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국민체육센터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 교실 개강식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물놀이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5). (사진=연합뉴스)
경남 함양군 국민체육센터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 교실 개강식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물놀이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5). (사진=연합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십여 년 전, 한 2년 정도 열심히 수영을 했었다. 레인마다 전문 강사가 있는 한 대학의 체육센터 수영장에 등록해, 숨쉬기부터 시작해서 개인 혼영(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서너 세트 안 쉬고 할 수 있을 만큼 배우고 익혔다. 누가 봐도 제법 수영하는 모습이 그럴듯해 보일만큼 수영에 미쳐 있었다. 그러다 딸이 태어난 후 육아에는 시간을, 살림에는 강습비를 보태고자 그만뒀다. 십 년이 훌쩍 흘렀다.

그러던 올봄, 매일 맥주나 마시고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는, 취미와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바람에 이렇다 할 취미가 없어 보이는 남편이 불안해 보였는지 아내는 다시 수영을 해보라고 했다. 딸과 등하굣길을 오가며 하루에 6,7 천보 이상 걸어 유산소 운동량이 적지 않을뿐더러, 틈틈이 탄력 밴드로 운동도 해서 근육량도 괜찮고 건강에 큰 문제도 없어서 그 권유를 처음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권유를 하기에, 이때 아니면 좋아하던 수영을 다시 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못 이기는 척, 다시 수영장에 등록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오랜만에 간 수영장의 풍경은 변한 게 없었다. 기초반은 허우적거리고, 접영/평영반은 평영은 제 자리에서 멈춘 듯했고, 접영은 접영인지 아우성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두 팔을 물속에서 빼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네 개의 영법을 끝낸 교정반은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격차가 컸고, 마스터 반은 느긋한 반과 목숨 거는 반으로 나뉘어 다들 자기 수준에 맞게 운동으로서의 수영을 하고 있었다.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수영복이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영복 사이즈와 화려함은 수영 실력과 비례, 또는 반비례하고 있었다. 실력이 늘수록 수영복의 사이즈는 줄고, 색은 화려했다. 기초반은 예나 지금이나 무채색의 최대한 노출이 적은 걸 입는다. 남자나 여자나, 몸매와 미모도 상관없다. 나 또한 기초반 때는 검은색 5부를 입었었다. 교정반으로 넘어간 뒤 5부 중에서도 화려한 걸로 바꾸었고 마스터 반으로 넘어가서야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수영복을 찾아 입었다.

수영장에 다시 가기 전 갖고 있는 수영복 중에서 뭘 가져가야 할지 고민을 했다. 오랜만에 수영을 해서 헐떡거리며 겨우 꽁무니를 쫓아갈 사람이 화려한 걸 입는 건 좀 그렇다 싶어 보수적으로 "보라색" 수영복을 골랐다. 그러다 며칠 지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허우대로 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나." 그 후 수영복을 바꿨다. 롤리팝 무늬의 탄탄이-소재가 초보자용과는 다르다-와 오렌지색 탄탄이 숏 사각 수영복 두 개를 가방에 담았다.

검은색 래시가드의 물결


아이가 물놀이를 즐길 만큼 큰 뒤로 경주와 거제에 있는 모 콘도의 온천을 이용한 물놀이 시설을 종종 간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보호자의 복장을 누가 정해준 것 같다는 것이다. 아빠든, 엄마든 실내용 수영복만 입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빠들은 수영복인지 반바지인지 구분 안 가는 헐렁한 해수욕용 수영복을 입고 위에는 래시가드나 합성섬유로 만들어 잘 마르는 반팔이나 민소매 셔츠를 입는다. 엄마들 역시 팔다리를 다 감싼 긴 래시가드를 입고 그 위에 반바지까지 겹쳐 입는다. 색도 거의 같다. 대체로 검은색과 흰색, 회색에 로고만 약간 다른 색이다. 래시가드로 체형을 커버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색들은 왜 다 무채색일까? 햇빛도 없는 실내 물놀이 시설에서도 래시가드를 입으면서까지, 그것도 자동차 소비자의 색상 선호도와 같은 무채색의 래시가드를 입는 이유는 뭘까? 초보자 때는 무채색의 무난한 수영복을 입다가 수영에 자신감이 붙은 후에는 화려한 색상의 타이트하고 노출이 심한 수영복으로 바꿔 입는 이유와 같은 걸까?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사진=위키피디아)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사진=위키피디아)

사회적 소비를 하는 이유


영국의 건축사학자 에이드리언 포티가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에서 말했듯이 “다양한 디자인의 차이를 아는 것은 곧 사회의 이미지”를 아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소비자의 디자인과 색상 선택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 규율 속에서 수행됨을 의미한다. 그 결과 우리의 개별적인 소비는 내가 속한 사회의 이미지로 통합되며, 그 통합은 작게는 내가 속한 수영반, 동호회, 학교, 계모임에서 이뤄지고, 크게는 지역 공동체와 세대와 나라의 차원에서도 이뤄진다.

우리의 개별적인 소비가 결국, 이렇듯 사회적인 소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게도 타자를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타자를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건, 고병권이 <다이너마이트 니체>에서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해석하며 말했듯이, 자신의 가치를 설정할 수 없는 이는 타인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 성향의 심화는 니체가 말한 노예와 같은 소비 성향으로 굳어진다. “타인의 평가, 세상의 평가에 굴복”하는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우린 궁금해진다. 어떻게 하면 눈치 보기 소비, 남을 위한 소비가 아닌 나를 위한 소비, 내가 입고 싶은 데로 입고, 내 몸과 마음을 긍정하는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필자는, 두 장소의 서로 다른 연령층, 다른 장소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하나는 내 수영시간 다음 시간에 있는 아쿠아로빅을 하는 할머니들로부터다. 할머니들은 개성적이다. 몸매와 외모는 물론이고 수영복과 수모도 제 각각이다. 누가 누구에게 맞추질 않는다. 공통점이라고는 연령대와 성별 밖에 없다. 할머니들의 패션은 수영장 밖에서도 자유분방하다. 꽃무늬와 호피도 두려워하지 않고 빨강과 핑크도 개의치 않는다. 남에 눈치 볼만큼 봤고, 남한테 맞출 만큼 맞춰봤고, 자랑도 어지간히 할 만큼 했으나 결국엔 인생은 내가 좋은 게 가장 좋다는 진리를 깨우친 분들은 그 해방감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또 다른 희소식의 출처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워터밤 행사를 찾는 젊은 친구들이다. 안 그래도 올여름, 무슨 검도 도복을 연상케 하는 통 넓은 검은 바지에 흰색 셔츠나 티를 입고 활보하는 청춘들을 보며 심난했었다. 이 여름에 노출은 고사하고 일본의 무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유행인가 싶었다. 이제 청춘들에겐 노출의 과감함도, 원색의 용기도 사라진 건가 싶었다. 이런 걱정 끝에 마주한 워터밤 축제와 콘서트, 풀 파티의 매진 소식은 내게 안도감을 줬다. 청춘이 청춘답게 노는 여름은 여름이 겨우 그 구실을 하는 것이고, 청춘이 청춘의 구실을 한다는 증거 아니겠나?

Dove의 Real Beauty 캠페인 홈페이지 갈무리
Dove의 Real Beauty 캠페인 홈페이지 갈무리

한 번뿐인 짧은 인생


5,6년 전 미국에 갔을 때, 필자보다 서너 배는 덩치가 큰 여성들이 자기가 입고 싶은 데로 입고 다니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내 인생, 내 몸이고,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입고 싶은 옷을 샀으니 이렇게 입고 다닐게."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형태로든 이 생의 순간을 최대한 누리며 사는 것 같았다. 자신이 누릴 생의 기쁨은 남보다 큰 덩치와 나이는 물론이고 세간의 시선도 방해할 수 없다고 온 몸으로 웅변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이제 좀 변하는 것 같다. Dove의 Real Beauty 캠페인의 철학과 닮은 광고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수영복 브랜드도 폭넓은 사이즈에 화려한 색상과 과감한 디자인의 제품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니 이젠 <워터파크, 비키니 착용 두고 갑론을박> 같은 촌스러운 제목의 기사가 그만 나올 때가 됐다. 내가 열심히 번 돈을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누구한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굳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해야 할까? 누구나 한번뿐인 인생이다. 그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나 짧기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 그걸 하고 살아야 한다. 남자 샤워장까지 들릴 정도로 큰 함성을 지르며 물속의 자유를 만끽하는 아쿠아로빅 할머니들과 워터밤의 물세례 속에서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노는 청춘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