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재벌 개혁에 문제 있다

글 / 李國老 (이국노 한국프라스틱 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미국의 어느 다국적 기업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사장이 경영을 잘 해서 세전 이익이 28%라는 엄청난 이익을 냈다. 그러나 갑자기 이사회에서 사장을 파면시키고, 사장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 그 이유인즉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았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란다. 120년이나 된 이 기업은 최대주주가 전체 발행주식의 1%미만을 소유하고 있고 연 매출액의 10%를 기술 개발과 시설투자 외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아무리 이익이 있더라도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는 회사이기도 하며 전세계에 5만 명이 넘는 직원과 연 매출액 24조원을 올린다는 훌륭한 회사란다.

우리 나라의 대기업형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비교가 안되며 어느 누가 보아도 우리의 재벌기업이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 단돈 1원을 사용하더라도 사용처와 목적을 기록해야 하며, 항공사에 마일리지 카드를 사용해도 회사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너무 각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에 관한 한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정부가 나서서 재벌기업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업으로 변신시켜 보겠다는 이론일 것이다. 이 일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고착화되어 있는 재벌기업을 움직여 보겠다는 순박한 논리라고 볼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망각하고 있으며 현실을 모르면서 선진국의 좋은 모습만 보아서는 안되며 이 문제를 정부의 힘으로만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 즉 장사꾼의 논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대기업 제품, 대기업 제품보다는 외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이다. 재벌을 욕하면서도 외국에 가서 재벌기업의 간판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박수를 쳐댄다. 우리는 그들의 국제 경쟁력이 우리 나라의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수출하고 다람쥐를 잡아 수출하던 20년전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우리가 자동차와 반도체를 수출하는 경제의 급성장이 재벌이 없었다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1백20년이 넘는 역사와 미국이라는 엄청난 힘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기업과 30년도 안된 한국의 기업이 싸워서 이기려면 생존의 편법이 작용될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대표적인 방법이 그룹이라는 철옹성 집단을 만들어 자금의 집중력과 홍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몸집 불리기로 헤비급을 만들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물론 작은 문제점도 있었지만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재벌의 지배구조가 문제고, 문어발식 경영이 어떻고, R&D투자를 안하고 심지어는 사생활의 문제까지도 꼬집어 댄다. 거기다가 투명성까지 물고 늘어진다.

최근 삼성자동차가 불거져 나오면서 필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필경 주식회사는 유한 책임으로 자신이 투자한 금액에 한하여 이익과 손해를 감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재벌이라는 이유로 2조8천억의 손실을 개인이 보상하겠다고 채권단과 합의를 했다면 그의 도덕성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판단을 잘못했던지.

기업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은 비일비재한 사건으로 누구든 사업을 하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실패의 확률은 높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칭찬하거나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정부가 “재벌을 개혁하겠다”고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문제점을 제시하고 관련된 법을 개정하면서 근원을 차단하면 된다.

재벌의 지배구조는 상속법을 고쳐서 5대에 이르면 자연적으로 지배할 수 없도록 한다면 100년이면 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재벌의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국민의 이해가 얼마나 빠르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두번째로 기업의 투명성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재벌기업은 그룹내에서 상호 출자 또는 지급 보증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그룹이라는 경쟁력 집단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품질, 신용, A/S로 평가되며 소비자에게 우선적으로 신뢰감을 주어야 하는게 현실이다. 외국의 소비자는 기업을 신뢰함에 있어서 내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다. 그저 외형만 보게 되고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신용의 전부인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은 정당한 세금을 내고 정당한 이익을 창출했느냐에 집약되어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세법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과세 표준율을 만들어 매출과 이익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세수 목표를 설정하여 세수 확보를 지시하여 이에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신용보증과 은행대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한다면 기업의 투명성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결국 기업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정부가 바라는 기업의 투명성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인정할 것은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재벌이 기술 개발 또는 시설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시된다.

기업의 기술 개발 정책은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게 기술 개발을 하라고 R&D투자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R&D투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이 있어야 해결되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든지 자신들이 투자 할 곳이나 방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부가 기업이 R&D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건물, 기계, 자동차, 컴퓨터뿐만 아니라 비품까지도 감가상각비로 세금에서 공제한다. 이것은 분명히 기업의 재투자를 돕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이를 필요적 경비 인정이라고 하며 품목에 따라서 감가상각년도가 인정되고 이를 균등하게 나누어 충당계정과목으로 넘어간다.

결국은 국가에 내야 할 세금으로 기업의 시설을 했다는 이야기며 이 돈은 국민이 부담했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일정기간의 감가상각 충당금을 R&D시설에 재투자하지 않으면 정부는 이 돈을 회수해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정부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법으로 만들면 R&D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미 이러한 제도는 독일에서 비슷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다른 짓을 하지 못하고 또한 국민은 정부의 의지와 정당성이 있으므로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공정한 경쟁은 없다”는 상업논리로 보아야 되며, 기업의 경쟁력이 스포츠경기가 아니라는 기본 바탕아래 재벌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에서 재벌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공정한 경쟁이 있을 수 없듯이 국제 경쟁에서도 아직은 중소기업에 불과한 것이 우리 대기업의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기업 하나를 팔면 우리 나라 기업을 다 살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장사에는 운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며 항상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만 설명 할 수도 없다.

재벌의 개혁은 재벌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재벌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재벌 스스로도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재벌 개혁이 재벌해체로 비화, 오도되고 그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좌절하게 한다면 우리 전체에 손해일 뿐 이익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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