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우린 ‘거짓말 공화국’에 산다

글/韓重光 한중광 편집위원(전 KBS 해설위원)

계속 번지고 있는 거짓말 불감증

사람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을까.

미국의 한 연구진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하루 평균 2백번 거짓말을 한다는 실험결과를 내어 놓았다. 이것도 조금은 부풀린 말이겠지만.

목사님이 신도들에게 다음 주에는 시편 151편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 터이니 반드시 읽어오라고 말했다. 다음 주일 목사님은 “읽어 본 사람 손드시오”하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시편은 150편까지밖에 없었다.

골프를 치면서 점수를 속이고 싶은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 있을까. 아무도 점수를 탓하지 않는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사람들은 거짓으로 스코어를 말하기도 한다. 신부님과 목사님은 러프에서 다른 사람이 안볼 때 두세 번 실수한 것을 숨기지 않을 것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17세기 우리 나라를 서양에 소개한 하멜 표류기에도 한국 사람은 남을 속이기 좋아하고 남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최근 한국에 체류하며 우리를 지켜본 두 외국인의 책이 화제를 모았다.

하나는 특파원으로 한반도에서 15년 근무했던 「더 타임스」 기자 마이클 브린의 「한국인을 말한다」와 다른 하나는 일본인 지사장 이케하라 마모루가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이라는 책이다.

마이클 브린은 “한국에서는 고성능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케하라 마모루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살면서 사고방식은 1백 달러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혹평한다.

거짓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우리 정치풍토는 언제부터인가 서로 속이고 속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하면 불신을 연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75일이 지나면 큰 사건이나 사고 등 중요한 뉴스를 망각하기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잠시만 속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거짓말은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공약이 완수되면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중간평가’를 실시하겠다고 엄숙히 선언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97년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를 약속했다. 이런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고 앞으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거짓말 정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거짓말 불감증에 감염되고 만다.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는 등 세상이 어지러워 졌을 때 이준경(李浚慶1499-1572)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장문의 상소(上訴)를 남겼다. 당쟁의 소용돌이를 예언한 그 유명한 「유언상소」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지나친 행동이 없고 하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데도 말이 맞지 않으면 배척해서 용납하지 않습니다. 행동을 닦지 않고 글 읽기에도 힘쓰지 않으면서 고담대언으로 편당(偏黨)과 결탁하는 자들을 고상하다 하여 드디어 거짓 풍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나라의 구원이 어렵다고 직언했다.

경제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한보와 기아 등 일부기업의 잘못이 IMF사태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조금 잘 사는 것처럼 느꼈다면 남의 돈으로 빚을 얻어다가 흥청거린 것이다.

신용을 쌓아가야 하는데 빚을 제때 갚지도 않고 적당히 우물쭈물 넘기려는 것이 문제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학생 한 명이 ‘크리디트 리용’이라는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발급 받은 다음 카드로 수만 프랑의 물건을 산 다음 갚지 않고 귀국했다. 그 후 이 은행은 다른 한국 유학생들의 카드 발급을 거부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신용카드 발급자 1천9백37만명 가운데 1백24만명이 카드대금을 연체하고 있는 신용불량자로 나타났다. 99년 6월 말 현재 총 연체대금은 2조8천8백93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4천29억원이 늘어났다.

서양에서는 신용 하나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신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용은 자본이다. 돈만 자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직하지 않은 과대포장, 엉터리 내용물 등이 한국 상품을 못 믿을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진실이 누락된 자본과 지식은 무의미

사회적으로는 거짓과 진실의 구분마저 힘들게 되어버렸다. 신창원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더욱 분간하기 힘들어졌다. 몇억원을 강탈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예식장 주인, 신창원의 동거녀를 성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관, 경찰관은 지금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탈옥 직후 신창원을 서울까지 태워준 택시기사의 신고를 받고도 공을 독차지하려다 신창원을 놓친 경찰, 상부에는 보고하지 않고 신고를 받은 일이 없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든다. 처음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속성을 지닌다. 심리학자들은 거짓말 환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허영심이 많다는 것이다. 남에게 자신을 과대포장해서 보여주고 싶어한다. 둘째는 사람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다. 언제나 이겨야하고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셋째는 여론에 민감하고 자기암시에 걸리기 쉽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병을 심하게 앓는 환자들은 늘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한다든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박수를 받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증세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고질병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진실에 있다. 사람들은 자본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진실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 동안 우리의 진실은 돈 앞에서 무력하게 허물어졌다. 돈이라는 시금석을 통해 인간됨을 살필 수 있다. 천사를 타락시키는데도 술과 여자가 아닌 돈으로 가능하다는 우스개가 있다.

사람들은 “나는 큰 일을 하기 때문에 작은 일은 무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것에도 성의가 담겨야 한다. 정성과 진실이 담겨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모두 진실은 없고 돈만 있다는 이야기다.

진실이 없는 지식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진실 없는 근면이 무슨 소용인가.

온통 거짓투성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입는 일은 어느 정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과 예절 등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언로를 어떻게 트고 살아가며, 사람(人)들 사이에 말(言)을 통해 믿음(信)을 만들어 가야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유럽 나라들의 초등학교 교육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 주며 살아가는 방법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이는 것이다. 십계명 가운데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이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사회는 전화 한 통화로 중요한 계약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예약문화가 뿌리내렸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스럽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인감증명도 믿지 못하는 쓸쓸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정직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새마을 운동이 가난의 때를 벗기고 겉으로는 살 만큼 세상을 바꿔놨다면 이제는 거짓말 안하기 운동으로 양심의 때를 벗겨야 할 시간이다. 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아픔이 따르고 용기가 필요하며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