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의 허실

글 / 盧癸源 노계원 편집위원(전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공직자들의 침묵과 반발의 속 사정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 공표되자마자 공무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문을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국무조정실과 행정자치부 명의로 게재한 광고가 아닌가.

전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의한 국민에 대한 자정의 약속이라면 ‘반발’은 어불성설이고, 그렇다면 정부 일부 부처가 전 공무원을 향해 자정을 결심하고 동참을 당부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필자는 혀를 찼다.

공직자의 독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또 정권이 바뀌거나 혹은 부서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공직사회 정화’ ‘부패 근절’ ‘부조리 척결’ 따위 구호를 내걸고 설쳐대는 것을 우리는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의 독직 현상은 세월과 함께 더욱 교묘화·은밀화·거액화해 가고 있다. 그런 판국에 공직사회 내부의 합의도 없이 일부 부서가 “××은 하지 않겠다” “××은 금지하겠다”고 광고를 냈으니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뻔자다.

광고 자체부터가 그 목적과 취지가 분명치 않다. 광고를 낸 국무조정실과 행정자치부 소속 공무원들만의 다짐인지, 아니면 이들 두 개 부서가 전체 공무원의 대표성을 갖는 것인지, 또 이 광고가 공무원 자신들의 결의인지, 아니면 대국민 선전용인지도 아리송한 것이다.

광고문안에 이에 대한 국민의 동참과 협조를 당부한 것을 보고서야 전체 공무원의 명의를 빙자한 대국민 결의의 천명이구나 하려던 차에 본색이 불거져 나오고 말았다.

공무원들이 나머지 9개 사항에 대해서는 쓰다 달다 아무 소리도 없으면서 유독 ‘축·조의금 접수 사절’ 조항에 대해서만 거센 반발을 보인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반발에 놀란 ‘광고주’가 하루만에 이 사항의 내용을 바꿔버렸다. 애시당초 광고를 낸 자와 결의를 하는 자와는 주체가 다르고 생각도 전혀 딴판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공무원들의 자정 결의라면 공직사회 내부의 합의부터 이룬 뒤에 대국민 다짐 천명의 수단으로 신문광고를 냈어야 옳았을 것이고, 공무원들의 동참을 도출하려는 광고였다면 광고가 아닌 내부 회람만으로도 충분했을 터이다.

설익은 광고를 내는 바람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고, 이미 지출한 부조금을 되받아야겠다는 ‘본전 찾기’에 대한 강력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경조금 금지조항에 대한 반발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 ‘준수’될 것이며, 이로써 자정의 결의가 실천될 것인가. 역대 정권이 못 이룬 공직사회의 독직 풍조가 이번만은 문자 그대로 척결되기를 기원하면서도 그 기원의 간절함만큼이나 비례해서 국민의 의구심 또한 깊고 큰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하이덴하이머(A.J.Heidenheimer)가 편찬한 좥권력과 부패좦에 실린 논문 ‘뇌물과 그 전달 수법’을 보면 권력과 수혜자 사이의 뇌물 증수뢰에는 6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수혜자가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바치는 가장 일반적인 뇌물을 비롯해서, 권력자가 사업자의 약점을 미끼로 강탈하는 뇌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에 주는 국가뇌물(state bribery), 법을 제정하거나 시행하는데서의 정치적 차별과,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공공업무의 차별적 수행이 가져오는 뇌물효과가 있다. 끝으로 공직자가 증뢰와 수뢰의 역할을 다 수행하는 자동부패(auto-corruption)의 유형이다.

공공기관의 책임자가 어떤 사업을 시행할 때 차명으로 경영하는 자기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면 공공재산은 사유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동부패로 모아진 재산은 정치헌금으로 위장되어 권력조직으로 이입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뇌물수수의 형태가 여러 가지이나 분명한 공통점은 뇌물의 수수가 액수의 다과에 관계 없이 두 사람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비록 어느 업체와 공공기관 사이의 뇌물거래일지라도 거래 자체는 종국적으로 그 두 조직을 대신하는 사람 둘 사이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실이 들통났을 때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느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느니 하고 서로 미루면서 핑퐁을 칠 수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의 독직 풍조 척결돼야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간추려보면 ▲업무와 관련한 향응과 골프접대와, 경조사의 축·조의금, 경조사나 이취임시의 화환·화분, 퇴직·전근시의 전별금 등을 받지 않는다 ▲5만원 이상의 선물 주고 받기와, 가족·친지들의 관용차 사용, 호화 결혼식, 고급 의상실 출입, 고위 공직자 부인 모임, 정당과 국회의원의 후원회 가입 또는 후원금 기부행위 등을 하지 않는다로 돼있다. 4가지 ‘받지 않는다’와 6가지 ‘하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이 광고를 보고 ‘아, 이제는 관청을 상대로 일을 해볼만 하겠구나’하고 쾌재를 부르거나 안도할 사람은 구체적으로 통계를 내보지 않더라도 단 한 명도 없을 것임은 확실하다.

공직자와 기업체의 뇌물 요구 등쌀에 사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보따리 싸서 한국을 떠나려 했던 외국의 사업가들이 이 광고를 보고 다시 보따리를 풀 것인가. 준수사항의 가지수는 많지만 이들은 하이덴하이머의 6가지 뇌물 유형 중 겨우 제1범주에 속하는 사항들일 뿐이다.

10개 사항 중 유독히 ‘경조사를 알리거나 축·조의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항에 대해서만은 컴퓨터의 전자게시판이 터져 나갈 만큼 공직자들의 반대여론이 벌떼 같이 폭발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납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관행상 혼례와 상례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일시적인 거금의 수요에 친척과 친지들이 부조금으로 동참함으로써 당사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품앗이’ 성격을 띄는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허물할 일은 못된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내온 축·조의금을 보상받을 수 없게 될 때의 낭패감이 불평으로 쏟아져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정부가 기준을 크게 완화한 것을,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는 일부의 비난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은 긍정적으로 보는 것같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흔쾌히 이행하겠다는 것일까. 속단하기는 이르나 지금까지의 공직사회의 독직 관행으로 보아 공직자들이 모두 이를 준수하고 이행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치 수십년 묵은 가마솥에서 눌어붙은 검댕을 말끔히 벗겨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뇌물수수는 두 사람 사이에 은밀히 이뤄지는 것이며,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식으로 상호간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절이 불가능하다. ‘받지않겠다’와 ‘하지 않겠다’는 사항마저도 하려고만 들면 형식과 과정을 달리해서 같은 효과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공직자들이 공복으로서의 양식과 양심을 갖추는 일이 문제의 근본적 핵심이긴 하다. 그러나 이 총체적인 부패공화국의 풍토에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만큼의 난제일지 모른다.

제도적인 장치로써 공무수행자의 자유재량권을 없애고, 모든 행정을 공개된 규정과 과정에 따라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시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진캡션 : 공직자들이 과천 청사 강당에 모여 10대 준수사항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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