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재벌개혁과 정부개혁

글 / 申天均 신천균 편집위원(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들은 큰 홍역을 치뤄야 한다. 3공 이후 38년 동안 역대 정권들이 등장할 때마다 재벌개혁이라는 ‘단골 메뉴’를 들고 나와 기업을 죄인시 해왔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기업들은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에 순응하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역대 정권이 기업을 옥죄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이 내세운 개혁의 명분도 ‘경제의 체질 개선과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거의 비슷한 구실을 내세워 그동안 기업들이 저질러온 잘못을 호되게 질타해 왔다. 이들은 재벌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원칙이나 경제논리에 의하기보다는 권력의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추진하다보니 정책의 혼선을 가져오는 등 숱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겉으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실은 새 정권과 새로이 정경유착의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새로 정경유착의 관계가 형성되면 ‘특정기업 봐주기’ 같은 특혜가 불거져나와 정권교체 때 똑같은 방식의 재벌개혁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재벌개혁을 가장 호되게 몰아부쳤던 전두환 정권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부는 제대로 개혁도 못하고 숱한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다가 급기야는 IMF(국제통화기금)라는 국난을 가져오고 말았다.

국민의 정부도 재벌, 특히 5대 재벌의 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재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스타일은 우선 기업의 의욕을 북돋아 주면서 개혁작업도 병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정책 추진 과정은 역대 정권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힘에 의한 몰아부치기 식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관료들에게 변화가 없으니 옛날 방식이 그대로 동원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더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삼성자동차 해법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처음에는 대우전자와 빅딜한다고 했다가 하루아침에 청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청산은 다시 여론에 밀려 하루만에 공장 가동 쪽으로 선회했다.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경제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이같은 정책혼선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모든 책임을 기업에 떠넘길 뿐이다. 개혁에 대한 정책의 혼선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치쟁점으로 부각되어 나중에는 ‘정치적 해결’이라는 방식으로 낙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험해온 바다. 이같은 사태의 진전은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재벌개혁은 근본적으로 소유·지배구조를 우리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그 기초 위에서 경제논리, 즉 시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정부개혁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창달을 국정의 지표로 삼는다는 국민의 정부도 개혁을 거꾸로 하고 있다. 힘없는 기업, 금융기관, 근로자 등 민간 부문에 대해서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개혁의 핵인 조직개편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민간 부문에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미국 MIT대학의 돈 부시 교수는 한국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할 일없이 자리만 꽤차고 있는 관료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깊이 새겨볼 말이다.

힘에 의한, 소모적인 재벌개혁을 하지 않으려면 우선 정부부터 깨끗하고, 원칙과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잘못을 저지른 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히 법을 적용, 로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토를 없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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