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검찰, 칼날인가 시녀인가?

글 / 李斗石 편집위원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검찰의 칼날은 매섭다. 누구나 무서워하는 국가 형벌권을 집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이 공정해야 할 그 칼날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른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다. 특히 정치권력의 외풍에는 맥을 못 쓰며 그래서 ‘권력의 시녀’란 지탄을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약자에게는 날카롭고 강자에게는 무딘 두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야누스적 속성은 ‘현대주가 조작 사건’과 ‘3.30 재 보선’ 선거사범의 검찰수사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현 정부가 역대정권과는 달리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몰아 붙이자 약세를 눈치챈 검찰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는 식으로 가차없이 칼날을 휘두르면서도 집권여당이 관련된 선거사범 수사에서는 눈치, 소극, 왜곡, 축소의 의혹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구로 을과 경기 시흥 안양지역구의 국회의원 및 시장을 뽑은 ‘3. 30 재 보선’ 수사에 대한 그런 의혹은 정치권력의 외풍과 무관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국내 최대 재벌인 현대그룹의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 달, 증권가 ‘마이더스’ 의 손으로 불리던 세종 증권의 김형진 회장을 전격 구속한 검찰은 또 다시 9월 들어 ‘바이 코리아’ 의 돌풍을 일으킨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사법처리 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서울지검 특수 1부엔 현대사건 외에도 금호그룹의 박성용 명예회장 등 오너 4형제와 거평그룹 나승렬 회장 등이 주식 불법거래 혐의로 고발돼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그래서 李모 부장 검사는 ‘금융권의 저승사자’로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 3.30 재 보선’에 대한 검찰수사는 공소시효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오리무중이다. 특히 집권당인 국민회의의 부정사례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지만 수사 착수 6개월이 지나도록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지 못한 채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선거사범 수사의 가장 큰 쟁점은 이른바 ‘특위 사건’으로 국민회의가 선거운동기간 중 각종 특위위원 위촉이라는 편법을 이용해 2만 명의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도 선거 직후 자체조사 결과를 토대로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고 이 부분을 검찰에 수사의뢰 했으며 대통령도 초기에 신속하게 혐의를 밝히도록 검찰에 특별지시를 내리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 지고 말았다.

‘ 3. 30 선거사범’ 수사 결과는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명선거 풍토조성을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부정을 용납해서는 안되며 국민이 바라고 있는 정치발전과 정치개혁을 위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이사건 수사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잴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명예를 걸고 신속하고 엄격한 사법처리를 통해 항간에 나도는 정치권력의 외풍에 의한 왜곡 축소 수사의 의혹을 불식해 주도록 기대했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수사진행에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의 소리가 없지 않다.

흔히 검찰과 정치권력의 역학관계를 말할 때 우리는 일본검찰이 다룬 정치헌금스캔들 사건을 들먹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90년대 초 자민당 정권의 아성을 무너뜨린 사가와 규빈(佐川急便) 사건이다.

일본 검찰의 양심인 동경지검 특수부가 정계와 재계의 뿌리깊은 먹이사슬을 끊기 위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보여준 수사 의지는 자못 교훈적이다.

운수회사 사가와 규빈의 정치헌금스캔들에 대한 수사에 나선 특수부 검사들은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금권 부패 정치의 代父인 가네마루 신(金丸 信) 전 자민당 부총재를 93년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에 정치권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은 가네마루 전 부총재가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집권당인 자민당의 입김에 눌려 벌금 20만엔에 약식기소(92년 12월) 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나 가네마루를 구속 기소해 재판정에 세우라는 고발장 3만여 건을 동경지검에 접수시키는 가 하면 일부 시민들은 검찰청사에 계란 세례를 퍼붓는 등 눈치. 소극 수사에 항의했다고 한다. 이에 자극된 젊은 검사들이 탈세혐의를 추적, 가네마루의 손에 끝내 쇠고랑을 채웠다는 것이다. 이는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를 몰아내기 위한 ‘공권력과 시민파워 유대’의 보기 드문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검찰은 어떤가. 특히 50년만의 정권교체로 들어선 새 정부 들어 민주와 자율 그리고 도덕성을 간판으로 내건 ‘국민의 정권’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세간의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부정적인 평가의 잣대로 앞서 지적한 ‘3 .30 재 보선’ 선거사범 수사 말고도 ‘고관부인 옷로비 사건’ 이나 ‘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를 들 수 있다. 특히 IMF 환란 와중에 일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 고위층의 부인들이 서울 강남의 고급의상실을 들락거리면서 구속된 재벌의 부인에게 ‘밍크코트 값 대납’을 미끼로 석방로비를 벌였다 해서 ‘정권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른 ‘옷 로비사건’의 수사는 결국 국회 청문회에서도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채 특별검사의 수사를 기다리면서 축소, 왜곡의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과 姜會復 조폐공사 사장이 짜고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이 사건도 서울지검 특별수사팀이 대검공안부를 압수 수색하는 등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고 1 주일간의 청문회를 거쳤지만 “공안부장검사의 개인적인 파업유도가 아닌 검찰의 조직적인 개입문제”라는 세간의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같은 의혹은 검찰수사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수뇌부의 석연치 않은 처신이 검찰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바로 장본인이다. YS 정권에 이어 DJ 정부에서도 검찰총장으로 연명한 탁월한 처세술이 돋보이고 부인이 ‘옷 로비사건’의 주역이라는 구설수에 오른 데다가 그가 발탁한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법무장관자리에서 낙마하는 등 파란만장한 그의 행적은 검찰이 정치권력의 외풍에 흔들린다는 지탄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믿는다.

검찰권의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 스스로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보다는 검사들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올해 들어서자 마자 검찰조직을 뒤흔들어 놓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검찰총수와 수뇌부는 권력만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심지어는 권력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

부장검사 출신인 후배 변호사로부터 술자리 향연과 전별금을 받았다고 해서 강제로 옷을 벗은 심재륜 고검장이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등 수뇌부를 향해 던진 폭탄선언을 되새겨 들어야 검찰의 칼날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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