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새질서 창조와 비판관계

글/崔禹錫(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요즘 진시황(秦始皇)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진시황이라면 희대의 독재자로서 무모하게 만리장성을 쌓아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한 폭군으로만 알려져 왔는데 실은 꼭 나쁜 짓만 한 게 아니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최근 발굴된 진시황 능과 거기서 나온 병마용(兵馬俑)에서도 영향받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진시황이 독재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법치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정치가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사실 중국의 서쪽 변방인 진나라가 6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것 자체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속속 발굴되는 진나라 때의 유물을 분석한 결과 당시 대단한 경제규모와 높은 산업 수준을 이룩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심지어 부장품으로 나온 칼만 보더라도 제강기술이 20세기 초의 수준과 맞먹는다 한다.

진시황의 여러 면모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이 분서갱유(焚書坑儒) 편이다. 분서갱유란 글자 그대로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파묻는다는 뜻인데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진시황이 단지 폭군이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진시황이 단순한 폭군이었다면 그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도 보전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탁월한 선견력과 통찰력이 있고 지략이 빼어났기에 진 제국을 건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진시황은 매우 신중했고 용인술도 뛰어났다. 좋은 인재를 과감히 데려다 썼고 본인 스스로도 항상 긴장 속에서 정무에 정진했다. 율령(律令)을 정비하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법치의 기초를 닦았다. 무력에 의해 천하를 통일했지만 문치(文治)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진시황 자신이 상당한 교양인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번은 한비자(韓非子)의 글을 보고 “이 글을 쓴 사람과 교제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겠다” 하며 결국 한비자를 데려온다. 그런 진시황이 왜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땅에 묻었을까. 일의 발단은 이렇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함양궁에서 성대한 축하연을 열었다. 군신 모두가 참석하여 “이제 온 천하가 폐하께 귀순했습니다” 하며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었다. 그때 순우월(淳于越)이란 고지식한 학자가 앞으로 나와 한마디 한다.

“옛날 은(殷)나라, 주(周)나라가 천년을 간 것은 천자의 자제, 공신에 나라를 분봉(分封)하여 비상시 황실을 도왔기 때문인데 지금 천자의 자제분은 일개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으니 만약 무슨 일이 나면 황실은 누가 도울 것입니까. 그런 큰일에 대한 대비없이 모두들 아첨이나 하고 있으니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하고 말해 버렸다. 좌중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진 제국의 새 제도인 군현제(郡縣制)를 비판하고 봉건제를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 흥이 깨졌지만 정식 제기된 건의이니 승상이 책임지고 논의해서 보고하란 말을 하고 자리를 뜬다. 승상은 정식회의를 열어 봉건제 부활 문제를 논의한 끝에 지금 새 시대가 되어 새 제도로 개혁하고 있는데 옛날 전례를 들춰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니 무슨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조처라는 것이 옛날 일을 자꾸 꺼내지 못하게 옛날 책들을 불태우고 비생산적 논의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사관(史官)이 소지하는 역사기록이나 농업, 의학, 점성, 천문에 관한 책 외엔 모두 압수하여 불사르라는 포고가 나온다. 그래서 민간이 소지하는 서적들이 많이 압수되어 불 속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학문이 관학(官學)으로 통일되고 민간의 학문활동이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궁중에서 학자들의 발언권이 약해지자 소위 방술사(方術士)들의 힘이 커졌다. 방술사란 도술을 행하거나 불로장생의 비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진시황은 늙어가는 것이 싫어 이들 방술사를 동원하여 불로장생을 도모한다.

그러나 돈을 쏟아부어도 불로초를 구해오지 못하고 이들이 황제를 원망한다는 소문을 듣자 진시황은 격노하여 진상을 조사케 한다. 그 조사과정에서 자기만 살려고 방술사들이 남을 모함하고 죄를 전가하니 연루자가 4백60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황제를 비방했다는 죄를 씌워 모두를 땅 속에 묻는다. 이때 황태자까지 나서 말렸지만 결국 갱유를 강행하고 만다.

분서갱유를 같이 쓰지만 약간 경위가 다르다. 분서는 새 질서를 위해 쓸데없는 탁상공론을 금지시킨다는 목적이지 학문 자체의 말살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진나라의 서적들이 진짜로 불탄 것은 진 멸망 후 아방궁이 불탈 때였다. 갱유는 황제를 속이거나 배반하면 어떤 결과가 되는가를 보여 후세의 경종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진시황 이야기를 꺼낸 것은 새 질서 창조와 비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랜 신문사 생활을 하면서 세상일에 시비를 많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옳은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지만 틀린 게 더 많은 것 같다. 당시는 옳다고 믿고 또 좋은 일을 한다고 마구 쓰고 비판하고 했는데, 지금 보니 시대착오적인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경제개발계획이나 대규모 사업 등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잘한다고 긍정적으로 쓴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항상 문제점이 먼저 보였고 그러다 보니 본질보다 문제점 위주로 판단을 했다. 포항제철을 지을 때, 경부고속도로를 놓을 때, 새마을 사업을 시작할 때, 산림녹화사업에 착수할 때 먼저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심지어 ‘백억불 수출’ ‘천불 소득’의 계획을 내 놓았을 때 ‘꿈의 나열’이란 제목을 담아 비판했다.

다른 신문이나 학자, 전문가들의 논조도 비슷했다. 그러나 포항제철은 세계 일류기업으로 컸고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으며 새마을 사업, 산림녹화도 세계적인 성공사례다. 백억불 수출, 천불 소득은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 달성되었다.

신문이나 학자들이 쓴 비판대로였으면 한국경제는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계사적으로 드문 발전을 이룩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고 쓴 것도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옛 기준으로 새 사실을 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나라 학자 순우월(淳于越)이 옛 봉건제의 가치관으로 새 군현제(郡縣制)를 비판했듯이 옛날 생각으로 새 흐름, 새 질서를 보니 걱정이 안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비판을 받은 집권자들은 분서갱유를 할 수도 없고 속 꽤나 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분서갱유 걱정없는 개명 세상에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면서 어디까지 비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시비하면 혹세무민하는 것이고,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 가만 있는다는 것도 배운 사람의 할 일이 아니다.

정말 길게 보아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알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만큼 자신이 없고 시비하는 것이 겁나는 것이다.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틀린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IMF사태 전후의 논의들을 보아도 잘못된 것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은 옳다고 믿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혹세무민한 것이 없지 않다. 스스로는 옛날 생각을 하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서도 ‘정신 차려야 한다’ ‘변해야 한다’ 하고 외치는 주장이 얼마나 많은가.

정신 차리기 쉽지 않고 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IMF사태 후 1년여 동안에 나온 주장들을 냉정히 검증해 보면 분서감이 수두룩하다. 정말 분서를 할 수도 없고 시장에서 분서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모두들 점잖아서 그렇지 무슨 주장이나 글에 대한 사후 검증이 없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시류를 쫓아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기아 사태가 났을 땐 국민기업 기아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 놓고 요즘은 그때 빨리 기아 문제를 처리 안했다고 준엄히 나무라도 뒤탈없이 넘어가는 세상이다. 기아 처리가 소위 국민정서와 거기 영합한 여론 주도층 때문에 잘못된 점도 많다.

지금도 개개의 정책이나 전문적인 일에 대해 아마추어 수준의 논평, 시비가 너무 많다. 그것이 기아 사태의 재판이 안된다고 보기 어렵다. 정말 전문가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면 입을 다무는 것도 애국하는 길일 것이다.

실패한 경영자는 퇴출해야 한다는 논의가 요즘 많은데 실패한 논평자도 심판받고 심한 경우엔 퇴출까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진시황같은 독재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에 의한 분서갱유다.

당대의 논객 배병휴 주필이 주도하는 고급잡지『경제풍월』이 가뜩이나 시끄러운 세상에 소음을 하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그 소음들을 쓸어버리는 일진청풍(一陣淸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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