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기업지배구조모범규준

難産(난산) 초안에 무엇을 담았나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향이 설정되었다.

OECD 권고모델을 골격으로 삼고 재벌개혁을 독촉하는 시중여론을 덧붙인 느낌이다. 민간 위원회의 자율안이라지만 형식이고 정부안이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아직 수정과 보완과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초안대로라면 기업의 소유와 지배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지배주주의 전힁이 규제된다

“영향력 행사도 경영상 책임”

모범규준은 크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주주의 권리와 책임에서부터 이사회의 구성과 기능. 내부 감시기구, 이해관계자 및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 등이다. 그리고 별도로 권고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이 모범규준은 강제가 아닌 자율이다. OECD 권고안도 강제규정은 아니다. 그렇지만 권고사항이 바로 강제유인의 성격이다.

이때문에 모범규준이 재벌개혁의 실질적인 규제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재계가 두려워하는 것도 자율을 앞세운 강제 때문이라 믿어진다.

대체로 총수의 전횡과 독선을 방지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대폭 신장시켜 견제하려는 목적이다.

우선 주주의 권리는 공평하게 대우돼야 한다는 정신이 주주의 권리에 담겨있다. 주주총회 날짜를 분산시켜 개최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주총을 분산 개최하면 대주주 입김에 의한 일사천리식을 막을 수 있다. 특별한 사정으로 주총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에게는 서면투표나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규정했다.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회계장부 열람권 행사요건을 완화시켰다. 소유지분 1%기준을 0.5%로 낮춘 것이다.

주주의 책임에 있어서는 지배주주의 월권적 영향력을 규제토록 했다. 지배주주가 소유주식의 의결권 행사나 이사로서의 경영참가외에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미치면 경영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규정이다. 개정 상법상에 규정된 "사실상의 이사"의 책임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경영상의 책임이란 경영실패의 경우 민형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사의 책임이 무거워 진다

“의무소홀도 손해배상 책임”

모범규준안에 따르면 이사회의 구성과 역활은 현재보다 완전히 달라져야만 한다.

대주주가 세칭 자기사람을 마음대로 이사로 임명할 수 없다. 자산총액이 1조원을 넘는 공개기업은 8인 이상의 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 가운데 절반이상은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외부의 전문가들만이 선임될 수 있다. 그러니까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이사회를 대주주가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게 구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사도 사외이사가 중심이 된 후보추천위에서 추천하고 주총 3일전까지는 공시해야만 한다. 대주주가 주총 당일 날 전격적으로 후보를 발표해서는 안되고 사전에 인물검증을 받게 미리 공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배주주는 믿을만한 인물을 마음대로 뽑을 수 없으니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사회를 지배하기보다 눈치보는 신세로 전락할런지도 모른다.

이사회는 3개월에 1회이상 개최해야 하며 회의록의 녹취도 의무화된다. 녹취록이 공개된다면 정책결정에 관여한 사후 책임이 따를 것도 물론이다. 형식적인 이사회가 실질적인 정책결정기구로서 역활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적극적인 경영정책을 기피하는 경우가 나타날지도 알 수 없다.

이사들에게는 평가와 보상이 따른다. 이사회의 평가를 공시하게 되고 이 결과는 스톡옵션(Stock Option)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규준에 따라 구성될 이사진이 현재보다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의무와 책임도 무거워 진다. 대주주의 지시에 순응만 하기보다 스스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사는 업무와 관련한 회사의 기밀을 누설하거나 이사직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

그리고 각종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주어진 의무에 소홀함으로써 주주나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배상책임을 지게된다.

이때문에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보험료는 기업비용으로 물게 했다. 대체로 기업의 중요 정책의결기구로서 이사회의 기능을 제자리에 올려 놓겠다는 방안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대주주 입장에서는 이사진 구성에서부터 제동을 걸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라는 말이냐고 항변할런지 모른다.

안팎 경영감시가 강화된다

“비출자 사외이사 역할 막중”

상당한 쟁점이었던 감사위원회 설치도 의무화되었다.

공개기업·정부투자기관 및 금융기관 등이 대상이다.

감사위원회는 3분의 2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하게 되어 있어 경영진에게는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외부의 회계감사도 달라지게 규정했다. 만약 부주의한 회계 감사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을 지게되어 적당히 감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감사대상기업의 파산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보고서에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감시기능이 최고경영진으로 하여금 감사위의 견제를 의식하여 몸조심하는 쪽으로 책임을 회피하게 작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

이해관계자들에 의한 경영 감시도 따른다.

가령 합병이나 자본감사와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에 채권자에게 통보해야만 한다.

이해관계자들 몰래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이다.

그리고 종업원들의 경영참가도 활성화토록 규정하고 있다. 종업원 지주제를 발전시켜 성과급을 주식으로 지급토록 하고 노사협의회도 적극 활용토록 했다.

이밖에 시장에 의한 감시가 무서워진다.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의 활성화가 큰 내용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 경영권의 안전을 보장 받자면 경영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 내용을 공시해야만 한다.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시장에 밝히라는 뜻이다. 특히 실질적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의 주식 소유 변동사항도 외부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얼굴없는 지배주주의 영향으로부터 경영이 지배되는 것을 투명화 시키겠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모범규준의 정신은 지배구조의 특명성이며 선진국에서는 거의가 정착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 못된 나라에서 당장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는 과정이 벅찰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한국적 성장주도 집단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재벌에게는 도전욕과 성취욕을 말살하지 않느냐고 지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식회사에서 비출자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막중한 지위를 차지한다던가 내부감사기구가 최고경영자를 견제하는 것은 아직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내의 경영감시를 통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보장된다면 재법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개선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을 권고하며 유인한다

“소액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모범규준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다소 절차가 남아있다. 따라서 초안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므로 적극적인 의사개진이 필요하다는 소견이다.

그리고 모범규준이 원칙적으로는 자율이기 때문에 법률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만 권고사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정부는 기업개혁을 조기에 마무리 짓기 위해 모범규준안의 성실한 이행을 강력히 권고할 방침이다.

모범규준을 성실히 준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적인 우대조치를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신용평가에 있어서도 모범규준의 준수여부를 반영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자율이라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따른다는 해석이다. 세제와 금융상 불이익이라면 기업이 견딜 수 없는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권고사항에서는 권고이상의 정부방침이 실려있다. 주주와 채권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기관의 설립이 권고되고 소액주주권 행사요건의 완화와 기관투자가에 의한 경영감시 책임도 권고되어 있다.

소액주주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집중투표제가 쟁점이다. 소액주주가 한사람에게 집중 투표하여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주주에게는 충격이 될 수 있다. 다만 초안에는 권고사항으로 분류되어 아직은 의무화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다시 표면화할 수 있는 쟁점으로 남아 있다.

기관투자가의 경영감시도 단순하지는 않다.

워크아웃 기업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부채조정과 출자전환을 통해 사실상 채권기관이 주인역을 맡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며 경영감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는 지배주주와 채권기관에게 모두 부담스런 규준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기업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재벌총수의 전힁과 독단을 방지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벌해체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초안에 대한 재계의 반론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사권 축소는 경영권 위축?

“권고도 단계적 강화아닌가”

아마도 재계는 모범규준 초안이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골격을 손상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지는 않을까.

비록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되었다 해도 우리의 실정에는 중간 과정 없이 전면 적용하기에는 벅차다는 주장이 있었다. 지배주주의 인사권을 제약하고 경영감시를 중복화시키게 되면 경영권이 위축될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재계는 세월을 읽고 정치권의 기상을 유심히 살피는 사회적인 생물체다. 그래서 모범규준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보면 몸을 낮추고 마음을 숨기려 하기 쉽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개혁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계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사외이사의 숫자를 50%이상으로 확대하는 초안에 반발할 것이다. 전문지식을 갖춘 사외이사를 대량으로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잘못하면 사외이사가 대주주의 경영권을 간섭하는 결과를 우려할 것이다.

또한 약간의 제한규정이 있다고는 하나 중요한 회사의 기밀을 사외이사에게 제공하는 것도 끝까지 기피하려 애쓸 것이다.

대주주의 책임에 있어서도 어디까지가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정되고 경영책임은 어디까지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상법상에 "사실상의 이사"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지만 비등기이사가 경영에 미친 영향을 구분해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사회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불만이 있을 것이다. 사외이사 중심의 후보추천이라던가 이사회의 녹취록 공개 등이 마음에 들수는 없는 노릇이다. 녹취록 작성이 의무화되면 이사회가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심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게다가 내부 감사위원회가 시실상 최고경영자를 견제하며 자율과 창의가 제약받을 수 있는 상황이니 전반적인 경영위축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소견이다.

그리고 소액주주권의 확대는 비록 권고사항이지만 앞으로 단계적으로 강화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는 처지에 집중특표제 등의 모범규준화도 시간문제가 아니냐는 뜻이다.

이때문에 모범규준 초안이 나오기까지도 난산이었지만 최종안을 확정하기까지는 좀더 공개적인 여론수렴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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