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대북지원 내용을 알고 싶다

글 /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김정일이 즐기는 햇볕

북한 김정일 정권은 주민들을 굶기면서도 망하지 않게 되어 있다.

식량을 원조하고 달러를 송금하는 한국이 있고 미국과 일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정일의 권력은 밖으로부터 보장받고 있다는 웃지 못할 지위로 비유된다.

김정일은 햇볕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점에서 승리감을 구가할 것이다.

인도주의와 정경분리의 햇볕에다 대남침투에 대한 성가신 공세도 별로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잠수정 침투나 서해 도발에 따른 사과는 고사하고 격침함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주장하는 역공을 펴기에 이르렀다.

김정일은 우리의 햇볕정책이 무한한 인내심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간파했음이 분명하다. 건드리면 터질 수 있다는 시늉만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수법에서 드러났다.

이따금씩 한국 정부를 따돌리고 미국과의 협상으로 우리의 양보를 얻어내는 재미를 누린다.

조르고 버티기만 하면 수가 나온다는 자신감도 여기서 터득했을 것이다.

이미 미전향 장기수를 포함한 간첩들은 거의 다 석방되었다. 보안법 폐지론까지 나왔으니 대남공작에도 거칠 것이 없다.

북한 인권문제는 일부 단체가 거론했지만 정부가 호응하지 않으니 크게 문제될 것 같지도 않다. 동포애를 부르짖고 대북원조를 강조하는 목소리만 듣고 흡족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김정일이 저지른 문제는 햇볕에 가려 보이질 않고, 우리가 보내는 햇볕만 독식하는 꼴이다. 아마 지금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남조선 길들이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조롱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부는 북의 미사일 위협에 벌벌 떨고 재벌은 대북지원 열차를 놓칠까 벌벌 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라고 생각한다. 한때 ‘서울 불바다’ 협박이 있었지만 우리는 북을 제압할 장거리 미사일이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돈으로 겨우 막고자 골몰하는 입장이다.

지원 내역이라도 알아야지

북한 경수로를 건설해주면서 전기요금도 올려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는 입장이다.

재벌이 북한에 돈을 바치는 것도 까닭이 있다고 짐작된다. 무슨 속셈인지 김정일이 특정 재벌에게 대북사업의 독점권을 부여했다니 다른 재벌들은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적십자사와 종교단체, 그리고 시민단체가 앞다퉈 물자를 지원하는데 다른 재벌이 멍청하게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종자돈이나 모험금으로 막대한 규모를 뿌린다는 소문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대북지원 규모가 얼마이고 어떤 조건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총량 규모도 추정할 수 없을 뿐더러 기업 회계상 어떤 항목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합법인지 편법인지도 알 수가 없다.

공개된 사실은 현대가 소떼와 자동차를 거저 주고 관광 명목으로 매월 수천만 달러씩 송금했다는 사실뿐이다.

금강산 관광은 기분 나쁜 대표적인 사업이다.

수익성도 없는데 무려 9억4천만 달러나 주기로 약속했으니 김정일 좋은 일이지 우리와는 상관없다. 관광 갔다가 벌금 물고 수모당한 분풀이 방도도 전혀 없다.

현대가 보낸 달러가 김정일의 통치자금 계좌로 입금된다고 들었다. 그 돈이 미사일이나 잠수정으로 둔갑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직 대통령에게 통치자금으로 바친 돈은 대가성 있는 뇌물로 판결된 바 있다. 실제, 우리 눈으로 재판받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반면에 북한 통치자에게 바친 돈은 어떤 성격으로 해석되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네도 대북지원이 평화를 가져오고 북녘 동포들을 배불리 먹게 해준다면 백번 찬성한다. 재벌의 대북사업도 장기적으로는 경제거래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원규모와 조건이 공개되고 적법하게 회계처리돼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재벌이 개인 돈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따로 무는 것도 아니니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무조건이 아닌 투명성 보장이 대북지원의 성과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햇볕에도 상호주의가 원칙

김정일의 통치술이 교묘하다지만 무모한 술수에 무조건 돈을 바치는 어리석은 행위는 중지돼야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김정일을 ‘몸부림치는 폭군’이라고 불렀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가 나쁘게 행동할수록 주변국들이 돈으로 매수하려 애쓴다는 지적이 정확하다.

이젠 그가 꿈에서 깨어나게 해야 할 때라고 본다면 햇볕정책도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몽둥이 없는 당근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이상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해야만 한다. 정부도 상호주의를 약속했지만 중간에 또 변형시키면 안된다.

아울러 탈북자들의 체험적 증언을 가볍게 들을 수 없다. 수령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북한 동포들과 김정일은 구분돼야 옳을 것이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의 희생자보다는도 많은 동포가 기아와 질병으로 죽고 있다는데 어디에다 햇볕을 보낼 것인가.

죽은 김일성의 시신보존에 8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궁전을 꾸몄다고 들었다. 이 돈이면 북한동포가 3년간이나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사비 2~3%만 줄여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당장 대남공작만 중단해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 아닌가.

햇볕정책은 유지하되 단 한 가지씩이라도 수정하고 달라지게 만든다는 정책목표를 확고히 설정해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무조건 지원을 중단하면 김정일도 생각이 있을 것이다. 몽땅 굶겨 죽이려들든가 미사일 발사로 위협하든 가 무슨 수작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미국과 일본도 나서야 하고 중국도 가만히 방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대화와 협상으로 쉽게 결말이 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권력을 뺏기고 죽기를 작정하고 나설 김정일은 못 될 것이다.

살아서 권력을 누리겠다는 그도 햇볕을 받기로 결심할 수밖에 무슨 도리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내부 문제도 걱정

문제는 우리 내부에도 있지 않은가 걱정이다.

매년 8·15때면 겪는 사태지만 어쩌자고 북쪽 놀음에 무비판인지 알 수 없다. 올해 합법 절차를 거쳐 입북한 사람, 불법으로 입북한 사람들이 평양 추태에 가담했었다는 소식이다.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김정일을 장군이라며 추앙하는 행각을 벌였다니 말이 안된다. 비록 절차를 밟고 방북했다 해도 당초의 입북 목적을 벗어난 행태가 적지 않았다는데 무슨 배짱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또 시위나 투쟁으로 공권력을 무시하려는 수순을 밟기로 작정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지금의 북한 당국자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해 보자. 사사건건 한국 정부는 따돌리고 민간교류를 빌려 우리 내부를 흔드는 데만 열중인 것을 모르는가.

게다가 무슨 돈으로, 무슨 속셈으로 미그기를 대량 구입하고 설계도마저 절취하려는가. 또한 미사일 발사를 고집하고 미군철수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모르긴 해도 북한 당국은 우리 내부의 취약점을 믿고 벼랑끝 생존술에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그러니 북한을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원론에는 이의가 없지만 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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