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규제 완화와 기업 자율

글 / 鄭淳元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

세계가 점차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간 통상 장벽의 해소는 물론이고 자본이나 노동 등 생산 요소의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이 같은 지구촌 경제 시대에 각국의 경제력이나 부의 수준은 아무래도 세계적인 기반을 가진 기업들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경쟁력은 곧 그 나라의 기업이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가졌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수준은 아직까지 세계 대기업들에 비해 너무나 왜소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포춘(Fortune)지가 선정하는 세계 5백대 기업 중에 국내 기업의 수는 11개에 불과하다. 그만큼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경제의 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은 왕성한 기업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동서양의 위상도 기업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여부를 계기로 뒤바뀌었다. 사실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명은 서양에서 기업 활동이 시작되는 17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을 훨씬 앞서는 수준이었다. 성냥·종이·석유·제철·염색·기술 등 각 분야에서 중국은 서양을 수세기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서양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이 탄생되고, 이를 토대로 1760년대에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동서양의 위상이 급속히 역전되었다. 근대에 들어서도 부자 나라가 된 나라들은 모두 왕성한 기업 활동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을 육성한 나라들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써로우 교수는 미국이 유럽을 제치고 세계 대국으로 성장하게된 것도 자유로운 민간 기업의 왕성한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전후 일본 역시 미쓰비시·미쓰이·혼다와 같은 대기업들을 제대로 육성하여 서구를 능가하는 경제대국으로 도약하였다. 그야말로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기업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들은 더욱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국내 경제 활동 인구 2천2백만 명 중 70%에 해당하는 1천5백만 명이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으며, 만 명이 한 사람씩만 부양한다해도 3천만명이 기업 활동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외환 위기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였고 무수한 근로자들은 실업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기업이 굳건해야 나라 경제가 튼튼하고 국민 복지가 충족된다는 값진 교훈을 우리는 외환 위기를 통해 얻은 것이다.

그러면 기업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란, 미국의 경영학자 나이트(F. Knight)가 지적한대로, 보험으로도 충당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신상품을 개발하며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경제 성장의 원천이라고 파악하였다.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어야 경제 내에 기업이 설립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서 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팽배해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감정이 매우 이중적이다. 일본의 어느 저명한 경제 평론가는 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매우 이중적입니다. 외국에 나와 한국 대기업의 간판을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고국에 돌아가서는 매우 비판적이 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서도 기업의 활동을 불필요하게 옥죄는 규제를 만들어 내는 촉매제가 된다. 이처럼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우리 사회에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체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은 어디까지나 이익추구 행위를 통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가치들을 만들어 낸다.

다음으로 기업가 정신을 냉각시키는 것은 정부의 지나친 규제이다. 정부는 기업의 활동이 지나쳐 과다경쟁으로 자원이 낭비되거나 독점의 폐해가 발생하는 등의 시장실패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기업의 설립과 활동에 대한 인허가 사항과 같은 수많은 규제 제도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국경이 사라지는 세계화 시대가 전개되고 국내 경제가 완전 개방되면서 정부의 규제와 통제가 유효하지 않을 경우 자칫 국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여 외국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80년대 말 이후 규제 완화 시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특히 정부는 세계에서 기업 활동을 하기에 제일 좋은 나라를 목적으로 적극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구호만큼 그 효과는 기업이 체감할 만큼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무엇보다 정부의 규제 완화가 양적 축소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이 양적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맞추는 건수 위주로 진행됨에 따라 실질적인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얼마전 언론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기업들의 규제 완화에 대한 체감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숫자 채우기 식의 형식적인 규제 완화로 인해 공무원들의 과도한 재량권 행사가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새로운 규제마저 양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치권도 본질적인 규제 완화에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규제를 풀려면 관계 법령을 재정비해야 해야하는 데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푸는데 평균 243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기업 활동상의 애로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보다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규제 완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고 기업 구조조정이나 경쟁력 강화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규제 완화의 파급 효과가 큰 토지, 물류, 공정거래, 노동 분야에서의 규제들을 과감히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기업 활동에 관한 규제 완화 법령을 개정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규제 완화와 함께 기업 활동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기업은 목장에 풀어놓은 소 떼에 비교할 수 있다.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기업은 언제나 스스로 결정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 기회의 포착과 투자 그리고 구조 조정은 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사업 대상과 기회가 이전보다 커지고 증가하는 세계화 시대 그리고 정보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환경 변화가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정보 지식화 사회에서 가장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은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무자비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있어 동물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셋째는, 기업 정서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기업은 바로 우리 삶의 터전이며 나라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기업가의 창조적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사회 풍토가 하루속히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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