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정치자금 말썽의 한·미 격차

정치자금은 미국에서도 말썽이다. 조지 부시 2세 텍사스 주 지사가 정치자금으로 받은 돈에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미국 조야가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다. 2000년 대통령 후보로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부시 지사는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두 번의 주 지사 선거를 통해 거둬들인 정치자금은 4천1백만 달러나 된다. 99년 첫 6개월 동안에만도 3천6백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미국의 주 지사로서는 그가 사상 최대의 정치자금을 모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출처에 있다. 그가 받은 자금의 일부가 ‘문제 기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 파괴 혐의로 많은 벌금을 문 기업들이 정치 자금 제공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에서 돈을 받았으니 환경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기업을 제대로 규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데에 논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거운동을 분석하는 한 전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부시 지사에게 비교적 큰 돈을 기부한 기업은 대략 1만4천개이다. 업종별로 보면 금융계가 4백60만 달러로 제일 큰 몫을 감당했고 에너지 및 광업계 3백70만 달러, 부동산 업계 2백20만 달러 순이다.

텍사스에서는 개인도 거액을 낸 사람이 많다. 미국에서 개인의 1회 정치헌금 한도는 1천 달러로 돼 있으나 텍사스 주에서만 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거액 헌금이 가능했다.

고액 기증자 중 로니 필그림 씨가 주목을 끈다. 치킨회사 창업자인 그는 두 차례 선거 때 12만5천5백 달러를 내고 부시 취임 때 다시 10만 달러를 냈다. 그의 회사는 환경법 위반으로 수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필그림씨는 10년 전 근로자 보상법을 심의중인 주 상원의원들에게 1만 달러 짜리 수표를 뿌려 말썽을 빚기도 한 인물이다.

텍사스 주에서 환경 오염의 주범은 석유회사와 발전소 같은 에너지 관련 회사들이다. 부시는 이 회사들로부터 큰 돈을 받았다. 따라서 이런 환경 관련 회사의 이해가 얽혀 있는 문제들에 대해 부시가 보이는 태도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시는 낡은 시설로 가동되는 정유회사와 발전소로부터 1백50만 달러를 받았다. 이 때문일까. 부시는 텍사스 주의 환경 기준을 정하는 문제에서 업자의 편에 섰다. 다시 말하면 환경 기준 설정은 업자들이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인즉 부시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텍사스 주의 환경기준이 연방 기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것. 하기야 업자들이 찬성하는 환경 관련 법안 두 건을 부시가 서명했으니 그런 비난이 나올 법도 하다.

이밖에 피해자 보상 청구권에 관한 개정 법률안과 사립학교에 관한 법안에서도 부시는 로비스트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로비스트들이 부시에게 준 정치자금이 5백만 달러임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오해는 생긴다. 부시 측근은 이런 저런 비난에 대해 “뒷 거래는 결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거액 기부자들이 부시의 임명권 행사에서도 특혜를 받았다는 비난도 있다. 부시가 결정한 9건의 고위 명예직 임명에서 8명이 거액 기증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낸 돈은 총 41만9천 달러. 이에 대해서도 부시 측은 ‘무관’을 주장한다. 한 텍사스 시민은 “우리 주에서 잘 나가는 사람은 모두 부시에게 거액을 낸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민심은 같은 모양이다. 부시가 평범한 주 지사였다면 그렇게 많은 기부금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또 말썽도 없었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에다 잘하면 차기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정치인을 업자들이 가만 둘 이가 없다.

정치자금 수수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미국에서도 말썽이 생기는 걸 보면, 주로 밀실에서 돈이 건네지는 한국에서 정치자금을 놓고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장 추악한 일을 가장 아름답게 처리하는 게 정치라고 했던가. 추악한 일이 어떻게 아름답게 다뤄질 수 있단 말인가. 언어의 희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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