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금융개혁의 성공 조건

글/金大號(김대호 매일경제신문 금융부장)

DR 할인에 부실대출 늘린 한빛은행

한빛은행이 7월 초 뉴욕시장에서 10억 달러를 조달해왔다. IMF 구제금융 이후 외자를 도입하는 기관이나 사람은 영웅으로 받들어졌다. 우리 경제가 파탄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외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외자는 곧 우리의 생명수였다. 임창렬 경기 지사, 강봉균 재경부 장관, 정덕구 산자부 장관 그리고 유종근 전북 지사 등이 외자 도입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외화를 대거 도입한 한빛은행에 대해서는 별로 찬사의 소리가 없다. 칭찬은 고사하고 욕을 하는 소리가 더 높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한빛은행은 예탁증서라고 불리는 DR을 발행해 외국 금융기관에 파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었다. 한빛은행이 외국 금융기관에 판 주식의 가격은 주당 6천5백원이었다. 서울의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던 시세보다 21%나 싼 시세였다.

한빛은행은 금융 구조조정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라는 유서 깊은 두 은행을 통합하면서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여해 만든 은행이다. 규모도 가장 크다.

이 은행이 자기 주식을 뉴욕에서 21%나 할인해 팔았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현행 DR 발행 규정에 따르면 10% 이상 할인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DR을 싼 가격으로 발행하면 문제가 많다. 우선 우리의 자산을 헐값에 내다팜으로써 국부를 유출시킨다. 발행기관의 피해도 크다.

한빛은행의 싼 외자조달은 또 다른 은행과 기업의 외자조달에 차질을 준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한빛은행은 한국의 금융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 신용 수준을 가늠하는 대표 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초대형 은행이 외자를 조달하면서 자사 주식을 21%나 할인 발행해 버림으로써 다른 기관들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빛은행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 시장에서 로드 쇼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대우 문제가 터져 신용도가 급락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변명이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대우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우의 부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었다. 국제 투자가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오히려 대우에 대한 한빛은행의 자세였다. 지난해 연말 이후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은 대우에 대한 대출을 줄여나갔다. 그런데 유독 한빛은행만은 대출을 수천억원 더 늘렸다. 부실기업에 대출을 많이 해주면 그 은행의 신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 한빛은행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빛은행의 사례를 반추해 봄으로써 우리의 금융 구조조정을 한번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시중에 파다한 2차 금융 구조 조정설

정부가 금융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우리 경제가 IMF 구제금융 체제로 돌입한 1997년 12월부터이다. 1년 8개월 가량 지난 셈이다. 그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조치는 역시 은행 강제 퇴출이다. 98년 6월 29일 금융감독위원회는 BIS 비율이 낮다는 이유를 내세워 동남, 동화, 대동, 충청, 그리고 경기 등 5개 은행을 퇴출시켜 버렸다. 우리나라 금융 역사상 은행이 망해 사라지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금감위는 이어 제일과 서울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감자를 단행해 기존 주주들의 소유권을 상당 부분 박탈했다. 요즈음은 외국에 내다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금감위는 또 조흥-충북-강원, 국민-장기신용, 하나-보람을 통합시켰다. 외환, 부산, 경남 등 거의 모든 은행에 대해서는 유상증자 또는 해외에서 자본을 유치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4만명 이상의 은행원을 잘라냈다. 부실대출은 성업공사로 넘기고 64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퍼부어 넣었다. 그 결과 은행의 BIS 비율은 IMF가 요구한 8%선을 넘어섰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정상을 회복한 것이다. 증권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다. 고려, 동서, 한남, 그리고 장은증권은 폐쇄됐다. 살아남은 회사에 대해서는 영업용 순자본 비율을 높이는 작업이 단행됐다. 투신사 중에서는 한남이 무너졌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종금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97년 12월에 청솔, 경남, 경일, 고려, 삼삼, 신세계, 쌍용, 한솔, 항도, 나라, 대한, 신한, 중앙, 그리고 한화가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중 중앙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라졌다.

보험사도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5개 부실 보험사를 대기업들에게 인수시키는 방안이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명에 대해서도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금융산업은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우선 무디스와 S&P로부터 우량 등급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빛은행이 무려 21%나 할인하면서 외자를 조달한 것은 국제 사회에서 우리 금융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 잘 말해준다. 정부가 총력을 다해 정상화시켜 낸 한빛은행이 이 모양이니 다른 금융기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금융기관의 부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1일 강봉균 장관은 연말경에 가면 25조 정도의 공적자금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여신 분류 기준이 미래 상환 가능성 위주로 달라져 자동적으로 부실이 늘어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는 대우를 비롯한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와 상환연장 등으로 실제 부실채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대대적인 금융 구조조정을 한 번 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중에는 제2차 구조조정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고비용 저효과’의 금융 구조조정

금융 구조조정의 목적은 분명하다. 우선 부실화되어 있는 금융기관을 정리하는 것이다. 정리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각종 지원으로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살려 대출 및 투자 등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두번째는 싹수가 없는 금융기관은 아예 잘라내어 더 이상 부실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보다 간명하게 요약한다면 금융 구조조정은 ‘부실의 피해를 조기에 해소하고 금융의 생산성을 극대화하자’는 데에 초점이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실로 엄청난 투자를 했다. 그 결과 많이 개선됐다. 우리 경제가 이 정도로나마 회복된 것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금감위의 이헌재 위원장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물로 큰 기여를 했다. 이 위원장이 아니었더라면 부작용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일단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들인 비용에 비해서는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64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은 한 해 예산에 육박하는 돈이다. 연말에 필요한 25조 등을 합하면 1백조원이 넘어간다.

이 돈은 재정적자로 연결되거나 시중에서 채권을 팔아 충당해야 한다. IMF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을 너무 많이 퍼부어 내년부터는 정부적자로 큰 고생을 할 것”이라고 우려의 지적을 하고 있다.

돈이 아무리 많이 소요되었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집행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평가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년 8개월의 과정을 반추해보면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갈팡질팡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시행착오가 생긴 것은 장기적인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플랜을 짜놓고 세부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간 것이 아니라 터지는 사건을 뒤늦게 따라가면서 임기응변으로 처리하다보니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다. 외자보다는 내자에 의존한 것도 실수라면 실수다. 초기 단계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제일과 서울은행의 처리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두 은행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은 그러나 고객불안을 이유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렸다.

만약 이 돈으로 새 은행을 세웠더라면 금융 구조조정은 훨씬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퇴출은행 직원도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은행에 얽매이다가 10조원 이상을 까먹었다. 그러고도 외국에 팔지도 못해 안달을 하고 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하나로 묶어 한빛은행을 만든 것도 한국적 기업문화에 비추어 두고 두고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우채권 문제도 조기에 터뜨려 해결했더라면 코스트가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금융강국을 향한 ‘금융 백년대계’ 긴요

이 대목에서 미국의 구조조정을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의 금융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다름아닌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1933년 1월 12일이다. 역사가들은 이 날을 미국 제2의 탄생의 시발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1929년 10월 24일 미국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주가 대폭락은 곧바로 금융공황으로 연결됐다. 세계경제 대공황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국민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기업이 잇달아 무너지면서 수천만명의 실업자가 한꺼번에 발생했다. 뉴욕의 맨하탄 거리는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려는 실업자와 거지들의 행렬로 가득 찼다.

존 스타인벡이라는 소설가가 공황의 처참한 모습을 소설에 담았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분노의 포도」라는 작품이다. 경제난 속에서 중하층민들이 살아가려고 애를 써보지만 실패를 거듭한 다음 결국은 자살로 인생을 끝내는 내용이다.

이 책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판금조치를 받았다. 언론자유의 천국인 미국에서 분서갱유 사건이 생긴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실업자들이 「분노의 포도」라는 책을 읽으면 흥분하여 공산혁명을 일으키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미국의 사정은 어려웠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일찍이 “경제파탄은 핵무기보다도 더 무섭다”고 갈파한 바 있다.

경제불안은 정권교체로 연결되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은 공화당 세상이었다. 16년 동안 계속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왔다.

1932년 11월에 대선이 치뤄졌다. 공화당에서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후버를 후보로 내세웠다. 이에 맞선 민주당은 ‘프랭크린 루즈벨트’라는 인물을 택했다.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경제파탄의 책임을 물어 공화당 대신 민주당의 루즈벨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오랜 공화당 통치가 끝나고 전혀 스타일이 다른 민주당이 전면에 나서는 이른바 혁명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루즈벨트는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의회를 소집했다. 그리고는 후보자 시절 준비해왔던 경제개혁 입법을 상정했다. 그 유명한 1백일간의 회기는 이렇게 소집된 것이다. 금융을 은행, 보험, 증권으로 나눈 ‘1933은행법’이 바로 이때 나왔다. 이 법에 따라 대대적인 금융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산업재벌과 금융재벌의 구분, 사외이사제도의 도입, 회계 투명성 제고 등이 이루어졌다. 루즈벨트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준비된 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의 금융을 되살렸다. 지금 미국 의회에서는 스티갈 리갈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 법은 1933년 은행법을 보완하는 것이다. 33년에 루즈벨트가 만든 은행법은 지금도 미국 금융의 기본틀이 되고 있다.

IMF상황은 금융낙후 탈출기회

위기는 찬스이다. IMF라는 상황이 없었더라면 금융 구조조정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금융 구조조정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를 떨어내는데에 그쳐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의 금융산업은 너무 낙후되어 있다. 담보 챙겨 놓고 대출해 주면서 큰소리나 떵떵치는 1백년 전의 영업으로서는 미래가 없다. 금융은 한번 입사하면 한평생을 보장받는 안전한 직장이 아니다. 가장 리스크가 크면서 그대신 능력에 따라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업종이다.

금융은 60년대 헷징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큰 변화를 겪어왔다. 선물과 옵션이 현물보다 더 커지고 옵션에도 많은 조건을 거는 복잡한 파생상품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우리가 IMF 상황으로 몰리게 된 이유 중에도 금융의 낙후를 빼어 놓을 수 없다.

흔히들 금융을 가리켜 실물을 지원하는 인체의 혈맥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기능은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러나 실물 지원에 그치는 시대는 지났다. 금융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제조업에서 비틀거리는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것은 금융이 그만큼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지금이라도 세계 최강의 금융강국이 되기 위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요즈음 금융기관 사람들을 만나보면 ‘상전이 너무 많아 일을 하기 어렵다’는 불평을 자주 듣게 된다.

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재경부와 한국은행 두 기관이 금융기관을 지휘 감독했다. 이후 상전이 계속 늘어나 이 두 기관 이외에도 금융감독위원회, 기획예산처, 예금보험공사, 그리고 성업공사 등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 상전기관들이 요구하는 자료만도 한 달에 수백건에 이른다. 더욱 가관인 것은 비슷한 내용의 자료를 형식만 달리해 각자 따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구조조정 목적은 생산성 향상

금융구조조정의 기본 목적은 금융기관의 생산성을 올리자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행정 조직상의 문제로 금융기관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악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복감사와 중복자료 제출 등으로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전기관마다 지시사항이 다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금융당국이 서로 다른 정책을 펴면 금융기관으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 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이처럼 심각하게 된 것은 행정조직을 개편하면서 서로의 업무분장을 정확하게 하지않은데다 당국끼리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초 외환은행이 코메츠 은행으로부터 외자를 유치할 때 일이다. 금감위와 재경부는 한은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증자를 한다는 조건으로 코메츠의 출자를 허용했다. 한국은행이 뒤늦게 거부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한은은 한은법상의 규정을 내세워 반대했다. 나름대로 논리는 명쾌했다. 그러나 금융당국끼리 내분을 일으켜 국제합의를 뒤집는 바람에 공신력에는 상처를 입었다.

은행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한 팀이 되어 금감위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 금감위는 오호근 구조조정위원장을 내정해 놓고 있었다.그러나 재무부와 한은이 심훈 한은 부총재를 미는 바람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이 지나치게 혼탁해지자 두 후보는 모두 탈락하고 제3의 후보였던 이갑현 씨가 상무에서 바로 행장으로 발탁됐다.

금융당국이 사사건건 충돌을 하는 데 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우선 중앙은행인 한은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금융왕국 이권 다툼 없어져야

정부는 지난 97년 금융개혁법을 통과시키면서 한국은행의 위상을 크게 바꾸었다. 감독기능을 떼어내는 대신 통화신용정책에 대해서는 한은에게 전권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재무장관이 당연직으로 맡아왔던 금통위 의장을 한은 총재에게 넘겼다. 금통위의 위상도 크게 강화시켰다.

그러나 금통위원과 한은 집행간부들의 갈등이 깊어져 한은 내부에서 조차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지않고 있다. 금통위에 권한을 몰아주면서 한은 집행간부들을 외면해버리는 바람에 생겨난 현상이다. 미국은 12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은 지역연준 총재가 돌아가면서 맡도록 법제화시켜놓고 있다. 한은 집행간부들은 조직 장악력도 없고 현실도 모르는 외부출신의 금통위원들이 정책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재경부와 한은의 관계도 더욱 악화되었다. 법을 개정하면서 한은의 예산권을 재경부로 넘겼다.제경부와 한은은 대등한 입장에서 나라경제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가 많다. 이 과정에서 서로 의견충돌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특수관계를 감안하지 않고 재경부에 한은 예산권을 줌으로써 한은은 재무부의 하부기관처럼 전락했다. 실제로 올초에도 재경부가 20% 예산감축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한은의 사기를 떨어뜨린 적이 있다. 정책에 있어서도 재경부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고 있다. 한은 고유권한으로 되어있는 이자율 등에 대해서도 재경부측이 금통위 전에 먼저 결과를 발표하는 사례가 많다.

재경부와 금감위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재경부는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오던 금융기관의 인허가권을 금감위에 빼앗겼다. 금융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재경부가 물러설 수도 없다. 정부조직법상 금융행정은 엄연히 재경부소관으로 되어있다. 재경부는 인허가 기준을 위시한 각종 정책의 입법권을 장악했다. 금감위가 인허가권을 남용하면 아예 법을 바꾸어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감독당국은 또 의결기구인 금감위와 집행기구인 금감원으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은 민간금융기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금융당국이 서로의 이권싸움으로 구조조정에 타격을 준다면 그것은 죄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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