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1999년9월호]

인맥에 매달리는 세태가 두렵다

신문 동정란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것은 지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여전하다는 뜻이다. 새 인물에 대한 정치적 관찰임은 물론이다.

학맥, 지맥과 권력의 축을 따지는 버릇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맞는 말이다. 아울러 정치를 개탄하면서도 정치적 인간화를 모색하는 버릇이 아닐까 싶다.

출세한 동문을 축하하는 ‘자랑스런’ 잔치판이 가관이다.

축사와 답사와 기념패와 사진 찍기 행사다. IMF 애국심으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장롱 속에 있던 금도 내놓았는데 다시 금메달까지 증정하는 행사도 있다. 명문 고교와 유명대학 동창회의 세력 과시가 정치행사나 다를 것이 무엇일까.

특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대군단을 형성하고 있는 특정 학맥의 축하연에는 유력 인사가 총집합한다. 축의금 주고받기 금지 훈령이 논란 중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엄청났었다.

‘자랑스런’ 학맥과 지맥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덩달아 특수 대학원 동문들도 신학맥을 구축하려 몸부림치는 행사가 즐비하다.

그러니 정치지향적 세태요 추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평소 지역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를 아주 몹쓸 병으로 지탄했다. 그러나 실제 특정 학맥과 관맥의 권세이기주의도 이에 못지 않게 두려운 병폐라는 인식이다.

권력기관이나 금융계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드러났었지만 관맥은 철통이다.

마치 집안끼리 혈통 보존을 위해 벼슬을 배분한 꼴이다. 게다가 퇴임 후의 안전보장을 염두에 두고 관련기관 감투마저 나눠 가진 관행을 마련해 놓았다. 전현직 세도가들이 공존공영을 위해 각종 맥을 공직사회 지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퇴직 공무원들의 친목단체가 극성으로 세도를 부렸던 일이 생각난다. 이권으로 독점하여 빌딩을 짓고 후생복지를 도모하다가 말썽이 되어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학맥과 지맥과 관맥 등 연결 고리를 좇아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세태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으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또 선거가 다가오니 엄청나게 꿈틀거리고 쫓아다니는 행렬이 재연될 것이다.

노선을 바꾸거나 신인맥의 품으로 전입하는 변절도 반복될 것이다. 행정부가 정치권에 쩔쩔매는 것은 보기 싫지만 현실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안전보험에 가입하듯 인맥구축에 열중하는 모습은 꼴사납다.

정부 혁신과 정치개혁이 어렵다는 현실도 여기에 연유할 것이다.

정치적 세태를 거역하기는 고사하고 스스로 끌려가고 흡수되니 개혁이 될 까닭이 있겠는가. 덩달아 기업 인사마저 정치적 학맥과 지맥을 추종하는 모양이다.

재계가 구조조정 과정에 혼이 났겠지만 살아남기 위한 얕은 수로 비치니 처량하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외치다가도 정치적 세태 앞에서는 맥을 못 추니 분명 영문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그 속사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배짱도 없이 큰 사업장을 정치바람에 맡긴다면 나중에 어떤 사태가 빚어질런가.

과거 여러 차례 경험했다시피 인맥은 수시로 변동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 인맥은 적과 동지간 구분도 없이 뒤섞이고 바뀌는 법이다. 그러니 오늘을 지배하는 인맥에 과잉 의존하려는 생존술이 결코 안전보험일 수는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재벌간 표정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당장 이해득실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명암이 다시 엇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맥세태를 개탄할지언정 허겁지겁 추종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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