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공직자여 분노하라

연재①

생‘욕’을 먹는 공직자

글 / 崔同燮 (최동섭 대한 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전 건설부장관)

부정부패 척결의 主敵(주적)이 되어 온 공직자

요즘 공직자에 대한 의식개혁이니 부패취약분야에 대한 개혁이니 하여 공직자에 대한 사정의 칼날이 세워지고 있다.

경제회복은 부패척결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반 부패 종합대책」이 또 발표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건국수립 이후 역대 정권마다 경쟁적으로 국민에 대한 정권의 도덕성과 정체성, 국정의 쇄신 차원에서 항상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삼아 외쳐온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집권층 스스로가 이에 대한 의지가 시들해지거나 자기모순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고, 법이나 행정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해온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오면서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국정의 쇄신은 이루어져왔고, 공직기강도 바로 잡혀 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공직자는 항상 「부패와의 전쟁」에서 주적이요 표적이 되다보니 사회적인 「욕」과 비난을 늘 받았고 또 그렇게 인정되어서 얼굴과 어깨를 제대로 펴 보지도 못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열심히 일해온 공직자들에게는 고달프고 안타깝고 억울하기가 그지없는 경우가 많았다.

귀여운 자식을 거느린 가장으로 가족보기가 민망하고 가까운 이웃보기도 민망할 정도이며 사회로부터 지탄과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으로 괴로움을 받는 심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공직자들도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싶어 푸른 꿈을 안고 학교를 나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생활비보다 밑도는 박봉생활에도 가족을 달래가며 열심히 일하고 봉사해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너무도 야속하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공직자도 열린 세상을 말해보자

지금은 열린 세상이다. 그들에게도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기회, 펴놓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요구와 하소연도 들어주어져야 한다.

그들도 가장이고 어려운 일에 선봉에 서고 전문인이고 경영인이고 봉사자다. 누구보다 이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직업인이다.

그들에 대한 편견도 고쳐가야 할 것 같다. 그들도 자존심이 있고 긍지가 있고 뚜렷한 윤리관이 있다. 그들이 그늘진 곳에서 일을 하였기에 또 앞장 서 주었기에 오늘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 이 만큼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직자에 대한 편견이나 지나친 매도, 생떼 같은 「욕」도 한번쯤 다시 고쳐보아야 한다.

풀이 죽어 가는 그들에게 매도 들어야 하지만 용기도 주고 격려도 하고 일할 여건과 환경도 만들어주어 나라를 세워나가는 기둥으로 우리 가족으로 역할을 하도록 살펴주어야 한다.

그들 편에 서서 현장에 들어가 억울한 꼴을 당하는 것도 한번 살펴보자.

사실 공직자들이 「욕」을 먹고있는 부패와 비리들은 따지고 보면 공직자들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지만 각계 각 분야의 정치인, 주민, 기업인, 사회지도층 인사와 일반시민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모든 국민의식이 함께 고쳐져야 공직자들도 부정부패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생「욕」을 먹고 있는 현장-여의도 의사당에서

공직자가 일하다보면 생「욕」을 먹을 때가 많다. 국회의사당에 가 보자.

여의도에서는 아무리 두리번거려 보아도 그들을 도와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이 없다.

서류보따리가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의사당 경비원의 눈초리 속에 굽실거리며 컴컴한 뒷문으로 걸어 가면서 기가 죽는다.

반갑게 맞아줄 사람 없고, 앉을 의자도 없이 청사 복도에 그대로 주저앉아 떼를 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예상질문 답변서」를 만들어 밑줄을치며 대비한다.

다른 나라 의회정치도 이런 식인가 한숨짓는다. 「카메라」후레쉬를 받으며 오로지 애국자이신 의원님의 호된 질문에 고분고분 답변하면서 변명자료 만들기에 바쁘다.

이때처럼 존경해 왔던 자기들 상사가 허약하고 초라하게 보일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이야 말해 뭣하랴...

옳게 정당하게 처리된 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시비를 당한다. 공직자들의 권위나 자존심은 이미 땅에 묻어두고 있다.

질문하신 의원은 벌써 퇴장했는데 열심히 답변서를 만들어 답변하노라면 맥이 빠지고 허탈해진다. 답변도 안 했는데 질문내용이 옳은 것처럼 벌써 언론에 보도된다.

「국회를 경시한다」는 여러 번의 호통을 받으면서 비굴한 웃음 속에 왕래하다보면 어느새 연말 예산 국회는 닥쳐와 밤 12시까지 진행되고 공직자의 종아리는 멍이 들었다.

가슴에도 허탈한 멍이 든다. 공직자들은 이렇게도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인가?

쓸쓸히 밤늦게 여의도를 떠나 새벽에 가족이 잠든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개회 중에 올바른 지적을 해주고 대안을 제시해준 의원에게는 한없이 감사한다. 그리고 시정해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지방화시대 의회청사에서 마저

지방화시대가 열리면서 지방자치단체 공직자들도 욕을 먹으며 어렵게 일을 한다고 한다.

도의원님, 시의원님, 군의원님들이 국회의원님들이 하시는 행태와 모습을 본 따서 아니 한 술 더 떠서 호되게 닥달을 친다.

지역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설전을 벌리고 따지고 질책을 한다.

간혹 제도와 행정을 몰라 가르치면서 매를 맞는다. 중대하거나 별스러운 회기도 아닌데 연장하면서 단체장이하 간부들의 발을 묶어놓아 또 하나의 다른 민원이 청사에서 기다리고 있다. 진짜 민원은 뒤로 처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국회 국정 감사반까지 닥치는 날에는 사태는 더욱 난감해진다.

높으신 분들 모시기에 식은땀을 흘린다. 지역연고에 대한 정책질의에 대한 선심성 답변준비, 변변치도 못한 음식, 빠듯한 예산 등으로 응대 접대하기는 난처하기 말할 수 없다.

여야로 갈라진 의원님들을 혹시나 의전상 소홀하게 되는 날이면 날벼락에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공직자 성토장이 된 시장·군수실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모시면서 시장·군수실은 민원인의 성토장이 되었다.

주민을 잘 모시겠다고 시장·군수실을 맨 아래층으로 옮겼더니 오히려 번잡해졌다.

세종로 중앙청사 뒷문에는 항상 어김없이 철모를 쓴 「전경」들이 줄서있고 진정과 「데모민원」의 목소리가 있다. 과천청사 풀밭에도 「플래카드」를 들고 올라온 데모민원인으로 연일 소란스럽다. 민주공개행정 업무도 문을 닫고 해야할 판이니 안타깝다.

한편 땀흘려 입안한 공직자는 시장·군수실에 불려가 「데모」민원인들이 퍼붓는 욕을 대신받고 식은땀을 흘리며 해명해야 한다.

꾸지람도 들어야 한다. 의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일수록 낭패 당하고 「욕」을 먹는 공직 사회가 아닌가 싶다.

한편 널찍한 일층, 별도로 마련된 「민원실」에는 용모단정한 여직원이 배치된 민원실, 「전산시스템」도 고루 갖춘 아늑한 민원실이 있다.

「민원」은 번개처럼 미소 속에 친절하게 처리된다. 옆에는 금붕어 어항도, 꽃도, 읽을 책도, 어린이 태우는 달구지도 장난감도 마련되어 있다.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민원인들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너희들이 당연히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해주는 일인데 뭣이 고마워?" 하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져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지! 친절히 모셔야지! 노인어른 부추기며 모시고 나가 허리 굽혀 배웅하면서 겨우 보람을 찾는다고 안도한다.

공직자여!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해 보자

이제 자기 자신과 동료와 함께 거듭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바른 길을 걸으며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국민들이 공직자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인내하고 성실하게 본분을 지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지탄한다고 섭섭하게만 여기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국민의 편으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공직자가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필자 최동섭 회장을 소개합니다 **

요즘 공직자들의 심경이나 표정이 어떤지 궁금하다. 밝을 수가 없고 유쾌할 것이 없을 것이다. 부패추방대책을 봐도 표적이 공무원이다. 사회적 감시와 내부고발의 대상이며 퇴직후는 취업마저 제한 받게 되어있다.

국민을 위해 희생과 봉사로 나랏일을 맡는다는 공직자들이 왜 이토록 초라해 졌을까. 일단은 그들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데는 이론이 없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언정 적지 않은 공무원이 매년 사법처리를 받고 있지만 공직세계가 깨끗해 졌다는 평가는 별로 없다.

반면에 공직자에 대한 처우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박봉이기에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은 들을 수 없다.

국민은 공직자가 먼저 깨끗해 지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공익의 수호자와 공익에의 봉사자로서 공무원상이 확립되기를 기대한다.

이런점에서 경제풍월은 공직자들의 고뇌를 헤아리며 그를을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장기연제물을 기획했다.

큰 제목인 「공직자여 분노하라」는 필자인 최동섭 회장이 선정했으며 연재 내용도 팔자의 작품임을 밝혀둔다.

필자 최 회장은 경제풍월이 알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형 공직자상을 보여준 분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 행정과(13회)에 합격한 후 오랫동안 총무처와 국무총리실 조정관을 거쳐 건설부장관을 지낸 직업공무원으로서 최고의 성공인에 속한다.

그동안 공직활동을 통해 최 회장의 성실·근면·책임성은 충분히 소문이 났다. 퇴임후에도 정부위원회 등에서 후진들을 돕는일에 열성이다. 그의 업무추진 방식은 말단 실무에서부터 정책판단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직접 조사하고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최 회장이 「공직자여 분노하라」는 제목으로 후진들을 꾸짖고 격려하는 글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공무원들에게는 복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서울대 법과대학졸업 ▲고등고시 행정과(13회) 합격 ▲국무총리실 기획조정관 ▲심사분석 평가 조정관 ▲총무처 민원실장 ▲총무처 소청심사 위원장 ▲건설부장관 ▲한국토지공사 이사장 ▲행정쇄신위원회 위원 ▲한국산업개발 연구원 상임 고문(현)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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