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햇볕’ 잘못되면 ‘불바다’ 될 수도

글/ 李哲承(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위원,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

마지막 독립운동은 남북통일

1945년과 1948년의 8월 15일은 광복과 대한민국의 건국 기념일이다. 해마다 8·15가 오면 늘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나는 항일 독립운동이 1차 독립운동이요, 반탁반공과 대한민국 건국 운동이 2차 독립운동이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남북통일이 마지막 독립운동이라 믿고 우리의 독립운동은 진행중이라고 부르짖어 왔다.

그러나 광복 후 반세기가 더 지나도록 완전한 건국을 이루지 못하고 해방정국보다 오히려 더 혼란해지고 자주·독립·민주·통일의 건국 정신이 망실되어 버린 지금의 현실을 보면 천상에 계신 선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49년 전 6·25가 일어났을 때는, 소련의 세계 공산주의 전초기지화되어 있던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얻어온 압도적인 무장으로 우리를 몰아붙였지만 투철한 반공정신과 신뢰받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건재했기에 전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국군의 대적관은 흐려질 대로 흐려지고 나라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던 건국이념도 망실되어 가고, 국민들을 올바로 인도해줄 지도자도 부재하다.

이념의 시대가 가고 ‘탈냉전’ 시대가 도래했다는 잘못된 분위기 조성으로 북한의 대남 선전에 발맞춰 주고 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은 무너졌지만, 북한의 인권 탄압과 냉전 분위기 고조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오히려 더욱 안보의식을 굳건히 해야 함에도 이를 망각해 가고 있는 것이다.

6·25가 발발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남북간에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최근 일어난 서해 도발사건, 금강산 관광객 강제억류 사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 개발 등이 김일성­김정일 집단의 남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50년 세월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6·25 남침으로 3백만명이라는 엄청난 목숨을 앗아간 전범 처리와 희생자에 대한 배상청구 문제는 제대로 한 번 거론해 보지도 못한 채 흐지부지 묻혀가고 있다.

8만명의 납북자와 5만여 미귀환 국군포로들은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 납북자들과 납북 이산가족들이 지난 50년 동안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을 것인지를 위정자들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전임 대통령을 2명이나 구속시키고 희생자들에게 많은 보상을 하면서도 호국 군경 유가족과 납북자 가족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폴포트나 유고의 밀로세비치 등, 6·25 남침범죄에 비해 훨씬 작은 사건의 전범자, 학살자들도 국제재판소에 고발되고 있는데, UN에서 두 번이나 침략자로 결의된 김일성­김정일 집단을 전범자로 처벌하려는 원리 원칙적인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략자 집단에 서둘러 ‘면죄부’를 주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체통까지 훼손시켜 가면서 수천억원대의 쌀과 비료, 현금을 갖다 바치며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있다.

휴화산인 휴전협정, 사실은 활화산

전쟁과 전투에서 이기고도 외교협상에서 져 나라를 망친 경우가 허다하다. 주한대사, 주중대사를 역임한 전 CIA국장 제임스 릴리는 서구식 합리주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한의 비상식적, 비정상적인 협상 태도에 미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지금까지 끌려 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냄으로써,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음을 알게 되자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다룰 능력이 없어 무시해 오다가 이제야 그들이 일관된 빨치산식 전술과 협상능력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과 전쟁을 치렀고 남북협상 경험도 많은 남한조차 그들에게 상호주의 원칙도 못 지키고 끌려 다니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 정부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에 나서 김일성 정권 수립에 이용당한 후부터, 지금까지 50년간 줄곧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어 외교협상에서 패배하고 있다.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정책이 바뀌고 과거의 정책은 싹쓸이됐다. 대북 전문가도 키우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통일원장관이 일곱 번 바뀌었고, 지금 김대중 정부도 반공주의자 강인덕 장관을 바람잡이로 내세웠다가 1년만에 ‘햇볕정책’의 창안자 임동원 장관을 전면에 내세웠다.

북한을 잘 알고 반공 투쟁을 이끌었던 전문가와 원로들은 통일정책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누적된 협상 패배는 최근 우리의 ‘무장해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대남 정책에서 핵심과제로 삼고 있는 세 가지는, 북한을 한반도 적화 기지로 삼아 평화공세와 무력 도발을 병행하는 것,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 철수다.

이를 되풀이함을 통해 남쪽을 군사적,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켜 붉은 정부를 세운 후 쉽게 적화통일을 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우리는 50년간 일관된 북측의 전략에 완전히 말려들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 ‘대한민국 대행기관’처럼 되어 버린 정주영 씨가, 군사비 지출을 위해 3백만 동포를 굶겨 죽인 학살자 김정일을 ‘효심깊고 예의바른 장군님’이라고 TV 방송을 통해 칭송하는 지경에 이를 만큼,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를 처벌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 법은 사문화되었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지위를 PKO 차원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UN군인 미군 대신 난민 수습의 평화군으로 한국의 안보를 맡길 수 있겠는가.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햇볕정책’을 밀고 간다면서 미군 없는 우리 안보의 수준을 생각해 보았는가.

이러므로 북한의 세 가지 전략 중 대부분이 성취 직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남한은 인구 70%가 전후 세대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에 대한 교육을 안 받은 소위 운동권·친북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더욱 강력해지고 우리는 점차 해제되어 가는 이때, 휴전협정이라는 휴화산은 서해 사건처럼 언제 다시 활화산으로 타오를지 모를 일이다.

전선은 우리 내부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시행하면 북한이 소련처럼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섣부른 단정을 내렸다. 그리고 국회와 야당과 사전에 일언반구 논의조차 없이 엄청난 혈세를 쏟아부어 아사 직전의 김정일 정권을 부추기고 연장시켜 주고 있다.

소련의 개방 실패를 목격했고, 수많은 동족을 죽인 원죄를 잘 아는 김정일 정권이 소련, 중국처럼 스스로 문을 열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단견이다.

미국 국회조사연구소(CRS)도 미국 국회에 제출한 정식 보고서에서, ‘국민적 합의가 전혀 없이 전개되고 있다고 비판한 햇볕정책에 그토록 성급하게 끝까지 매달리고 있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간의 대화는 몰라도 협상이라면 상호주의 ‘Give and Take’가 고금동서의 원칙인데 계속적으로 무력과 간첩의 도발을 받으면서 일방적으로 막대한 식량, 비료, 달러(현금)를 북에 제공하는 것은 김정일 집단의 군사력을 강화시켜 주고, 이는 결국 우리 국민의 안보를 위협하는 이적 행위인 것이다.

그간 이를 철저히 따지고 조사하지 못하는 야당 역시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도, 인권의 유린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그 아킬레스건 역시 인권문제다. 이 인권문제를 고리로 세계적인 연대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한 동포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인들은 중국에서 신음하는 탈북 난민들을 구제하는 데 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전선은 휴전선보다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의 결속을 다져, 김정일 정권의 치부를 철저히 공략하지 못하면 계속되는 그들의 남침을 종식시킬 수 없고 제2의 월남, 제2의 6·25를 자초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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