한 경계를 당연시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지 않고 지켜내야만 하는 가치임을, 월트가 한국과 미국에서 치른 두 전쟁에서 지키려한 것이 바로 그 가치임을 말한다.

참전 용사들이 지켜낸 가치


5월 22일, 토요일, 부산 남구청 대강당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의 사진을 찍는 라미 현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에서 작가는 한 노병의 말을 전했다. 그 노병은 한 인간의 자유를 위해 전사 세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희생에 감사하고 늦게 찾아뵈어서 미안하다 했더니 오히려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더 열심히 싸워 한반도 전체에 자유를 찾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같은 생각인 걸까? 전사의 희생 없이 이 사회의 가치는 지켜 질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걸 말하기 위해 세상을 응시한 채 노년을 보내던 노병에게 자기를 불살라 그 세상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에게 법의 심판이 떨어지게 하는 임무를 맡긴 걸까? 이 최후의 전쟁에서 월트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희생만으로 공동체의 가치와 그 가치를 이어갈 어린 이웃을 살린다. 이 전사의 일, 아무도 죽이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불살라,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일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군인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전쟁 없이, 아무도 죽이지 않으면서 생의 한순간을 받쳐 묵묵히 임무를 다함으로써 조국을 지키고 국민을 살리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갈 때마다 <그랜토리노>의 그 장면, 월트가 갱들을 향해 손가락 총을 꺼내들던 장면을 떠올린다. 이어 질문한다. 여기 잠든 이들은 누구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위해 총을 들었나? 낯선 나라에서 어린 병사를 죽여 얻은 훈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월트는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그 마지막 전쟁을 결심한 것일까? 70년 전, 분명, 그의 소총으로 지켜낸 가치가 있다.

<그랜토리노>는 한국전의 용사들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존엄과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라미 작가의 강연을 들어보니 한국전쟁에 참전한 병사들 대부분이 이와 같은 마음으로 참전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름도 처음 듣는, 지도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낯선 나라를 위해 참전했다. 그 나라에 사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강탈당한 위기에 처한, 핍박 받는 이를 위해 참전하여 피를 흘렸다. 그렇게 청춘과 생명을 받쳐 전사로서 지켜야내야 할 것을 지켜내는 임무를 완수했다.

부산 소재 재한유엔기념공원 내 추모명비 모습. (사진=필자 제공)
부산 소재 재한유엔기념공원 내 추모명비 모습. (사진=필자 제공)

기억하고 감사하다.


올 4월에도 어김없이 그 장엄한 검은 벽, 추모명비 앞에 탐스런 겹벚꽃이 폈다. 가녀린 벚꽃이 흩날려 지고 난 뒤 피는 겹벚꽃처럼 수만 명의 청춘들이 지고 간 땅에 오늘 우리의 삶이 피었다.

저 쓸쓸히 서 있는 미국 참전 기념비가 4계절 외롭지 않길 바란다. 영령들이 외롭게 않게 딸의 초등학교가 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지켜낸 나라의 미래가 자라는 모습을 건너보며 영령들은 안식을 얻지 않았을까? 여기 잠들어 있는 용사, 살아 고향으로 돌아간 용사 모두 그들이 누구를 위해, 왜 싸웠는지 기억하는 이들로 인해 위로 받았으면 한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께 당부하나 드린다.

부산에 온다면 꼭 이곳을 들려줬으면 한다. 해운대, 광안리도 좋고 기장의 사진 찍기 좋다는 고급 호텔도 좋지만 이곳 재한 유엔 기념 공원을 꼭 들려줬으면 한다. 3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예쁘지만 어느 때 오더라도 이 영령들을 위해 많은 분들이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이니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그렇게 관광 삼아 무심히 거닐다 먼 나라에서 온 낯선 이름을 가진 용사의 묘비 앞에 잠시 추모객으로 멈춰서 인사 해주길 바란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