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서울 지하철 이대로 안된다

총제적 부실, 경영 개선 막연

"전문경영인 출신 경영마인드 도입 기대"

글 / 李斗石 (편집위원·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총 6조원에 이르는 빚더미, 끝이 보이지 않는 만성적자 운영, 해마다 되풀이되는 파업, 늘어나는 안전사고와 연, 발착·개통된 지 4반세기가 지난 서울 지하철이 총체적 부실 을 안고 달리고 있다. 시내버스와 함께 대중교통수단의 한 축으로 ‘ 가장 빠르고 정확한 교통수단’ 인 지하철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더미에다 해마다 누적되는 경영적자에 허덕이면서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연례행사처럼 거듭되고 있는 지하철 노사분규로 구조조정과 경영개선이 어려운데다 낡은 차량과 무리한 운행, 정비 소홀로 인한 대형 안전사고의 위험 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믿고 탈수 없다’ 는 지하철에 대한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다.

부실의 주범은 25년간 누적된 부채

서울지하철이 안고 있는 총체적 부실의 주범은 천문학적 숫자로 누적된 빚더미다. 지하철 1호선이 개통( 서울역- 청량리 역 구간. 길이 7.8km. 74년 8월 15일 ) 된지 지난달로 만 25년. 그 동안 서울 지하철은 7개 노선( 223.7 km)에 하루 440만 명이 이용하는 서민의 발로 자리 잡았지만 쌓인 부채는 5조 8311억 원( 98년 말 현재)에 이르며 금년 말(99년) 에는 6조원을 웃돌 것으로 서울시 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지하철 빚더미는 올해 서울시 예산( 일반회계 5조 8766억 원) 과 맞먹거나 오히려 더 많은 것이다.

한 술 더 떠 지하철 빚더미가 서울시 부채를 가중시키면서 시 재정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예컨대 98년 말 현재 서울시 총 부채는 5조 9955억 원이며 99년 말에는 6조 4767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부채의 89% 가 지하철 빚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90년대 서울시 부채가 해마다 늘어나게 된 이유가 지하철 빚 때문이며 지하철 부채 상환과 적자운영 보전을 위해 매년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꾸리는 일반회계에서 4천억 원에서 5천억 지원하고 있어 서울시 살림이 쪼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건설도, 운영도 빚 얻어 빚 갚는 빚잔치

지하철 빚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원인은 건설도, 운영도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빚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다. 우선 지하철 건설비의 경우 예산도 확보하지 않은 채 막연히 중앙정부의 지원을 바라며 서둘러 착공했으나 국고보조가 턱없이 적어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였다는 것이다. 운영적자도 마찬가지다.

경영마인드가 없는 관료나 군 출신들이 지하철 사장을 맡았으니 만성 적자는 불을 보듯 뻔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제 2기 지하철 ( 5, 6, 7, 8호선) 건설공사의 경우 94년 건설사업비는 2조 8백 44억 원으로 이 가운데 정부 지원액은 11.8%인 2천 8백 44억 원에 불과하며 국내외에서 약 1조원 가량의 빚을 얻어 모자라는 공사비를 충당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원 규모는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25%선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며 이는 50%∼70% 선에 이르는 외국 대도시 지하철 건설비 지원율과 비교할 때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의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지하철 공사의 경우 81년 9월 공사설립 전 까지는 지하철 건설을 맡고있던 서울시 지하철 건설 본부에서 운영해 왔으나 전문 경영의 필요성이 지적되면서 서울시가 출자하는 공사형태로 출범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시대여서 전문경영인이 아닌 군 장성출신이 사장으로 발탁된 후 계속 서울시와 중앙부처 퇴직 고위 관료가 사장으로 채워져 효율적인 경영은 아예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앞서 지적했듯이 막대한 건설비용이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스란히 공사의 부채로 쌓여온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87년 8월 노조가 출범하면서 경영진의 운신 폭이 더욱 줄어들어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로 손꼽히고 있다.

하루 빚 10억원씩 늘어나는 운영 적자

이런 부실 경영으로 지하철 공사의 연간 운영적자 3천 4백 50억 원에 총 부채 3조 4천 9백 23억 원의 부실 덩어리로 하루 10억 원의 빚이 쌓이고 있다. 그런데도 지하철 공사 직원의 월 근무일수는 18일에 불과할 정도로 경영개선의 노력은 미진하다고 한다. 예컨대 경영 효율성을 나타내는 km 당 운영인력을 보면 지하철 공사는 85명으로 5-9호선 경영주체인 도시철도공사의 55명 보다 많고 런던 지하철 46명, 도쿄지하철 66명보다 많게는 배 가까운 인력이 투입돼 인건비 부담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과중한 인건비 부담을 부추기는 운영인력은 전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역무원 4조 3교대 근무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평일의 경우 오전반(오전 8시-오후 5시) 오후반(낮 12시 -오후 8시) 야근반(오후 7시-다음날 오전 9시), 비번으로 나눠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출퇴근 시간의 배에 달하는 인력이 중복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하철 공사가 5-8호선을 맡고 있는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3조 2교대 방식의 근무형태만 채택해도 당장 연간 1백 40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지만 노조의 반대로 이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인력구성도 직능별. 부서별 정원제로 되어있어 인력운용의 융통성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또 전체 예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36.1%로 매우 높아 일본 공영지하철의 29.9%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같이 6조원에 이르는 빚더미 속에 만성운영적자인데도 경영개선의 자구노력이 발목이 잡힌 실정이니 낡은 전동차를 교체하는 등 시설개선 투자를 위한 재원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낡은 전동차를 제대로 정비도 하지 않은 체 무리한 운행을 강행하고 있으며 언제 대형 안전 사고가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다.

빚 투성이속 만성적자 , 낡은 차량, 정비소홀, 무리한 운행- 바로 이것이 서울 지하철의 총체적 부실을 입증하는 요인들이다. 특히 안전운행이 지하철 빚더미 경영의 뒷전에 밀리고 있어 두렵다. 예를 들어 74년에 도입된 노후차량 16편성이 평균 수명 20년을 넘었는데도 아직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길이 200m나 되는 전동차 10량을 형식적인 육안검사를 한 뒤 운행하고 있을 정도로 정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예비차량이 준비돼 있지 않아 사고 조짐이 보여도 무리하게 운영할 수 밖에 없으며 입출고 시간에 맞추기 위해 사소한 고장은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지하철 건설 공사도 부실 투성이

낡은 차량, 전기통신 시설 뿐 만 아니라 지하철 구조물도 부실 투성이어서 대형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지하철 2기 ( 5, 6, 7, 8호선)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3기 지하철 (9, 10, 11, 12호선)공사도 2천1년부터 예정대로 시공할 준비를 서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건설된 1 ,2기 지하철이 부실 투성이 임은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시공될 3기 지하철도 부실공사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94년 서울 성수대교 붕괴 참사 후 지하철 구조물등 안전 시설에 대한 서울시 자체감사를 비롯한 감사원과 국회국정감사 결과는 지하철 공사의 부실정도가 위험 수준임을 지적해 충격을 주었다. 놀라게 했다.

특히 성수대교 참사 수습을 위해 발탁된 최병열(崔秉烈)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지하철 공사장의 안전 문제와 관련, 한마디로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만큼 부실 투성이라고 털어놓아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지하철 공사장의 안전점검을 오스트리아 기술진에 의뢰한 결과 지하철 5호선 한강지하터널공사장과 안양천구간, 영등포 구청역 등 3곳에서 만도 무려 2백 쪽 분량에 이르는 지적사항이 있었다고 시장 스스로 고백했으니 그 충격파가 오죽했겠는가.

지하철의 생명은 안전에 있다. 이를 위해 지하철 공사 설계에서부터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건설회사는 규정대로 자재를 쓰고 설계대로 시공해야 한다. 그러나 공사 입찰 단계서부터 나눠먹기식 담합(談合)이 횡행하고 덤핑입찰에 헐값 하청이 관행처럼 이뤄지는데서 부실공사는 시작된다. 게다가 ‘빨리 빨리 병’ 탓에 무리한 공기책정으로 공사를 서둘어야 하니 부실공사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 술 더 떠 공사를 발주하고 입찰을 집행하며 시공을 감리 감독하는 당국은 딴전을 부리고 있다. 업자들의 담합을 모르는 체 눈감아 주고 무리한 공기로 부실공사가 우려되는데도 완공목표에만 매달려 허둥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부채 줄여 경영 개선 신뢰 회복해야

지하철은 버스와 함께 대중교통의 축이며 시민의 발이다. 현재 30%선에 머물고 있는 지하철의 수송 분담율을 2천년 대에는 70%선으로 끌어올릴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의 총체적 부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런 청사진은 그림의 떡 일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부채를 줄이고 만성적자를 면하기 위한 경영개선과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지하철 빚을 줄이기 위해 부채의 3분의 1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지하철은 서울시민 뿐만 아니라 수도권 주민은 물론 전체 서울 유동인구가 이용하는 전국민의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부채가 누적된 이유는 무엇보다 지하철 건설에 국고지원이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은 경제논리보다 북한이 지하철을 먼저 건설했다는 정치논리로 서둘러 건설하면서도 건설비를 서울시가 전담했으며 2기 지하철 건설비도 국고에서 25%만 지원 받았으며 그나마 98년부터 40%로 상향되었다. 이 같은 국고 지원율은 외국의 대도시 지하철 건설 국고지원비와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영국 수도 런던의 경우 건설비의 75% , 미국 뉴욕은 60%, 프랑스 파리는 50%를 중앙정부가 지원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부채 청산 못지 않게 구조조정으로 만성경영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서울시 지하철 공사가 역무원 4조 3교대 근무체제를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3조 2교대 방식의 근무체제로 만 바꾸어도 당장 연간 1백 40억원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고건(高建) 2기 민선시장도 구조조정과 지하철 요금 인상을 통한 경영개선의 구체적 방안(경제풍월 창간호 인터뷰 참조)을 제시하고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바 있다. 그런 경영개선의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전문경영인 출신인 김정국(金正國) 전 현대중공업 사장을 지하철 공사 사장으로 발탁했다. 따라서 경영 마인드의 도입을 통한 경영개선으로 적자폭을 줄여 나갈 것으로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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