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부자들, 욕심 탓에 제 역할 못해

세월따라 변해온 한국인의 경제민심.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한국인의 경제의식이 바뀌어 오는 동안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서민층은 과연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사회 발전을 위해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한국인의 경제민심이 왜 그처럼 세월을 탔느냐를 알아보는 데 주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들이 각각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사회의 중심을 잡았다면 경제민심 또한 변심과 변절이 아닌 연속성을 갖는 ‘발전’의 수순을 밟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재계와 학계, 연구소 등에서 직접 경제를 접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 50인에게 한국인의 경제민심이 변해온 과정과 계층별 역할을 물어본다.

글/金喆秀 김철수 편집주간

사회기여도 부정적 답변 ‘77%’

오피니언 리더 50인은 지난 세월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부자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사회가 기대하고 맡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설문조사에서 부자들의 역할과 기여도에 대해 질문을 한 결과 ‘기대이상으로 했다’는 2.27%, ‘기대수준 정도’가 15.91%로 비교적 만족을 표시한 응답은 약 18%에 불과했다. 대신 ‘기대 이하’라는 대답은 무려 72.73%에 달했으며 ‘오히려 역작용을 했다’는 응답이 4.55%로 부정적인 답변은 77%를 넘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오피니언의 대부분이 부유층임을 감안할 때 부자들 스스로도 그동안 사회에 대한 제 역할을 못해왔다는 자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85.71%가 부자들이 자기들의 역할을 못한 이유에 대해 ‘자기 욕심 때문’이라고 답해 그동안 부자들이 매우 이기적이었음을 지적했다. 이에 비해 ‘역할을 하고 싶지만 사회적 여건이 안돼서 못했다’는 응답은 14.29%에 그쳤다.

그렇다면 부자들이 어떠한 역할을 못했다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부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물은 결과 ‘정의로운 부의 축적을 통해 국부를 증가시키는 것’ 이란 대답이 30.89%로 가장 많았다. 결국 부자는 정의롭게 돈을 벌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인데 부의 축적과정이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그 다음의 역할로는 부의 사회환원을 통한 소득 재분배(26.56%), 성실한 납세(26.02%) 순이며 부의 지나친 세습을 자제하는 게 부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한 응답은 16.53%였다. 이상의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면 부자가 떳떳하게 돈을 벌어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지만 부의 사회환원 작업도 어느정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다만 최근 크게 문제시 되고 있는 부의 세습에 대해서는 다소 관대한 입장을 나타내 우리나라 국민들이 세습문화에 비교적 익숙해져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부의 가치관 왜곡시킨 잘못 커

부자들의 역할과 기여가 부족한 가운데 그들이 사회적으로 미친 가장 부정적 영향으로는 ‘잘못된 부의 가치관’이 43.18%로 최고로 많이 꼽혔다. 다음은 ‘탈세 등 경제탈법’(22.73%),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 형성’(15.91%), ‘이기주의’(9.09%), ‘배금주의’(6.82%) 등의 순이다. 역시 정의롭지 못한 부의 축적과정과 탈세 등 불법행위를 자행해 국민들의 부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다는 지적이 된다. 또한 부의 가치관이 이처럼 흔들린 탓에 한국인의 경제민심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세월을 따라 이리저리 변해왔다는 얘기도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경제의식이 시대적으로 변절해 온데는 부의 가치관을 흐려놓은 부자들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도 없는 것은 아니다. 부자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꼽아 달라는 주문에 40.91%가 ‘국가 경제 견인’이라고 대답해 한국의 고도성장은 역시 부자들이 이끌었으며 이는 재벌의 국가경제 발전에 대한 공헌도를 그만큼 인정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긍정적인 영향 중 그다음 순은 ‘국부의 축적’과 ‘성공 신념을 심어준 것’이란 응답이 각각 25.0%이고 기타가 9.09%이다. 한마디로 부자들은 그동안 돈을 열심히 벌어 결과적으로 나라를 부흥시켰으며 나도 잘 살아 보자는 각오를 국민들에게 선물한 셈이다.

A. 부자들의 사회기여도

한편 부자들이 사회발전을 위해 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크고 능력이 있으니까’가 51.85%,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니까’가 29.63%, ‘인간사회의 기본적 도리이니까’가 14.81%의 응답률을 보였다. 사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고 누리는 사람이 무언가 내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정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자가 사회발전에 특정한 역할을 하도록 정부가 개입해도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가려서 할 수도 있다’는 응답이 83.72%나 돼 주목된다. 이에 비해 ‘어떤 경우든 절대 안된다’는 11.63%에 불과해 최근 재벌정책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도 사안에 따라서는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부유계층이고 보면 매우 이례적인 조사 결과이다.

중산층 역할 평가는 다소 높아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중산층의 사회 역할과 기여도에 대해서는 부자들보다 높게 평가했다. ‘중산층이 사회가 기대하는 만큼 기여와 역할을 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9.09%가 ‘기대이상’이라고 평가했고 50.0%는 ‘기대수준 정도는 했다’고 답했다. 부유층의 경우 이같은 긍정적인 응답률이 모두 18% 정도인데 비하면 중산층은 역할과 기여에 상당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기대 이하’라는 응답도 38.64%에 달해 중산층 역할이 아주 만족스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B. 중산층 취약점

70%이상 “중산층은 사회 중심세력”

우리나라 중산층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는 37.47%가 ‘사회 안정 주도’를 꼽았고 27.22%가 ‘부자와 서민간의 원활한 고리역할‘이라고 대답했으며 14.02%는 ‘부자세력 견제’, 21.29%는 ‘서민계층의 보호막 역할‘을 들었다. 결국 우리나라 중산층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종합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중산층이 사회적으로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45.45%가 ‘자본주의를 구축하는 중간축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25.0%가 ‘사회 분위기의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체의 70% 이상이 중산층을 우리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가계 및 경제인구 분포상 가장 넓은 층이기 때문’이란 응답은 15.91%, ‘국부 창출의 원천이기 때문’이란 대답은 13.64%에 불과했다.

중산층이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고 또 안정세력으로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지만 막상 중산층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노력보다 덜 누린다’가 59.09%로 절대적이다. 이에 비해 ‘노력보다 더 많이 누린다’는 2.27%, ‘합당하게 누린다’는 36.36%이다. 중산층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 된다.

그러나 중산층의 취약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시류에 약하고 기회주의가 강하다’는 대답이 53.49%에 달해 민심의 변절을 바로 잡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해석을 낳게 한다. ‘부자와의 너무 현저한 소득 격차’는 34.88%로 중산층의 문제는 부자와의 힘 차이 보다 스스로의 약점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같은 해석은 ‘중산층의 취약점은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한 점’이란 대답도 9.30%가 된 데서도 나타난다.

응답자들은 중산층의 이런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중산층은 인위적으로라도 육성돼야 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층도 선진국보다 얇다고 지적했다.

‘중산층을 인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61.36%가 ‘있다’, 31.82%가 ‘없다’, 6.82%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우리나라 중산층의 벨트가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59.18%가 ‘선진국보다 덜 두텁다’, 24.49%가 ‘선진국보다 훨씬 덜 두텁다’고 답했고 ‘선진국보다 투텁다’와 ‘선진국과 비슷하다’는 응답은 각각 6.12%였다.

서민에게는 기회가 적었다

오피니언 리더 50인은 우리나라 서민층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그들에게는 충분한 기회도 주지 못했고 그들 스스로 노력도 많이 했다는 평가를 하면서도 ‘더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불평불만을 최소화해 사회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식이다.

‘우리나라가 서민계층에게 부를 축적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충분해 주었다’는 0%, ‘적당히 기회를 주었다’는 25.0%인데 비해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다’는 59.09%에 달했고 13.64%는 ‘거의 기회를 못주었다’고 답했다.

또 서민들 스스로 더 잘살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충분히 했다’가 50.0%, ‘그저 그럴 정도로 했다’가 27.27%인데 비해 ‘스스로 노력이 부족했다’는 20.45% 정도였다. 잘살기 위한 노력에 긍정적인 답변이 77%이상이 되는 셈이다.

C. 서민층 기회

그러나 서민계층이 사회발전을 위해서 해야할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35.71%가 ‘더 잘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고 26.65%는 ‘불평불만을 최소화해 사회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25.82%는 ‘소득 재분배가 실현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응답을 했고 11.81%는 ‘하부구조에서 만족하며 일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서민계층의 역할에 대해서는 응답자에 따라 많이 헷갈리는 상황임을 나타내고 있다.

서민계층이 사회가 기대하는 제 역할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22.73%가 ‘기대 이상으로 했다’, 59.09%가 ‘기대 수준 정도로 했다’고 응답해 80% 이상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남비식 경제의식 언론영향 커

한편 경제가 약간만 좋아져도 흥분하고 조금만 나빠져도 난리를 치는 남비식 경제의식이 가장 강한 계층으로는 역시 중산층(60.47%)이 꼽혀 시류에 약하고 기회주의적이란 비난과 일맥상통한 답변이 나왔다. 이에 비해 부자와 서민계층의 경제의식이 남비식이란 대답은 각각 13.95%에 불과해 경제의식의 변절에는 중산층이 주도적이란 관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또 국민들의 경제의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언론 61.90%, 정부 19.05%, 정치권 14.29%, 기업 4.76%로 언론이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경제의식이 남비식이 된 것은 언론이 그만큼 남비식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들의 경제의식이 일관되지 못하고 각 경제주체의 경제행위 목표가 제대로 설정될 수 없었던 것에는 ‘국가와 그 외 경제주체의 책임이 반반이다’와 ‘국가 책임이 더 크다’가 각각 44.19%이고 ‘국가 책임이 전적이다’가 6.98%, ‘국가 외 경제주체들의 책임이 약간 더 크다’가 4.65%여서 정부 역시 국민들의 경제의식 변절에 일조를 한 것으로 지적된다.

D. 국민 경제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 조사개요 *

오피니언 50인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조사는 우리나라 국민들을 부자층,중산층,서민층으로 나눠 이들의 역할과 경제의식이 어떠했나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 대상으로 재계 학계 연구소 인사들을 택한 것은 이들의 답변이 보다 객관적이고 특정계층의 편견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자 수는 50인에 불과하지만 응답자들의 사회적 비중을 감안한다면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설문은 부자계층에 대한 질문이 7개, 중산층에 대한 질문이 7개, 서민층에 대한 질문이 4개, 그리고 종합 질문이 3개 등 모두 21개 항으로 돼있으며 답변은 통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5개의 보기를 주고 이 중 한가지를 택하는 객관식으로 유도했다.

다만 각 계층이 사회발전을 위해 해야할 역할에 대해서는 중요한 순서대로 표기토록 했는데 백분률은 순서별로 가중치를 주고 그 가중치의 합계를 기준으로 산정했다. 부자와 중산층, 그리고 서민층에 대한 분류기준은 특별히 제시하지 않고 사회관념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주도록 주문했다. 조사기간은 99년 8월 2일부터 14일까지이며 조사방법은 조사대상자가 직접 답변을 작성토록 했다.


** 설문 조사 대상(응답자)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

IBM 신재철 사장

LG경제연구소 이윤호 소장

강원산업 정문원 회장

고려대 조명현 교수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금호그룹 박정구 회장

대상 고두모 회장

대한펄프 최병민 사장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리복 이실근 사장

매일유업 김복용 회장

베비라 이대식 사장

부광약품 윤종여 사장

삼성 SDS 김홍기 대표이사

삼호물산 조강호 회장

새한그룹 이영자 회장

아남산업 김이환 부사장

연세대 경영대학원 정구현 원장

유한양행 김선진 사장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종익 팀장

제일제당 손경식 회장

중소기업연구원 최동규 원장

지학사 권병일 회장

진로 장진호 회장

피데스 투자자문 송상종 사장

피죤 이윤재 회장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

현대산업개발 김판곤 부사장

삼양사 유진국 상무

대우경제연구소 정유신 팀장

대우경제연구소 경영컨설팅센터 윤문노 본부장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김승식 차장

<이상 무순>


※이번 설문조사에는 모두 50명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응답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중 16명은 무기명을 희망해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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