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마음만 먹으면 일하기 좋은 직업

비판과 채찍 속의 시간과의 싸움

글 / 金民錫 (김민석 국민회의 의원)

국회의원이 수행해야 하는 4가지 임무는 입법을 비롯하여 예산·결산심의, 국정 감사 및 국민여론의 대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껏 국회의 기능이 위축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입법부를 통법부화 해 온 정권의 의회경시에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국회가 하는 일 없이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왜 국회가 할 일은 다 못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은 인식도 필요할 것이다.

국회가 명실상부한 입법부가 되자면 입법제안권을 국회가 제대로 행사할 만큼 충분한 스탭진을 갖춰야 하고, 깊이 있는 예산 심의를 위해서는 예산처의 국회 내 설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깊이 있는 감사를 위해서는 감사원 기능의 국회내 설치도 필요하다는 소견이다.

실제 외국의 경우 국회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전제 조건의 충족없이 국회의 무력만을 지탄하는 것은 제도적 측면에서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현실을 전제할 때 오늘의 국정 속에 국회의원의 중요 역할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주로 국정 감사 등을 통한 국정의 감시와 비리 감시 그리고 의정 발언을 통한 민심의 대변과 국민 불만의 대리해소 기능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정책 개발을 통한 국정 참여와 기여 기능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의원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국정 운영에 참여했던 역할이 결코 적었다고 볼 수는 없다. 우선 입법 과정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시중에서는 입법 과정이 소홀했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비록 행정부가 제안한 법안이라 해도 어떤 의원이 관심을 기울이면 최종 입법 과정에서 문제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었다.

또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화하는 데는 국회의원의 기능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최종 단계는 행정부의 과제로 넘어가지만 문제가 정치적 의미가 있다거나 민생과제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제격이다.

이 경우 국회의원은 즉각 쟁점화하여 언론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의정 활동을 돌아보면 아쉽고 허망한 구석이 적지 않다.

첫 등원 한 달 가량이 지나서는 한마디로 국회의원이란 천하에 가장 놀기 좋은 직업이라는 느낌이었다.

또한 공부하고 일한다면 한없이 일하고 공부하기도 좋은 직업이라고 느꼈다. 출·퇴근을 체크하는 이도 없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지, 대접 잘해 주지, 놀기 좋고 행세하기에 아쉬울 게 없다.

반면에 마음만 먹으면 최신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뿐더러 정부든 민간이든 누구라도 만날 수 있으니 부족할 것이 없다. 게다가 소리를 치자면 거의 무제한 발언의 자유가 있으니 기가 막히게 일하기 좋은 자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마도 공부하자면 박사 과정보다 훌륭한 조건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며칠 재미있게 놀다가 국회의원이 내 힘으로 된 것도 아니고 유권자들께서 지켜보고 있는데, 한량이야 될 수 있겠느냐면서 열심히 일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리했음을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의정 활동의 보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민과 고충도 물론 적지 않았다. 문제가 크건 적건 누가 제기했건, 적극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때의 보람은 말할 수 없다. 나름대로 가능성도 많이 발견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직은 정치적으로 미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정치현실 속에서 떠밀려 가는 부문에 대해서는 역부족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시중의 여론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의정 활동에만 전념해야 한다던가 당리당략의 노예가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주문형 비판이 많았다. 또한 유권자를 무시하느냐,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냐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의정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권자들과 떨어져서 의정 활동에만 매달리는 국회의원을 다시 뽑아주겠느냐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국회와 지구당과 후원회를 부지런히 다녀야 하고 끊임없이 학습과 민원인과의 인터뷰, 다양한 행사 참여 그리고 의정 활동과 관련된 숱한 약속 등으로 개인 시간이라곤 전혀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지역구에서 얼굴마저 안 보인다는 불평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때마다 속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할는지 답답한 심정이다.

또한 당리당략에 대해서도 쉽게 비판하지만 막상 정치 현장에서는 숫자가 중요하고 현실에서는 조직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싶은 것이다. 소속당의 입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치 때문에 말 못한다기보다 실제로는 자당의 입장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돼도 상대방 입장에 더욱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현실적으로 당론에 의견을 몰아주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와 타협의 룰과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정치 문화와 정치 구조의 문제로 다뤄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결국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 깨끗한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유권자의 목소리에 대한 소견은 백번 옳다는 생각이다.

다만 정치 활동에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훌륭한 의정 활동을 위해서는 정책 연구와 개발도 해야 하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며 여기에는 상당한 인건비도 소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대중 정치는 의정 활동을 잘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이것이 재정적 후원으로 연결되는 것이 원리라고 믿는다. 또한 재정적 후원이 늘게 되면 용기를 얻어 더 많은 활동 의욕을 갖고 더 많은 지지가 불어나는 메카니즘으로 선순환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의욕에도 불구하고 후원금을 마련하는데 힘이 달리고 이 때문에 고민해야 함은 숨길 수 없는 실정이다.

이제 4년 임기 중, 마지막 정기국회를 맞아 각오를 다시 할 시점이다. 임기를 정리한다는 입장에서 올 국정감사에는 더욱 열정을 쏟아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여당이 되고 나서 처음 경험한 지난 해 경험을 살려, 올해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명백한 문제가 있는 사항에 관해서는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다. 엄중한 지적과 질책도 물론이려니와 국정 감사다운 감사의 자세는 절대로 흐트릴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금융 산업과 기업의 구조 조정이 일단락되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문에 집중하여 국정 감사의 방향을 잡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초선 의원으로 처음 국회에 등원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임기말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게 자신을 독려하느라 애를 썼다. 그러나 밖에서 볼 때 과연 제몫을 다했다고 평가될런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다.

오직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똑같은 심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거듭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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