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국회가 바로서야 정치가 산다

격돌·파행·좌절의 15대 국회 반성론

글 / 李成春 (이성춘 고려대 석좌교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의회에 불켜져 있으면 안심

런던의 테임스강변에 병풍처럼 거대하게 세워진 하원의사당에 불이 켜져 있으면 영국국민들은 발을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신을 퇴장시키거나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해결하고 만들어낸다는 영국의회는 언제나 영국을 지켜나가는 버팀목이다.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당당히 맞서는 캐피톨 힐(Capitol Hill)의사당에서 토론의 열기가 뿜어나오는 동안 미국국민들은 모두가 안심하고 생업에 열중한다. 미국의사당의 꼭대기층에 있는 넓직한 둥근홀에는 건국 전후 헌법제정회의 독립선언서와 헌법채택, 의사진행 등 건국과정을 그린 벽화가 걸려있다. 또 한쪽 방에는 건국이래 지금까지 오늘의 미국을 일으키고 빛낸 지도자와 위인, 명사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야말로 미국민주주의의 역사와 유공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기념당이요 역사의 광장인 것이다.

동경의 일본국회의사당 옆 길 건너에 헌정기념관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오자끼 기념관으로 출발해오다 1970년대에 들어와 내부를 확장하여 헌정기념관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오자끼 유끼오란 누구인가. 1890년 제국의회가 개원됐을 때부터 무려 25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 50년이상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민의 기본권 수호와 신장, 민주정치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군벌의 정치참여와 권력장악에 분연히 항거하여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오자끼를 「헌정의 신」「민주정치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념관에는 제국의회가 개원된 이래 오늘의 오부치내각에 이르기까지 1백9년 동안 일본정치의 발자취. 특히 의회활동에 관한 모든 기록을 보관하여 일본민주주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토론과 타협없는 여의도 의사당

우리국회는 건국 후 27년간 셋방살이를 해오다 유신 때인 1975년 9월 1일 여의도의사당을 완공하여 여의도시대의 막을 올렸다. 한동안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동양최대의 의사당」이라고 내외에 자랑했지만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 권위와 위엄은 국민의 대외기관으로서 제구실을 충실히하고 특히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의정활동으로 평가되는 것이지 의상당의 규모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태평로 의사당 시절도 그렇고 여의도 의사당개관이래 24년동안 우리 국회는 밀도있는 토론과 타협은 거의 외면한 채 힘으로 밀어부치기, 여야의 격돌, 법과 규칙 안지키기, 당리당략 우선, 날치기 의안처리 등으로 변함없이 고비용·저효율 정치·비생산적 정치의 표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국회는 1년 전부터 헌정기념관을 새로 짓고 문을 열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의사당본관 한쪽에 헌정자료실을 유지해오다 기념관을 부설한 것이다. 이 기념관을 보면 국회가 얼마나 구태 정치와 비생산적인 정치로 일관해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헌정기념관이라면서 자료가 매우 빈약하다. 역대 국회의장 등 일부사진과 약간의 자료가 전부이다. 하기야 각 의안에 대해 여야가 국민의 입장에서 진지한 토론과 검토 끝에 깎고 다듬기보다는 국회가 열렸다하면 여야가 마찰과 충돌, 격돌, 의사방해, 날치기, 변칙처리에다 의사당을 정쟁의 마당으로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불신만 쌓이게 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무비용 고효율의 제헌 국회

1948년 5월 31일 우리국회가 처음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51년 동안 15대 국회가 계속되고 있다. 그 동안 역대국회 중 어느 때 국회가 가장 충실하게 활동했을까? 사람마다 평가를 달리하겠지만 필자는 단연 제1대 국회 제헌국회라고 생각한다. 제헌국회는 임기 2년 동안 참으로 역사에 남을 위대하고 엄청난 과업을 이룩했다.

제헌의원들의 소속정파는 다양했으나 엄밀히 따져보면 여야가 뚜렷이 없었다. 저마다 위국위민, 국리민복을 위하는데 한마음이 되었으며 오늘과 같은 당리당략-파당의 이익이란 감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단군이래 아무런 서구식 민주주의의 체험이 없었던 그들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민주헌법을 비롯하여 국회법. 정부와 법원조직법 등 독립국 건설을 위한 각종 법률 등을 제정한데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의원들은 국민과 마찬가지로 매우 가난했다. 1백98명의 의원 중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10여명도 안되고 거의가 전차와 버스로 등원했고 지방의원들은 국회사무처가 마련한 허술한 숙소·호텔이란 명칭이 붙었으나 오늘의 삼류여관만도 못한데서 묵었다. 그래도 의원들은 누구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헌법과 법안 심의 때 일부의원들이 어느 법 조항에 대해 고집과 억지를 부릴 때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의원이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이래서 되겠는가고 호소하면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쉽게 합의가 이뤄지곤 했었다. 당시 어느 신문에서 일부의원들이 우리가 걸인인가라며 쥐꼬리만한 세비에 대해 푸념을 했다고 보도하자 많은 의원들은 본 회의에서 며칠 굶은들 어떠한가. 선열들은 목숨을 바치며 항일투쟁을 했지 않았는가라고 분개했다. 의원 모구가 독립투사요 애국지사였던 것이다.

제헌국회는 2년 동안 독립한국을 세우는데 필요한 초석과 기둥을 세우는 등 기초공사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헌법과 국회법 등의 성실한 실천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고 임기 1년을 넘기면서 이승만대통령이 점차 독선적으로 국가를 경영하자 내각제 개헌안을 제안하는 등 행정부를 견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아무튼 제헌국회는 역대 국회 중 정쟁, 파쟁이 매우 적었고 무비용 고효율로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기록한 성공적인 국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15대 국회는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이번 국회의 임기는 오는 2천년 5월 29일까지로 앞으로 8개월이나 남았다. 따라서 지금 평가를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하는 관측이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15대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로 사실상 막을 내릴 예정이고 여야는 총선 준비를 이유로 정기국회의 회기를 대폭 축소하여 단축운영으로 보아 15대 국회를 앞당겨 평가해도 무방할 듯 하다.

15대 국회의 신기록 208회 소집

1996년 4월 11일에 실시한 총선으로 문을 연 15대 국회는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당시 집권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은 1년전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를 만회했고, 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슬그머니 복귀, 신당(국민회의)을 창당한 김대중 당총재를 견제하기위해 총선에 총력을 다했으나 여당(신한국당)은 원내과반수미달로 선거에서 졌다.

15대 국회는 새 얼굴이 전체의원 2백99명의 (지역253, 전국구 46명) 45.8%인 1백37명 (지역106, 전국구 31명)이 대거 진출하여 정치 풍토의 쇄신이 기대됐으나 3김의 힘겨루기가 계속됨으로써 새바람은 제대로 꽃피울 수가 없었다. 어수선하게 출발한 15대 국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3년4개월간 마찰과 격돌과 혼란, 파행의 험난한 운영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

15대 국회는 개원이래 의정사상 몇 가지 신기록을 세웠는가하면 여전히 구태 정치를 되풀이해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대표적인 신기록은 역대 국회 가운데 가장 많이 국회를 소집한 것이다. 96년 6월 5일 소집된 179회 임시회의를 시작으로 현재 개회중인 208회 올해 정기국회까지가 그것이다.

지난 국회에서 정기회와 임시회를 합쳐 최다 국회를 연 것은 14대 국회 때의 22회다. 또 6대에는 21회, 11대는19회를 열었고 7·9·12·13대는 각각 16회씩 열었는데 15대에서는 이번 정기 국회까지 무려 30회를 소집한 것이다.

국회 소집을 연도별로 보면 1996년에는 4회에 총회기를 1백80일, 97년 역시 4회에 1백69일, 98년에는 13회에 3백9일. 올해는 100일로 예정된 현재의 정기국회까지 포함하여 10회에 3백3일을 열예정으로 있다. 즉 정기회 4회 4백일, 임시회 26회 5백61일 등 모두 30회의 국회를 열고 9백61일의 회기가 계속된 셈이다.

변칙과 대결 구도도 신기록

1998년에 국회소집회수가 유달리 많은 것은 대통령선거 패배에 따른 감정 그리고 이른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측의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의 불법조달, 즉 세풍(稅風)사건, 국회내 전 안기부 사무실(529호) 운영사건 등으로 인한 여야간의 대치정국 때문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은 세풍사건에 관련된 서상목(徐相穆)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국회를 잇달아 소집하여 방탄 국회의 남발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잇단 국회소집과 관련하여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IMF사태이후 파탄된 경제를 다시 소생시키기 위한 경제개혁과 실업구제 등 민생대책을 명분으로 내세운 반면 야당은 의원 빼가기와 각종 정치적 사건에 대한 수사로 야당을 파괴하려는 기도를 막고 또 반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공방속에 언제나 피곤하고 피해를 본 것은 국민이었던 것이다.

15대 국회의 또 하나의 기록은 DJ정부가 제출한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제동을 걸어 근반년이나 지연된 점이다. 대통령 선거 패배에 대한 감정이 크게 작용한 것인데 그래도 국무총리의 임명동의안인만큼 서둘러 표결에 붙여 찬반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또 의정사상 드물게 야당이 김종필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표결에 여당이 투표를 보이코트하여 폐기된 것도 그렇고 의안이 폐기되자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해임안을 다시제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를두고 여당은 한번폐기된 인사안은 한동안 다시 제출하지 않는 것이 관례임에도 이를 깨고 다시 낸 것은 법 정신에 위배되고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난한 반면 한나라당은 야당이 투표를 기피한 것이므로 표결을 통해 당부(當否)가 매듭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15대 국회는 이상의 신기록외에 우리 의정의 전통적 병폐인 변칙처리·날치기, 힘에 의한 의사방해와 야유, 철저한 당리당략에 의한 상호공격과 이로인한 사사건건의 대립과 대결구도는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넘어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변칙처리의 경우 YS정부시절인 15대 국회 첫 해말인 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 단독으로 말썽 많은 노동법개정안을 기습처리했고, DJ정부에 들어와서는 99년 1월초 개혁관련법을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이 주동이 되어 변칙처리 했으며, 이어 정부조직개정안을 역시 변칙처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민주주의의 대명사처럼 「문민정부」,「국민의 정부」를 내세우면서도 끝내 야당과 절충에 실패하고 날치기통과 시킨 것은 역시 정치력의 부족에서 빚어진 것이라 하겠다.

“모른다” “억울하다” 코미디쇼

15대 국회 출범이래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과 이슈가 제기 될 때마다 국정조사 논란이 있어왔지만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한 것은 4차례다. 그나마 96년 7월 180회 국회가 승인한 15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정성시비에 관한 국정조사는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음에도 운영 방법에 관한 여야의 이견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 97년 2월 YS정권을 뒤흔든 한보사건 국정조사는 YS의 아들 김현철씨도 청문회에 나와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여야가 맞서 결과보고서 마져 채택하지 못했다. DJ정부 출범 후 가동된 「IMF 환란 원인 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 특별위는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부득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원만으로 반쪽 청문회를 진행했으며 국민에게도 별다른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지난 8월 잇달아 열렸던 두 차례의 국회청문회 즉 고급옷 로비사건과 조폐공사파업 유도의혹사건에 관한 청문회와 관련하여 국민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진상을 규명해 적지 않은 의구심들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TV 생중계로 비쳐진 청문회는 엄청난 실망과 개탄과 분노를 낳게 했다. 고급옷 로비사건 청문회는 국회법사 위원회의 위원회 활동으로 진행된 것이고 파업유도의혹사건은 국정조사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었다.

이중 고급옷 로비사건은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코미디쇼였다. 저마다 화려한 개성과 전력을 지닌 전 고위층과 재벌과 고급옷가게 사장 등이 주연으로 나와 저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모른다"고 잡아떼고 떠넘기고, "억울하다"며 울고불고 책상치고… TV로 지켜본 국민들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정경에 아연해하고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유도의혹 청문회도 그대로 복사판이 됐지만 사건을 일으킨 주연배우들이 천연덕스럽게 이처럼 '모른다'고 일관한다면 그러면 누가 사건의 장본인이고 주역이란 말인가. 결국 두사건 청문회는 국민들의 머리만 어지럽히고 말았다.

그래도 몇가지 소득과 성과를 남겼고 국회사상 새기록을 수립한 것은 사실이다.

소득과 성과는 국민들에게 고위층과 재벌 부인, 검찰간부와 국영기업체 사장의 수준이 저런정도인가를 알게해줬다는 것과 모두가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그래도 고급옷 로비와 파업유도의 윤곽은 짐작케해주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새로운 진상규명에는 실패했으나 두사건 관련 증인들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출석시켜 「대질」아닌 「합동신문」을 벌인 것은 청문회 운영의 진일보라 하겠다.

부끄러운 신기록… 철새들의 이동

15대 국회가 세운 부끄러운 기록의 하나는 많은 의원들이 철새처럼 이당 저당으로 당적을 옮긴 것이다. 철새들의 이동은 15대 선거직후와 DJ정부출범직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15대 총선서 신한국당의 의석이 원내과반수 미달로 여소야대의 형국이 되자 YS측은 무소속 등을 상대로 10여명이상의 의원을 영입했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당파괴라고 반발하여 원(院)구성이 지연되기도 했다. 2년 뒤 똑같은 영입작업이 재연되었다. DJ는 15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국회는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의석을 합쳐도 과반수미달로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었다. 두집권 여당은 한나라당의원들을 대상으로 영입의 손을 뻗쳐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국민회의에는 한나라당의원 18명과 국민신당과의 합당으로 24명의 의원이 늘어났고 자민련에도 한나라당의원들이 옮겨오는 등 30여명이 당적을 바꾼 것이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야당파괴공작이라며 크게 반발하여 국회는 상당기간 공전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때의 당적이동은 집권당의 설득효과도 있었지만 여러 의원들은 정치적 장래와 자신의 사업에 대한 지원 등을 기대하고 먼저 적극적 의욕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이건 선거때 국민으로부터 공인을 받고 당선된 당적을 개인적 이해와 편의에 따라 멋대로 바꾼 것은 유권자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5대 국회는 재선거, 보궐선거를 여러차례 실시한 기록을 세웠다. 의원들의 당선무효판결로 충남예산 등 6개구에서 재선거를, 의원들의 사망·피선거권 상실 및 공직선거출마를 위한 의원직 사직 등으로 15개구에서 보궐선거를 치뤘다. 그렇다면 무려 30여차례나 국회를 열었던 15대 국회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올해 정기국회를 제외하고 15대 국회시작이래 9월9일까지 국회는 30회의 정기회, 임시회의 기간중 8백61일을 개회했으며 이 기간 중 법안 8백80건, 예산 결산안 12건, 기타(동의안·건의안·결의안 등) 3백72건 등 모두 1천2백64건을 처리했다. 하루에 약 1.5건이라는 미미한 처리실적을 낸 것이다. 물론 처리된 안건은 정부가 제출한 의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해 의원입법 활동이 여전히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한가지 국민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여야대치로 인한 국회공전과 파행이 빈발한 가운데도 의원들의 발의안건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고 더욱이 국민회의의 김원길(金元吉) 한나라당의 황규선(黃圭宣) 의원, 자민련 조영재(趙永載) 의원 등을 포함 여야 40명이상의 의원들이 각기 30건이상 최고 96건의 입법안을 발의 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정치불신 국회 불신속에서도 입법부를 내실로 지켜가는 일꾼이라 하겠다. 이들과 함께 여론조사 등에 의한 충실한 국정자료를 수집해서 국정감사 때마다 성실하게 활동한 일부 의원들 역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의원 소환제 입법화 하자"

문제는 이 같은 부류의 의원들은 소수이며 대다수는 고위직과 당직, 공천보장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원들은 어떠한 처우를 받고 있는가. 봉급 명세표를 보면 매월 수당(본봉개념) 2백2십5만1천원, 관리업무수당(본봉의 10%) 22만5천1백원에 연 4회에 기말수당으로 본봉의 70%를, 연2회에 전근수당으로 본봉의 백%를 그리고 설날과 추석 때는 명절 휴가비로 본봉의 50% 등 1년간 세비(연봉)로 4천3백72만9천원을 받는다. 여기에다 4급보좌관 1명, 5·6·7·9급 비서 4명 등 모두 5명의 비서진을 두고 있고 25%이상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배정 받는다. 기타 통신과 교통비 등은 별도로 특혜를 받는다. 이같은 처우는 선진국 의회의 수준으로 세계 10위안에 꼽힌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같이 많은 대우를 받는 의원들이 과연 그에 합당한 의정활동을 했는가에는 긴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98년 중반기에 여야의 대치정국으로 국회가 문을 열어 놓고서도 공전을 거듭하여 경제회생 및 민생지원 의안의 처리가 마냥 늦어지자 국민들의 비난은 봇물터지듯하고 본노는 폭발직전에까지 이르렀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여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여야의원 전원을 상대로 국민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일부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소환제(Recall制)를 법제화하자고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유럽의 일부국가에서 실시됐던 의원소환제는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태만할 경우 일정한 수의 유권자들의 서명·요청으로 지역구에 소환하여 의원직을 박탈하는 지극히 극단적인 재제방법인 것이다. 15대 국회가 충실한 의정활동으로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 커녕 불신의 대상이 되고 또 걱정과 불안감을 주는 원천처럼 위상이 추락한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실, 파행 없는 16대를 소망한다"

15대 국회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정기국회가 9월 10일 개회됐지만 각당이 신당창당과 당개혁 등 선거 준비로 1백일의 회기는 크게 단축될 전망이며 의원들은 내년 총선때의 득표를 의식하여 「점수얻기」,「시선끌기」식의 겉치례 의정활동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은 오랫동안 이견을 보이던 특별검사제법안을 빠른 시일안에 국회서 통과시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급옷 로비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에 의한 전면수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검찰수사와 국회의 청문회에도 불구하고 안개속에 싸여 있는 진실을 규명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고위직 임명에 앞서 국회에서의 인사 청문회문제가 타결되지 않아 또다시 연기된 것은 매우 아쉽다.

아무튼 국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온갖 시행착오를 빚어 국민에게 원성과 걱정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15대 국회에 들어와 계속되는 정쟁(政爭)으로 위상이 더욱 추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여야는 신당창당과 당내 개혁 등 선거채비도 그렇지만 15대 국회를 전체적으로 「불실국회」,「파행국회」라는 이미지를 벗고 장차 민주정치와 의회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이는 내년 총선 후 탄생할 16대 국회를 국회답게 운영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첫째, 여야는 국민을 두려워 해야한다. 국회를 당리당략에 의한 힘겨루기와 정치싸움의 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에 의한 국리민복을 위한 한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국민에게 실망과 걱정을 주는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다음 헌법과 국회법 등을 철저히 준수하는 국회운영을 도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변칙처리·날치기처리는 하지말아야하며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셋째, 청문회, 윤리강령, 국정조사 등 선진국 못지 않은 각종 국회제도를 활용하는데 여야는 적극 협조해야한다. 끝으로 몇 년째 겉돌고 있는 정치개혁을 반드시 협의를 통해 매듭지어야한다. 16대 총선에서의 승리를 의식하여 선거구제 흥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돈안들고 공정한 선거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 풍토의 조성을 위해 선거법외에 정당법·정치자금법·국회법 등도 반드시 함께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국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인들이 민의의 전당인 입법부의 권위와 위상을 훼손시키고 추락시킨 만큼 이제는 권위와 위상을 복원시켜 국민에게 잘못을 속죄하고 보답할 의무가 있다. 국회가 제구실을 하게하는 데는 국정 운영과 정치의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DJ정부와 집권당이 보다 큰 아량과 양보로 수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야는 정치권과 국회의 실태에 대해 국민이 언제까지 무작정 침묵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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