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재벌의 유죄와 무죄

글 /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돈이 너무 많은 재벌의 죄

큰 재벌일수록 욕을 많이 먹게 되어 있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을 소유했으니 욕 먹을 수밖에 도리가 있는가. 언제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벌었으며 앞으로 어디다 쓸 것인가. 돈 많은 것도 죄가 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다고 하겠는가.

돈 못 번 사람들은 속이 타고 열이 난다. 부도 맞은 어음 쪽지나 쥐고 한숨 쉬는 처량한 기업인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죽고 싶은 심경에 세상이 똑바로 보일 까닭이 없다.

돈이란 돈은 재벌이 독식하고 있으니 그 죄가 보통인가. 아울러 돈의 속성도 죄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다. 시중자금이 제물에 재벌 품으로 빨려드니 어떤 영문인가.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데도 재벌이 안전하다면서 그 쪽으로 집중하니 참으로 얄밉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재벌의 독식죄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는 꼴이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재벌의 사업영역을 한시도 벗어날 수는 없다. 집에서 승용차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하기까지 온통 재벌의 영토뿐이다. 옛적 만석꾼은 동네 사람들이 자기 땅을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고 자랑했었다.

요즘 우리네 신세는 이보다도 몇 갑절이나 더하다. 재벌의 소유와 지배 울타리 속에 우리가 갇혀 있는데 더 이상 말해 뭣할까.

얼마 전까지 재벌은 욕심이 많았고 영토확장을 위한 무리수에도 용감했다. 정부가 간섭하고 국민이 싫다는데도 듣지 않고 체면도 명예도 없이 성곽을 쌓아올리는 데 열중했다.

게다가 세금 덜 내며 재산을 상속시키는 데도 한껏 재주를 부린 점이 있었다. 세무사찰도 받고 세금추징도 당했지만 죽기살기로 편법 상속에 집착을 보였다. 그러니 큰 재벌일수록 죄가 많다고 지탄하게 되었다.

재벌이란 돈 많이 벌겠다고 나라로부터 면허받은 사업가다. 그러나 욕먹지 말고 존경받으면서 벌라고 허가했는데 그렇지 못하니 유죄인 것이다. 재벌이 돈 벌면서 은행을 모조리 못쓰게 망가뜨렸다고 지적된다.

주로 은행인들이 하는 말이지만 안 빌려 주겠다고 버티었는데 외부 압력까지 동원해 은행돈을 끄집어 내어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반신불구가 되고 나라경제가 가동을 못해 IMF 시대를 맞고 말았다니 그 죄가 얼마인가.

우리가 IMF 고통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면서 재벌에게 얼마나 욕을 했는지 귀가 있었으면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고장난 은행구조를 뜯어 고치느라 64조원이란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돈의 이자를 무느라고 허리를 펼 수가 없는 처지다. 이래도 재벌이 죄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정부는 세금징수 재미

재벌 덕택에 정부는 세금 거둬들이는 재미를 누렸음이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 재정은 넘치고 남았었다. 그리고 재벌도 세금 많이 냈다고 자랑해 왔었다.

정치권도 돈 쓰는 정치 벌이면서 재벌한테 많이 뜯어 썼을 것이다. 국회에서 발언 신청만 해도 돈 보따리가 굴러들어간 사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재벌을 압박하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재벌 덕을 가장 많이 입은 집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세수산업이라는 말이 있다. 상품값보다 세금이 더 비싼 품목이 세칭 세수산업이다.

자동차 산업, 술 산업, 화장품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전자와 정보통신 산업 분야도 세금징수에 편리한 산업이다. 그리고 이들 산업의 대부분을 재벌이 지배하고 있으니 재벌의 제일 수혜자는 정부인 셈이다.

재벌이 땅 욕심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정부는 부동산을 규제하면서도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땅을 움직이면 세금이 따라 붙게 되어 있다.

사고 팔거나 그냥 보유하고 있어도 국세가 붙고 지방세가 붙는다. 세금이 안 걷히면 세무사찰로 징수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는 IMF 하에서도 사찰세수가 2조원에 달했었다. 재벌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도 세무사찰이면 즉효다.

특별 세무조사는 무섭기로 소문이 났다. 수백명의 조사요원이 급습하여 장부를 몽땅 압수해 간다니 간담이 서늘하고도 남을 것이다.

세원을 숨기고 세금을 회피하려는 행위는 당연히 세무조사가 따라야 한다. 기업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2세에게 상속시키고자 부당 내부거래 방식을 이용하는 행위도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세법이 잘못되었다거나 오랜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해명도 받아들여 질 수 없다.

그렇지만 세무조사에도 기준이 있어야 하고 혐의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옳은 것이다.

마치 악덕 기업인을 처단하는 식으로 혐의부터 공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세금추징 이외의 정책목표를 위해 변덕을 부린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재벌에게 괘씸죄가 부과되었다는 여론도 있다. 설마 국민의 정부가 그렇게 야비할 수 있을까 싶지만 재벌압박이니 언론 길들이기라는 시중의 공론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세금은 공평과세가 첫째이다.

속으로야 남이 많이 무는 것은 상관없고 나는 적게 물었으면 싶겠지만 똑같이 문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재벌이 돈 많이 벌면서 세금 덜 내려고 재주부리는 것은 중죄 이전에 추태다.

만약 세금 제대로 물어 사업이 망할 지경이면 당당히 공개해야 한다.

과거 자유당 시절을 회고한 어느 유명 재벌의 회고록에는 탈세를 고백한 대목이 있다. 탈세하지 않고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그때의 탈세는 다행이었다는 소감이다. 탈세하지 않고 사업을 망쳤다면 오늘의 유명 재벌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약속

재벌 총수와 대주주들은 재벌성을 자기 소유라고 과시하며 뻐기고 다닌다.

세상 사람들도 아무개 재벌 소유라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재벌성의 주인이 총수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재벌 사업장이란 총수의 혈족 몇명이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료와 보너스를 받고 근무하는 우리네 직장이다.

총수가 아무리 큰소리 쳐도 결국은 국가와 국민의 소유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재벌성을 총수 혼자 독단으로 전횡하지 말라고 야단칠 수는 있을지언정 재벌을 없애버려야 옳다고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덕택에 제법 성공하고 팔자를 고친 사람들이다.

북녘에 사는 동포들은 아직도 굶고 있지만 우린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이렇게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만 너무 잘사는 이가 따로 있고 쪼들리는 계층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 불편할 따름이다.

자본주의는 우리도 선진국만큼 잘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약속해 주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선진국의 실험에서 증명되었다.

다만 똑같은 시스템이지만 운영하는 능력에 따라 먼저 오르고 나중에 오른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선택이었으니 퍽 오래 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는 밥 먹고 사는 인권보장을 위한 자본주의였다.

이에 비하면 지금은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고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하겠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종전과는 다를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갑자기 탄생한 시스템이 아니고 종전부터 똑같은 제도를 정치와 행정이 그 시대에 필요한 수준만큼만 채택해 왔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탈이 생긴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라는 병폐가 제도의 잘못보다 운영상의 과오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리고 변질된 제도를 새로 고치는 과정에 지나친 비용이 소요되니 속이 상하고 욕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재벌의 유죄론이나 자본주의의 결함론이 사실무근일 수는 없다.

고의이건 실수이건 재벌의 전과 기록은 많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모순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도를 보완하고 운영방식을 개선하자고는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지만 재벌이 돈 많이 가진 것을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돈을 많이 벌되 공정하고 투명하게 벌어 뜻있게 쓰라고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혈통 숭배의 과잉 집념

우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훌륭한 기업인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 그럴 만한 기업인이 없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업인들을 찬양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못하다. 잘못하면 훌륭한 기업인이 애매하게 매도되고 글쓴이도 의혹의 눈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탓이기보다 우리 사회가 걸어온 과정이 그러했고 역경과 고비가 많았던 기업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자화자찬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떠난 많은 창업인들이 남긴 것도 돈 주고 대필시킨 자서전밖에 없다.

그러므로 객관적 기록으로 보면 한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 추앙될 만한 유공 기업인은 한 사람도 없는 꼴이다.

그리고 유공자도 없이 죄인들에 의해 한국경제가 획기적으로 성장했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이다.

우리는 이같은 현실에 일말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개발경제 시대를 취재했던 경제기자로서는 다소간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유명 경제학자가 「기업을 위한 변명」이란 책을 출간했다. 변명이란 제호는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설득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재벌의 경영방식을 우리네 안방의 잣대만으로 재단하려는 국민정서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경제학자의 지론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제2의 영국병 타파를 선언한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의 연설문이 국내 신문에 보도된 바 있었다. 기업인을 죄인으로 취급하다 영국경제를 망쳤다는 줄거리로 기억한다.

돈 버는 기업인을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영국경제가 살아난다는 그의 말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확신한다.

미국 사람들은 돈 많이 번 기업인을 보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데 비해 영국 사람들은 시기하고 매도한다니 같은 자본주의라 해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나라경제의 흥망성쇠가 갈라질 수 있는 셈이다.

우리 같은 이는 스스로 창작할 재능이 없으니 토니 블레어 총리의 연설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돈 많이 번 기업인을 죄인시하게 되면 한국경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렇게 ‘기업을 위한 변명’을 대신하면서도 재벌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싶은 주문이 있다.

경영권 방어와 혈통 승계를 위한 과잉 집념을 한 단계 낮추라는 주장이다.

잘못하면 창업과 수성을 통해 애지중지했던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자식이 여럿일 때 경영권을 온전하게 승계시키기가 어려운 상황도 예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관찰하면 터무니없이 경영권이 박탈되고 당장 2세에게로 기업을 승계할 수 없는 독소 조항은 없다. 무리하게 편법이나 불법으로 경영권에 집착하고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과욕이 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네는 혈통을 중시해 온 전통으로 서양과는 달리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절대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기업 승계의 보람 때문에 의욕이 생기고 집념에 불타 더욱 큰 성취에 도전코자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대에 최선을 다해 큰 기업을 세워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면 제물에 혈통 승계는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사실을 믿고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견이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