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자동차 수출 1,000만대 돌파

선진국 기분과 고뇌

국산차, 사랑과 미움이 교차한다

자가용 꿈 성취의 보람

우리 한국인은 국산 자가용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꿈만 같았던 마이홈과 마이카를 다 이룩했으니 소원을 풀었다.

국산 자동차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보람을 안겨 주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인이 다같이 자동차를 타지만 순수 자국산 승용차를 탈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한국인은 분명 국산 엔진이 작동하는 한국산 모델을 타고 다닌다.

국산차에 대한 가격불신이나 성능불신이 없지 않지만 외제에 비해서도 별로 손색이 없다. 시동 꺼지는 일없고 스피드가 모자라는 경우도 없다.

자동차 국산화 이후 연관산업 발전 효과도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다. 자동차 사업장에서의 파업이 고통스러웠었지만 지금은 IMF 경제체제를 탈출하는데 있어 자동차산업 호황이 선도역을 맡고 있다.

자동차 1천만대는 벌써 지난 97년에 돌파했었다. 그리고 올 상반기에는 수출 1천만대를 돌파했다. 수출 천만대 실적이 얼마큼 의미가 있을까. 세계적으로 9번째의 기록이라니 자랑스럽다.

그러니깐 한국산 자동차를 한국인만이 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타고 다닌다는 뜻이다.

외제차에 대한 선망과 기피증을 이길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외제차 수입이 개방되고 일본차를 규제하던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폐지해도 별 탈이 없다. 구태여 배기량이 많고 값이 비싼 고급외제차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시절이다.

국산차가 처음으로 남미와 아프리카로 수출된 시기는 70년대 중반이었다. 현대가 우여곡절 끝에 첫 국산모델로 개발한 포니(PONY)가 남미의 에콰도르에 처녀수출된 것이 효시다.

당시 이들 지역을 여행하며 포니를 만났을때는 눈물이 찔금했다. 조랑말처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너무나 가상스러웠었다.

그로부터 북미와 유럽 각국으로 한국산 자동차가 대량 수출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동차협회 통계에 의하면 현대자동차의 엑셀승용차가 1백 83만대로 가장 많이 수출된 모델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엑센트·프라이드·아반테·르망 등의 순위로 수출실적을 쌓아 올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애용하는 모델이 가장 많이 수출되었다. 세계인이나 우리나 자동차를 보는 안목이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천만대 시절의 자부심

지난 97년 보급대수가 천만대를 넘어섰을 때 우리는 선진국 기분을 느꼈다. 그뒤 금방 IMF 체제로 절망에 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동차 천만대 시대의 자부심은 버릴 수 없었다.

국민 4.5명에 한대씩의 자동차 보급은 세계적인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1903년 고종황제의 4기통 캐딜락이었다. 그로부터 94년만에 천만대가 넘는 자동차 대중화를 실현한 것이다.

기록으로 비교하면 세계 14번째 천만대라니 역시 자랑할 만한 성취다. 1975년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포니도 세계 16번째의 고유모델이 자랑이었다.

그동안 자동차 국산화 시책이 몇차례나 고비를 맞았었지만 60년대초부터 국산자동차에 대한 국민적 집념과 성원이 이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기억도 생생한 새나라자동차가 설립된 62년도의 1인당 GNP는 고작 87달러였다. 당시 전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3천여대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절에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경제성도 없었다고 볼수 있다. 이무렵 현대자동차 정세영(鄭世永)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연산 5만대 규모가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산 5만대 생산단계에만 이르면 자동차다운 국산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에대해 기자들은 무슨수로 5만대를 생산할 수 있겠느냐고 빈정거린 투로 따졌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68년 10만대 85년 1백만대 그리고 97년 천만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으니 자동차산업이야말로 한국인의 성취욕을 가장 잘 대변했다고 믿어진다.

오늘의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속에 찾이하는 비중은 상위급이다. 비록 구조조정의 진통속에 허덕이고 있지만 생산과 수출면에서 일부 선진국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내보급 천만대이후 2천1년이면 1천 4백만대, 2천10년쯤이면 2천만대를 넘어서리라는 예측이다. 이 과정을 통해 연관산업에 대한 전후방 효과를 감안하면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선도하리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러니 국내보급과 수출 천만대 돌파기록을 선진국에 올라선 기분으로 느껴 잘못될 것이 있을까.

자동차 산업과 국민경제

솔직히 자동차산업은 애국심을 먹고 자랐다.

전폭적인 정책지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외제차 수입을 철저히 막아놓고 육성했던 산업이다.

그래서 국산화 초기의 저성능 국산차는 애국심에 호소하여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수출실적이 많은 대기업 총수에게만 수출에 대한 보상적 성격으로 중고 외제차를 구입할 수 있게 허용했었다. 이때 일부에서는 형편없는 시제품은 시판하고 그나마 다소 좋은 재질로 만든 차는 수출하기냐고 비판했었다.

비단 자동차산업의 경우만이 아니겠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쓸만한 물자는 무엇이건 수출하고 나머지는 국내 소비한다는 원칙아닌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애국심을 바탕으로 성장한 자동차산업이 우리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성장하는 것 만큼 국민경제에 공헌한 실적을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우선 자동차산업은 부가가치 생산면에서 높은 비중을 찾이해 왔다. 지난 95년 기준 연간 13조원의 부가가치를 생산, 전제조업의 8.2%를 차지 했었다.

고용면에서는 직간접 관련 종사자를 합치면 총 1백 30만명으로 집계된다. 뿐만아니라 자동차 국산화가 산업구조 고도화를 이끌어 왔던 성과도 있었다. 각종 부품 2만개 이상으로 조립생산되는 것이 자동차산업이기에 종합적인 기계산업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자동차 국산화는 기계공업을 한단계 끌어올린 역활을 다 했다고 볼수 있다.

철강산업을 비롯하여 기계·전자·전기·운수·보험·금융·유통 등 자동차산업의 연관분야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또한 수출을 통한 무역수지개선 효과도 어느산업보다 컸었다. 지난 96년 자동차 수출은 1백 20억달러였고, 수입은 8억 5천만달러였다. 한해에 1백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니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최대의 수출산업이다.

정부도 자동차산업에 지원혜택을 베푼 만큼 엄청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 관련 조세수입이 96년 13조 5천억원으로 총 조세의 무려 16.5%에 달했다.

이렇게 보면 자동차산업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며 국가재정을 튼튼히 뒷받침 하는 대표산업으로 추앙해서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은 달리는 국력이라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과잉기대 다음의 좌절

자동차산업이 우리의 성공지표임에 틀림없지만 요즘들어 믿음이 흔들린다.

구조조정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쉽지 않은 것이 구조조정이다. 뿐만아니라 세계적 명차를 만들겠다던 삼성자동차의 투자실패와 대우자동차의 불투명한 운명이 심각하다.

정신없이 질주해 오던 성장과정에 탈이 났을까. 아니면 우리의 기대가 과잉이었을까. 어쨌던 우리 나라 자동차산업이 좌절의 고비를 겪고 있는 것이 지금이다.

대체로 자동차산업은 한나라 산업경쟁력의 척도가 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경쟁력은 취약하다.

부채비율은 높고 자기자본 비율은 낮고 기술력과 생산성도 선진국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비교된다. 게다가 시장개방이후 수입자동차의 판촉공세에 쫓기는 형세도 면치 못한다. 가격과 서비스 경쟁력이 조금씩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비해 국내시장 환경이 과거처럼 국산차를 특별히 보호해 줄 상황은 못 된다. 시장에서 이기지 못하면 생존과 번영이 불가능해진 시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아자동차가 죽을 고비를 겪었고 쌍용자동차는 대우로 팔려 갔었지만 다시한번 어디론가 팔려 가야할 신세다. 대우재벌이 무너진 마당에 대우자동차의 장래가 보장될 까닭이 없다.

김우중회장이 회심의 역작으로 자동차부문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다짐하지만 좀더 두고 봐야만 한다.

우려할만한 상황으로는 대우자동차의 경영권이 미국의 GM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은점이다. 과거에도 대우와 GM은 제휴관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경영권 이양을 전제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강의 GM이 대우자동차의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GM은 아시아시장 의 공략을 위해 대우를 인수할 생각이겠지만 현대자동차가 무사할런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독자적인 개척력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한 현대자동차에게 유리한 상황은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민이 합심하여 경제성장의 선도산업으로 육성해온 자동차산업의 지위가 다시한번 흔들리지 않을까.

아울러 막대한 투자로 설비를 갖춰놓은 삼성자동차는 거의 쓸모없이 폐기처리 되지 않을런지 걱정이다. 왜 한국 자동차산업이 이같은 좌절을 겪어야만 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혼잡과 무질서의 과비용

자동차가 기대 이상의 소망을 가져다 주었지만 반면에 과소비 비용이 문제다.

생산과 수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유와 이용과정이 고비용·저효율이기 때문이다. 운행비용은 비싸고 세금은 터무니 없이 높고 교통혼잡은 갈수록 심하고 사고는 빈발하니 자동차를 가진 보람이 짜증으로 바뀌는 지경이다.

대체로 교통혼잡비용이 연간 15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계산이 자주 발표된다. 도로 사정이 주원인이겠지만 시간이나 기름값 등을 생각하면 너무 애매한 비용을 물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탓만은 아니지만 물류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도 우리가 꼽힌다. 총 GNP의 15%가 넘는 물류비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결코 과장일 수는 없다.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교통수요 증가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자동차 보급이 늘어난 후 교통사고가 많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와 물적피해가 엄청나고 간접비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적어도 한해 사고 피해액이 4조원을 넘는다는 계산이다. 보험금과 행정비용도 나가지만 신체장애자가 생겨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동차 운행에 따른 환경피해와 공해피해는 도대체 얼마일까. 전문가들도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서울시의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80%가 자동차 매연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휘발유차 보다도 경유를 사용하는 차량의 매연이 더욱 문제라는 것도 사실이다.

왜 자동차가 가져다 주는 편익보다 정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피해가 많게 느껴지게 되었는가.

자동차 문화의 부재라는 말로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질서가 말이 아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나 난폭해지고 욕설을 배우고 사고를 낼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하소연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동차 세금 징수에만 정신이 빠져 있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단계에서부터 보유하고 운행하는 과정에 붙는 세금을 합치면 무려 14종을 헤아린다. 중앙정부가 국세를 징수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세를 붙이는 것이 자동차 세제이다.

자동차가 낡아 재산가치가 떨어져도 세금은 줄지 않는다. 배기량만을 기준으로 삼으니까 재산세는 끝까지 다 받는 것이 정부다.

원유값이 내려갈때도 기름값이 올랐지만 지금은 원유값 인상분과 교통세 인상분을 합쳐 자동차 운행자가 물게 된다. 중산층 보호를 위해 세제를 개편할때도 승용차와 휘발유에 대해서는 특별소비세를 그대로 붙여 놓았다.

그러니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경제성장 선도산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수산업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자동차는 생활도구이며 경제활동의 필수 수단이다. 정부도 이같은 사실은 충분히 알면서도 세금 징수하기가 편리하다는 발상만으로 지금도 세금만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부도나고 삼성자동차가 부실화되고 대우자동차가 팔려 간다고 해도 정부는 별 걱정이 없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도 자동차 내수는 늘고 하반기에도 계속 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천만대를 훨씬 넘어선 자동차 선진국에 진입한 단계에서 후진국제도를 그래도 끌고 갈수는 없지 않는가. 국산차에 대한 미움을 사랑으로 다시 바꿔 놓을 수 있게 관련 제도도 고치고 자동차 문화도 확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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