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

정부 압박하는 조언과 충고

글 /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외압에 흔들리는 경제구조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어 큰 시름을 벗었다 싶었지만 날마다 고비다.

수출도 좋고 국제수지도 괜찮은데 금융시장이나 자본시장이 수시로 요동친다. 사상 최대 규모의 등락을 거듭하는 증시나 원인도 없이 금리가 오르는 것도 불길하다. 삼성과 대우에 대한 압박이 충격파의 진원지일까. 그보다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입김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구조조정은 잘했다고 평가되더니만 어느새 혹평이다. 재벌개혁을 더 세차게 몰아치라는 훈수도 그렇고 미국 압력에 굴종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는 비판도 듣기 거북하다.

우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의장을 잘 모르지만 그의 위력은 날마다 실감한다. 그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 우리 증시가 사상 최대로 폭락한 경험이 여러 번이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임박했다는 소식 때문에 쇼크를 받은 적은 몇번인가. 그린스펀 발언 다음에는 중국 지도자 발언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입장이다.

엔고 때문에 수출이 살판났다고 반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몇차례 겪었다시피 엔고가 오면 GDP 성장률이 한껏 올라간다.

때마침 IMF 졸업기를 맞아 엔고호황이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으니 국운이 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주력 상품의 절반이 일본 상품과 경합하고 있다. 엔고가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우리 상품은 쭉쭉 뻗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대우와 삼성사태 때문에 쇼크를 먹고 벌벌 떨기만 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라 형편이 그렇게 태평스럽지 못한 것 같으니 걱정이다. 국내 요인이야 정부가 힘을 동원하여 수습한다치고 해외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을 자기네 입장에 따라 왈가왈부하는 것이 큰 짐이다. 마치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에 우리 경제의 생사가 걸린 꼴이니 한심하다.

미국 금리에 울고 일본 엔화에 웃지만 실상은 서글프다. 수출이 호황이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우리 수출의 독자적인 경쟁력인가 엔화에 종속된 한시적인 경쟁력인가. 어제 오늘에 야기된 문제는 아니지만 외압에 흔들리는 구조적인 병폐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외압인가, 조언인가

정부가 고심끝에 결단한 대한생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방침도 어떻게 전개될지 두고봐야 할 노릇이다.

대한생명 입찰에 참가했던 파나콤사가 공적자금 투입을 반대한다고 공표했다. 13억 달러를 투자해서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는데 한국정부가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하기냐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 온 다니엘 머피 회장은 금감위가 대한생명 인수계획을 방해하여 미무역 대표부에 항의 서한을 발송했노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감위가 어떻게 대응할지 정부 입장을 고수할 능력이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제일은행의 해외매각이 지연되어 또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니 정말 속이 상한다.

그런데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탈측이 매각 지연을 우리 정부측에 책임을 돌린다고 들었다. 협상의 쟁점에 관해 합의에 도달했다가도 뒤늦게 새로운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타결을 지연시킨다고 비난하더라는 소식이다.

덧붙여 매각협상이 결렬되면 한국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김대중 대통령의 지위마저 손상될 수 있다고 보도된 적이 있었다.

어찌하여 대형 시중은행을 인수하겠다는 미국 투자회사가 이런 식으로 한국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대우사태가 표면화되고 김우중 회장이 전재산을 담보로 제공한 뒤 대우의 해외 채권단이 들고 일어섰다.

정부와 대우측에 공한을 띄워 외국 채권단에게도 추가담보를 제공하거나 지급보증을 약속하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해외 채권단이 국내 채권단과 차별대우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 재무장관이 강봉균 재경부장관에게 전화로 동등 처우를 강조했다는 뉴스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해외 채권단이 대우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국내 채권단과 동등하게 신규 여신을 제공하거나 만기연장을 약속한 적은 없다.

단지 외형적인 차별대우라는 해석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배경이 궁금하다. 당초 정부가 대우의 해외채권을 현지에서 해결하고 국내의 구조조정 자금이 유출되는 것은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발표가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았을까.

대우사태의 해결 방식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시비도 눈살을 찌푸리게 작용한다.

유력지인 「뉴욕타임스」는 대우 경영진에게 구조조정 작업을 맡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고 「비즈니스 위크」지는 김우중 회장에게 맡기는 것은 위험한 게임이라 보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대우사태를 채권단이 주도하여 과감하게 분리, 매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런저런 각도에서 정부가 외압을 받는 것인지 조언을 받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이 너무 많다는 소감이다.

재벌해체에 대한 혹평

우리 경제와 이해가 관계된 해외투자자들의 입장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IMF나 OECD가 회원국 경제에 대해 조언도 하고 충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시장참가자로서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도 귀담아 들어야 마땅하다고 동의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자기네 입장에서만 철저한 비판을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관대하게 수용할 까닭이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외국으로부터 조언이나 충고가 다양하기 때문에 취사선택할 것이지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일본측은 한국 정부가 구조조정 과정에 너무 깊숙히 개입하여 신관치형태로 기울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OECD보고서도 반 시장논리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보도되었다. 빅딜의 부작용도 지적하고 인력조정 없는 구조조정도 잘못이 아니냐는 조언이 실려 있다.

반면에 미국측은 개혁의 답보나 후퇴를 경계하며 보다 강력한 정부주도식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인식된다. 아마도 자국의 이익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속성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일리 있지만 악평 아닌가

최근의 외지 비판 가운데 압권은 일본의 유명 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의 혹평이 아닐까.

「DJ지도하의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기고문이라니 내용을 짐작할만도 하다. 미국식 모방에 급급하다느니 성장을 주도해온 재벌해체라는 비평이 가슴에 닿기도 하지만 비위가 상하기도 한다.

기고문을 게재한 잡지 「사피오」지가 반미 색깔을 분명히 해왔다는 점에서 논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에 복종하느니 재벌해체에 따른 이익이 미국 투자자에게 돌아간다느니 하는 말은 그냥 흘려 넘기기 곤란하다. 한때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꾼이 한국을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었다는 사실도 끔찍하게 들린다. 국내 은행이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에 단기융자가 많다는 약점을 조지 소로스와 같은 헤지펀드가 노렸다니 얼마나 놀랄 지경인가.

오마에 겐이치라는 논평자가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가 없다고 지적한 점은 섭섭하지만 들을 만하다. 그리고 한·일간의 산업구조를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다는데 무슨 의미일까.

빈정거림일까 동정일까. 아마도 한국 정부의 미국 편향을 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왜 IMF 관리체제를 잘 극복했다는 한국 정부가 이같은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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