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1999년9월호]

파업유도에 걸린 나라 체통

직무상 기밀을 술기분에 털어 놓다니…

노사문제를 넘어 나라의 체통이 문제다.

검찰이 공기업 파업을 유도했다가 들통이 난 사건이니 수습도 문제고 뒷탈도 문제다. 검찰조직이 개입한 것은 아니고 출세욕에 불탄 특정인의 단독 충성이라 하지만 믿어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은가.

개인적 공명심이거나 승진을 노린 업적 쌓기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검찰이 서둘러 전 대검 공안부장을 구속시켰으니 검찰로서야 뼈를 깎는 성의를 보인 셈이다. 그렇지만 노동계나 재야는 조폐공사 전 사장도 구속하고 당시 검찰총장도 구속수사 하라고 야단이다.

한마디로 거대 공권력의 신뢰가 야단났고 온나라의 기강이 말 아니다.

한때 공권력을 조롱하던 신창원이란 흉악범이 검거되어 다행이라 여겼더니 파업유도 사건은 이 보다 더한 형편없는 졸작 사건이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이란 자리가 어떤 위치인가. 머리만 좋아서도 안되고 공명심에 흔들릴 사람이 절대로 앉아서는 안될 자리다. 차라리 파업을 유도했더라도 자랑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직무상 기밀을 술기분에 털어놓는 이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을까.

도대체 권력기관인 검찰청 구내식당에는 낮에도 폭탄주를 마실 수 있었다니 그것도 말이 되는가.

지금이야 달라졌다고 들었지만 대낮에 양주를 마시면서 공안질서를 부르짖었다니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공기업 파업에 검찰이 긴장하고 특히 공안부장이 고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기업의 구조조정은 시각을 다투는 국가적 개혁과제였다. 강성 노조와 대화하며 조폐공사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일은 벅차고 어렵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공안부장이 파업을 유도할 수야 없겠지만 나라를 위해 직무 범위내에서 협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마 과거에도 민감한 노사문제에 개입하거나 협력한 사례가 있었을 것이다.

노동계나 시민단체가 아무리 주장해도 나라의 안녕이 최우선임을 검찰이 외면할 도리가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조폐공사라는 공기업의 특수성을 생각해 보라. 나라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경영이 흔들릴 수 있는 곳이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다.

그러니 어느 공기업보다도 조폐공사의 파업에 공안부장이 심혈을 쏟고 백방으로 노력코자 지혜를 동원하려 했을 것이다.

구속 직전 진형구(秦炯九) 전 공안부장의 항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솔직히 불법파업에 대책이 없을 수는 없다.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면 직무유기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합법파업은 보장하지만 불법파업은 반드시 처벌돼야 하는 원칙은 검찰이 준수해야 할 직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검찰도 죽이고 나라도 멍들게 만들었으니 무슨 실수인가 심술인가.

노동계가 큰소리 쳐도 나라가 할 말이 없게 됐다.

강성노조가 파업을 단행해도 공권력이 맥을 못추게 되었다. 불법 제3자 개입이나 업무방해 행위가 자행될 때 무슨 명분으로 막아 낼 것인가.

진형구라는 특정한 개인이 할 수 있는 항변은 듣기 거북하다. 내심이야 나라를 위한다고 해명하고 싶겠지만 그 말이 귀에 들릴 까닭이 있는가.

개인 희생을 딛고 나라를 살리자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나라를 위했다고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파업유도 파문을 나라와 국민이 감당키 어렵다.

명석한 두뇌와 매끄러운 언변만 믿고 진씨를 공안부장에 임명했던 인사가 국가의 재앙을 불러왔다, 그러니 엉터리 인사도 단죄되고 앞으로는 유자격자를 골라내는데 어떤 검증 과정이라도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공기업 경영혁신과 특히 조폐공사의 구조개혁과 관련해서 속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공기업 경영진이 벼슬자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얼만큼 개선되었는가. 과거 감사원 감사에서 생산성이 민간기업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니 공기업 경영진이 경영을 했는지 벼슬자리를 누렸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기업 노조가 강성으로 돌변했다면 거기에도 경영진의 책임이 없었을까.

위를 쳐다볼 때마다 분통이 터져 강성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면 책임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조폐공사의 경우 예쁜 얼굴이 별로 없었다. 극도의 보안이 생명인 특별 공기업에서 지폐유출 사건이 있었다. 파업과 직장폐쇄도 있었다.

국민의 정부가 마련한 공기업개혁에서도 도마위에 오른 곳이 조폐공사였다.

기획예산처가 오죽했으면 화폐공급을 아웃소싱으로 바꿀 수 있노라고 엄포를 놨을까. 노사간의 말썽은 끊이지 않고 비용은 터무니없이 증가하는데도 구조조정은 부진하니 아예 밖에서 돈을 찍어오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분석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달라져도 검찰 제자리 지켜야

파업유도설 파문의 직접 원인이 된 조폐창의 통폐합도 개혁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당시 사장이나 공안부장이 자기네 입장에서 앞당겨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사태를 악화 시켰으니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이들이다. 강희복(姜熙復) 전 사장은 고교 선배인 공안부장의 위세를 빌려 경영혁신 업적을 쌓고자 했고 진 부장이라는 이는 검사장 승진을 노려 공적을 쌓기로 했던 모양이다. 이들에게 나라와 공권력이 희롱당하고 국민은 어처구니없이 불필요한 비용을 물게 됐다.

사회적 합의의 상징이라는 노사정위원회가 겨우 재구성된 시점이다. 경영계가 마지못해 참여를 결정했지만 노사정위가 순조롭게 운행될 전망은 극히 낮은 편이다.

보나마나 파업유도설이 노사간 쟁점을 타협하는데 있어 단골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정부쪽 입장이 노사정위에서 설득력을 갖기는 거의 틀린 형국이다. 그리고 노사정위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올 정기국회를 순조롭게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때 마침 정치권은 태풍권에 진입했다.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두고 정계개편의 향방 때문에 제정신을 지키는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

이런 지경에 노사문제가 나라와 국민을 얼마 만큼 불안하게 만들지는 참으로 두려운 노릇이다.

만신창이가 된 검찰도 걱정이 태산이요 갈길이 험준하다. 특별 검사제 도입이 여야간 합의로 추진되고 있으니 파업유도설 파장을 또 한차례 겪어야 할 처지이다. 전직 검찰총장을 조사하고 전 공안부장을 구속했지만 다가올 태풍을 어찌 피할 것인가.

차라리 몽땅 벗고 죽기를 각오하고 거듭 태어나는 것이 옳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지만 검찰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고통일 것이다. 권력기관일수록 절대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고 정치권에 항변할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검찰이 믿고 기댈 곳은 진실밖에 없지 않겠는가. 더 이상 무엇을 감추고 덮어두고 넘길 까닭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 조직과 인사에서부터 국민의 편에 서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특별검사제에 명예가 손상된다거나 재야나 노동계의 비난이 권위에 도전한다거나 반응하지 말고 수용하는 자세가 좋지 않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나라의 검찰권은 제자리를 지켜야 함이 마땅하다.

지금과 같은 태풍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아 본래의 위치를 복원시키겠다고 각오하면 머지 않아 검찰은 살게 될 것이다.

사진캡션 : 책임있는 공직자가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나라의 체통이 크게 손상됐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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