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일확천금 투기에 투자자가 운다

글 / 裵秉烋 대표편집위원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투기 행위였다고 고백하는 이는 없다. 일확천금을 노리고도 당당한 투자라고 우긴다. 지난 80년대와 지금의 90년대까지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투기가 언제쯤 백기를 들고 투항할는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투기를 저주하며 투자자가 안심하고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끔찍한 애틀랜타시의 비보

주식 투기에 실패했던 40대의 미친 이가 미국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지난 7월 말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증권가에서 있었던 무자비한 살육 사건이었다. 마크 바튼이라는 투자 실패자가 무려 20여명의 애매한 목숨을 사상시켰다. 물론 그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 자살했다.

자본주의의 성공 모델이라는 초강국 미국이란 바로 이런 나라인가. 총기 휴대가 자유화된 나라가 선진국인가 야만국인가. 이런저런 감상 때문에 애틀랜타 비보를 예사롭게 볼 수가 없다.

무차별 난사는 투기 실패꾼의 광기였다.

단기매매 차익을 노려 한탕을 꿈꾸다 실패하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증권사의 투자 상담실장과 여비서를 사살한 후 보이는 대로 사살했다. 전처 소생의 어린 자식도 쏘고 부인도 사살했다.

외신에 따르면 마크 바튼이란 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가 주식에 빠져 이성을 잃고 세상을 저주하고 스스로 파멸을 선택했다는 결론이다.

도대체 주식 투기가 뭐길래 인간을 못쓰게 작용한다는 말인가.

우리 주변에서도 투기에 빠져 허우적거린 이를 볼 수는 있다. 패가망신하여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도 봤고 술독에 지쳐 실성해진 낙오자도 봤다.

그렇지만 총기를 난사하는 미국식 광기는 보지 않았다. 행여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광기의 폭거를 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일확천금 환상에의 경보

우리 사회가 체험했던 투기 열풍이 어떠했는가는 기억에 생생하다. IMF 체제를 불러온 거품경제의 진원지가 부동산과 주식 투기였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투기로 횡재를 얻어 거드름을 피운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넘치는 횡재로 큰 사업을 일으켜 나라와 사회에 공헌한 이는 만나본 기억이 없다.

반면에 투기 대열에 참여하여 나도 한탕을 얻겠다고 덤비다가 실패한 사람이 더 많았다.

딱하게도 그들의 대다수는 고달픈 처지를 모면코자 투기에 매달렸었다. 투기란 결코 선량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돌봐주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그러나 환상이란 인간을 마취시킬 수 있는 모양이다. 총명을 흐리게 하고 지성을 팽개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식 투기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태양을 등지고 사는 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재벌기업 오너나 그 친인척 중에도 주가를 조작하다 발각되고 유력 전문직종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도 불법행위에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

말로는 부당 내부거래나 주가조작 혐의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투기행위나 마찬가지다.

경제기자가 부당거래에 참여하여 기자 세계가 고발된 사건은 특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지만 직업윤리상 변명할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정보의 절도행위이자 공익을 방패로 악용한 사기행위였기 때문이다.

경제기자가 주식거래의 내부자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상식이다. 기업정보를 사전에 입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주가를 움직이는 영양가 있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직업상 금기다.

그렇다면 내부자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없다는 말이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나 참여할 수 있다는 원론으로 설명이 충분하다.

이는 직업윤리나 사규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 해도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투기에의 환상이나 불공정한 투자환경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의 환경이 유혹하고 욕망을 억제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도 유죄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불공정거래 환경과 관행

증시가 퇴직자들을 유혹하는 분위기다.

부도기업 어음을 안고 있는 중소기업 관계자들도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다. 가계의 빚을 덜고자 뒤늦게 취업전선에 나선 주부들도 증시에서 구원을 얻고자 생각하게 되었다.

주가 1,000 포인트시대가 IMF로 잃어버린 소득과 자산을 일거에 만회시켜 줄 것만 같아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자들이 자본이득을 독점해 가기 전에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돈더미에 질려 있는 형세다.

하루에도 수십억원씩의 현금 수입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중에는 돈이 너무 많다고 하는데 모조리 재벌계 펀드로 몰려가니 이왕이면 재벌 우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된다.

이래저래 환상의 유혹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 그렇지만 막상 주식투자에 참여하여 심장박동이 뛰지 않고 정서가 불안해지지 않은 투자자가 별로 없다.

알고 보니 증시가 결코 정직하거나 공정하지 않다. 재벌 펀드들의 주가조작 사건도 있고 상장사 임직원들의 불법적인 부당거래 사건도 수시로 터진다. 증권 전문가들보다 시세조작과 한탕 전문가들이 판치는 세계가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재벌계 오너는 물론이요 공익기관 종사자며 감독기관 관계자마저 믿을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상장사들은 단숨에 거액의 차익을 얻어내면서도 불가피한 관행을 말한다. 합병이나 증자 또는 외자유치 등 경영상 중요 변동 상황과 경영권 안정의 절박성을 강조한다.

경영권 안정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작전세력을 동원하여 주가를 끌어 올렸다가 증자가 끝나면 일반 투자자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제자리로 주저앉은 주가를 보고 속았다는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강력한 감독권은 뭘하나

증권거래법도 있고 감독원법도 있지만 투자자 손실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투자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지만 어느 세월에 재판을 거쳐 배상받아 마음의 평정을 얻을까.

통합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가 힘이 있으니 광기를 부르는 투기는 당연히 막아줘야 한다.

주가조작이니? 작전세력이니 하는 범죄행위는 감독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미공개 정보를 절도하여 사기 행각을 벌이는 내부자거래도 감독기관이 무섭게 다뤄야만 한다.

감독 당국은 업무량이 과다하고 기술적으로 예방이 어렵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증시에서 투자 아닌 투기행각을 격퇴시키지 않는 한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투기꾼마저 한탕을 얻지 못했다고 사회를 저주하며 총질이라도 벌이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찌 되겠는가.

주가 1,000 포인트 시대를 맞아 악성 불공정거래의 관행이나 얼굴을 숨기고 투기 열풍을 불어넣는 기관이나 개인은 비용이 들더라도 완전소탕을 목표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믈론 쉬운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후퇴하거나 자신 없다는 기색을 보이는 것은 금물이다. 투기의 속성은 절대로 자발적인 항복을 거부하는 법이다.

무서운 힘으로서만이 끝내 일확천금의 환상을 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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