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세계경영... 불신과 실수

대우그룹 사태는 나쁜 소문으로부터 시발되었다. 시장이 대우와 김우중 회장을 못 믿겠다고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 왜 대우와 김우중이 불신의 과녁이 되었을까? 우리는 차마 5대 재벌 그룹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었다. 김우중이라는 특출한 세계경영인의 역량을 불신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대우는 끝내 해체의 길로 접어들고 김우중은 가장 큰 실패한 경영자라고 낙인되고 있는 시점이다.

대우사태와 관련된 실수와 실패의 진상이 무엇인지 실로 궁금한 일이다.

글/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정부와 재벌간 합의 협력

대우그룹 문제는 국민의 정부가 발족하면서 재벌개혁이라는 큰 정책으로부터 제기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5대 그룹 총수와의 면담에서 과감한 개혁약속과 합의가 있었다. 이 약속에는 새로운 정권 출범에 재벌이 적극 협력한다는 뜻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현실적 제약으로 재벌 개혁은 지지부진하다는 평가였고 특히 대우그룹이 소극적이었다는 평판이 있었다.

김우중 회장은 재벌 총수 가운데서도 남다른 지위에 있었다. 전경련 회장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열심히 일만 하는 경영자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므로 재벌개혁을 선도함으로써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자리였다.

그런데도 유독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뜻밖이었다. 대우는 김우중식 확대경영으로 구조조정을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는지 모른다.

수출에 주력하고 세계경영을 발전시킴으로써 IMF 난관을 절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대우는 특별히 믿는 데가 있는가라는 의혹을 받았고 나중에는 정부로부터 경고성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실패는 나쁜 소문으로부터 증폭되었다. 재벌개혁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때 시중에서는 대우가 잘못될 것 같다는 말이 예사로 퍼져나왔다. 유언비어도 적잖게 끼어들었다.

결정적인 소문은 해외로부터 급속히 전파되어 왔다. 우리 경제가 IMF 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해외의 평가에서도 재벌개혁이 문제라는 꼬리표가 달라 붙었다.

조금 뒤에는 특정 재벌이 문제라는 소문으로 한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예 대우그룹이 문제라고 적시하는 소문이 당도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정부와 재벌간 합의 협력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소문은 실체가 있었다. 그리고 끝내 대우는 나쁜 소문들을 잠 재우지 못하고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다.

재벌간 빅딜을 둘러싸고 갈등과 마찰이 잦았었다. 갈등의 진원지는 역시 대우가 중심이었다. 삼성차와 대우전자간의 빅딜 원칙이 발표된 뒤 대우가 삼성차를 인수함에 여력이 없다는 말도 재계에서 나왔다.

이미 대우그룹의 부채가 한계를 훨씬 넘어섰다는 소문이 확산된 뒤 재계 내부에서마저 대우를 불신했었다는 뜻이다.

이 무렵 김우중 회장은 채권금융기관들의 대출금 회수 압박에서 위기감을 실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인식도 종전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금감위의 이헌재 위원장을 접촉하며 깊은 고뇌를 털어놓고 명예퇴진의 길을 모색하려 했던 것이 김우중의 심경을 잘 대변해 준다.

이헌재 위원장인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김우중 회장도 자신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악화된 현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 회장의 용퇴 약속은 자발적 결단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실제 전투를 지휘하던 총사령관이 스스로 항복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맥아더 사령관이 일본군보다 미국내 언론과의 전쟁이 더욱 벅차다고 술회했던 경우가 있었다. 김우중도 여론 악화와 시장의 불신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시장 민심에 놀란 정부

김우중 회장의 퇴진 약속은 정부와 여론에 대한 항복의 의미가 있다. 최근 유행어인 사회적 압력을 다소 늦게 감지했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김 회장은 방배동 자택 하나를 남겨놓고 전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기업을 살리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일자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약속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대우사태로 사상 최대 규모로 주가가 폭락했던 다음날 정부도 혼비백산했고 김우중도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김 회장의 백기투항만으로 사태가 수습될 것으로 오판했던 정부가 넋을 잃을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대우가 그룹해체식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후 여론 살피기식 발언을 많이 했다. 모든 문제는 대우와 채권단이 책임지고 해결하라. 해외부채는 현지에서 책임져라. 국내 자산 처분 재원이 해외로 유출되어서는 안된다. 주가와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지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이같은 정부 방침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의 반응은 태풍이었다. 제2의 기아사태, 제2의 금융위기가 눈앞에 보였다.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반응은 한국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었다.

정부가 허겁지겁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우그룹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장을 조기 안정시켜야 나라가 산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때 정부가 얼마나 혼이 났을까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때마침 하계 세미나 참석을 위해 제주도에 머물던 각료와 금감위 위원장이 급거 귀경, 휴일 오후에 정부대책을 발표한 사실이다.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에서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행 돈을 풀어 유동성을 지원하고 공적자금 투입도 준비하고 대우의 해외부채에 대한 만기연장에도 정부가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원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고 정부 체면도 있을 수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대우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압박 강도를 높여 담보재산의 매각 일정을 단축하고 담보채권을 채권단이 임의로 처분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대우사태를 둘러싼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정부는 종전의 기아사태와 지금의 대우사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해명밖에 할 것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헌재 위원장의 대우 해법

대우사태 풀이의 중심에 금감위 이헌재 위원장이 위치한다. 김우중 회장과의 각별한 인간관계로 보면 악역의 위치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우측으로 보면 편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이 위원장이 특별히 봐줄 입장은 아니더라도 특별히 불편하게 심술을 부릴 입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이 보는 대우와 김우중 회장의 결정적인 흠은 시장의 신뢰도다. 특히 국제적 시각을 거역하고 구조조정보다 해외경영에 집착하려던 것이 실수였다는 지적이다.

김우중 회장의 진취적 역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쌓아올린 실적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시장이 대우를 외면하는 데에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5대 재벌 가운데 가장 늦게 구조조정에 착수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악화되었다는 해석이다.

이 위원장은 시장파괴의 무서운 결과를 ‘위기의 전염현상’이라 말한다. 대우가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후 유언비어가 폭력처럼 달려들어 김 회장을 침몰시킨 것도 위기의 전염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재벌기업이 살 길은 오직 투명성이라고 못 박는다. 서로가 믿고 지킬 수 있는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투명성이 아니고서는 시장으로부터 어떤 신뢰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동네축구와 국제시합 축구를 비교하여 투명성을 설명한다. 동네축구야 규칙이 있다 해도 적당히 양해하며 진행할 수 있다. 반면에 국제시합 축구는 구장의 규격에서부터 엄격한 룰에 따른 심판이 생명이다.

이에 따르면 대우는 동네축구식으로 세계경영에 도전했다는 의미가 없지 않다. 그리고 위기의 전염원리에 따라 시장파괴의 도미노 현상이 그룹 해체로까지 번지고 말았다는 해석이다.

이제 대우의 독자적인 사태해결 수단은 별로 없는 형국이다. 김우중 회장의 지분이나 경영권은 보장이 없다. 아직도 김우중의 약속 불이행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헌재 위원장은 대우 해법이 기왕의 경영권 박탈식과 차별된다는 지적에 신경을 쓴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퇴출과 비교해서 김 회장에 대해 우대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나 한사코 부인한다. 김 회장의 퇴진은 기정사실이고 전재산 담보제공도 즉각 처분대상이다. 당초 5대 재벌과 정부와의 약속 이행이나 대우사태 처리의 투명성에 토씨 하나 틀림이 없다고 다짐한다.

결국 대우와 김우중은 정부 방침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고 이 운명에 따라 김 회장은 무역과 자동차만 건지는 것이 최상이라는 결론이다.

대우와 기아사태와 정부

대우사태가 기아와 유사한 점은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충격이라는 점이다. 5대 재벌이 망한다는 사실이나 국민의 기업으로 추앙받던 기아가 멸망한다는 것은 미리 예상할 수 없었다. 위기가 닥쳐 와도 어렵게나마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반면에 다르게 비교되는 항목은 정부나 시중의 민심이 판이해졌다는 점이다.

기아사태 때는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기아살리기 캠페인으로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지만 지금의 대우사태에 관해서는 함부로 말하는 이가 없다.

또한 기아와 정부간에는 심각한 대립이 표면화 되었지만 대우와 정부간에는 이견이 없노라고 서로가 다짐한다. 기아의 김선홍 회장은 끝까지 항전 자세를 보였지만 김우중 회장은 막판에 굴복한 점이 다르다.

가장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게 비교되는 점은 97년과 99년의 여건 변동이다. 기아사태가 촉발했을 때의 긴급상황은 그야말로 국가적 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이야 국제수지, 외화보유고, 금리와 증시 등 나라경제의 골격이 다시 형성된 시점이다.

따라서 대우를 살리기보다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우 문제를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시민단체나 여론이 재벌개혁을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보다 우월적 지위에서 처리 방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대우사태의 초기대응이 무책임했다고 평가하면서 뒤늦게나마 위기의식을 발동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대우사태도 기아와 마찬가지로 많은 쓴 경험과 교훈을 남겼다. 가장 먼저 정부가 말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쏟아 냈다는 점이 문제다. 경험이 부족했다고 해명할 수 없는 정부의 실책이 많았다. 재벌개혁의 당위성만 믿고 시장불신을 가중시킨 언행이 적지 않았다.

대우로서는 시장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을텐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점이 큰 과오였다. 채권단이 서로 살겠다고 채권회수에 나섰을 때 죽기로 각오하고 구조조정했어야 옳았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고 지나친 외부 압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세의 흐름에 둔감했는지 외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었던 김우중 회장의 위기관리가 실망이다. 패장으로서 할 말을 못할 처지일지 모르지만 솔직한 심정이나 배경을 듣고 싶은 것이다.

사진캡션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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