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의약분업 내년 7월 시행되나

시민단체 중재로 법 개정안 상정

쟁점 남았지만 불만 소화 해

글 / 李漢城(이한성) 전문위원

분쟁 36년만의 합의 도출

의약분업은 과연 실시될까? 의사, 약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까지 비쳐왔던 의약분업이 시민단체의 중재로 합의안이 도출돼 이번 정기국회에 법개정 안이 상정되었다. 공식적인 일정에 따르면 이 약사법개정안이 정기국회에 통과되면 6개월간 대국민 홍보를 위한 유보기간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의약분업 분쟁은 36년만에 해결을 맞게 된 것이다. 의·약사간에 상당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다 정치적인 요인마저 작용돼 합의안이 나오기까지는 숱한 진통이 뒤따랐다.

당초 의약분업이 거론된 배경이 국민보건향상이나 의약계의 개혁이라는 긍정적 차원보다는 의·약사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분쟁차원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제도자체가 시행되리라고는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더구나 이제도가 단순한 의·약사간 문제라고 치부, 정작 수혜당사자인 국민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사안이였기에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설전과 논쟁으로 일관돼 왔던 것이다.

다행히 시민단체의 중재로 양단체간 합의안이 마련된 것은 국민건강을 지키는 전문 파수꾼으로서의 의·약단체가 서로 상당부분 양보한 결실이라고 평가된다. 또 이 제도의 필요성을 더욱 가속화 시킨 것은 현정부가 대선 당시 백대 공약 가운데 의약분업을 포함, 적극적인 추진작업을 진행해 온데다 국민을 대표하는 시민·소비자 단체가 공감을 갖고 합세해온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아직 많은 변수를 지니고 있다. 의·약단체간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분업대상 의약품의 분류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고 합의안이 도출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서로 꺼림칙한 사안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두 단체간 합의된 사항이라도 상당수의 회원들간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분분해 당장 시행된다 하더라도 호응도가 의문이다.

수용태세도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약국에서 준비해야 할 사항이 많다. 처방약을 모두 구비하려면 경영규모도 커져야 하고 처방전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인원규모도 늘어나야 한다.

국민에 대한 홍보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까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자유롭게 선택 해 왔던 관행을 깨야 하기 때문에 불편과 불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강건너 불보듯 의약분업에 대한 인식이 둔감했던 국민들이 쉽게 호응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적된 갈등 요인이 복병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의약분업은 영원히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 법상정을 보는 시민단체, 의·약사단체, 정치권의 공통적인 견해다.

이미 구미선진국에서는 이 제도를, 시행해 온지 오래이고 21세기를 앞둔 우리로서도 국민의료개혁을 위해 필수적인 숙명과제이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단순한 밥 그릇 싸움으로 치부 되서는 안된다. 의사·약사가 보건전문인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해 보다 질높은 의료를 국민들에게 베풀기 위한 바람직한 제도라는 차원에서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또 의약분업은 고질적인 의약계의 산적된 문제를 개혁하는 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양질의 의료시혜를 베풀기 위해서는 의료자원의 적절한 활용이 절실하다. 의사나 약사의 자질향상은 필수적이다. 특히 의약품 유통구조의 난맥상으로 인한 의약품의 질이나 가격에 대한 불신감은 국민 보건에 저해요인일 뿐 아니라 국내 의약산업 발전에 걸림돌이었다. 또 약국의 구멍가게식 경영개선도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의·약사간 동반관계 확립도 시급하다. 의약분업은 이러한 부조리나 과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은 한마디로 “진료는 의사가 약은 약사가”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료는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담당하고 투약은 약학전문인인 약사가 담당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의료를 베푸는 의사·약사는 물론 수혜자인 환자도 반드시 이 사항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부 예외조항이 있다. 입원·응급·중환자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활동이 불가능하거나 어렵기 때문에 해당의료기관에서 진료와 투약이 허용된다. 반대로 의약분업에 적용되지 않는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때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이도 자유롭게 약국을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병 의원의 외래환자들은 지금까지는 진료와 투약을 한곳에서 해결했으나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진료받은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아 일반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해야 한다.

의·약사 의료관행도 바꿔야

환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제도로 비춰 질 수 있다. 특히 환자의 선택에 따라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자유롭게 이용해 온 우리의 의료관행을 한순간에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불평과 불만이 뒤따를 것이 예상된다. 물론 의사나 약사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관은 특정한 환자외의 모든 외래환자에게는 진료만 해야하고 일체의 투약권이 박탈된다. 약국도 지금까지는 환자로부터 증상을 듣고 눈으로 본 후 매약이나 조제투약을 해왔으나 일반판매가 허용된 의약품외에는 일체의 조제투약이 금지된다.

우리의 의·약 관계 법령이 제정된 것은 1953년. 의료법이나 약사법이 제정 될 당시만 해도 법령에는 의약분업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의사나 약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니라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 의료시설도 매우 취약한 실정이었다.

서울, 부산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의료기관이 절대수가 부족한 상태여서 의사의 처방전을 받기도 어려웠거니와 처방전을 받는다 해도 이를 수용할 만한 약국도 부족했고 처방전에 따라 투약을 할 능력도 없었다. 전후 회복기인데다 시골에는 병원은 커녕 약국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다.

약방이나 약포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규약대 출신이 아닌 약제사나 동네이장 등을 통해 간단한 의약품취급권을 허용해주는 임시방편책이 약방이나 약포인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취약한 상황에서 의사에게 투약권을, 약사에게 자유투약권을 잠정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의 의료관행이었다.

그러나 의약분업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라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된 것은 77년 의료보험이 실시되면서 부터다. 당시 의사·약사 양단체장은 의료보험환자부터 의약분업을 실시하자는데 합의했다가 상호이해 관계가 엇갈려 결국 무산되는 바람에 유야무야 됐다. 그후부터 양단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한치의 양보없는 공방을 계속 해오다 의약분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시민단체,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력과 중재에 힘있어 결실단계에 이른 것이다.

전문·일반 의약품 분류 문제

양단체간에 합의가 도출되기까지는 첨예한 대립과 진통이 뒤따랐다. 분업을 실시하자는 데는 공감을 하면서도 막상 세부적인 시행방안을 논의하다 보면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안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영역이나 사활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에 대한 헤게모니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는 문제다. 의약품 분류 작업과정에서도 처방전에 의해서만 투약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과 약국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됐다. 의사는 전문의약품을 많이 지정해야 자신들의 처방 영역을 넓힐 수 있고 약사는 일반의약품이 많아야 자유투약 범위가 많아진다.

처방전 발행방법에서도 양단체간 팽팽한 대립을 보였다. 의사측은 특정회사의 상품명으로 표기하자는 쪽이고 약사측은 성분 함량 제형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이었다. 상품명으로 표기하면 약국으로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회사의 제품을 모두 구비해야 한다.

종합병원 외래환자에 대한 처방전 발행의무화 여부는 가장 진통을 겪었던 사안. 의사회는 병원외래환자는 병원내 약국에서 투약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약사회는 원외처방전 발행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는 병원내에 있는 약국을 모두 폐쇄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야 한다. 수입의 60%를 외래 환자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측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사항이지만 합의에서 의사측이 양보했다. 주사제의 경우도 입원, 응급, 중환자를 제외하고는 외래환자 처방은 삼가해 달라는 약사들의 주장에 가능한 수용하겠다는 선에서 결론이 났다.

시행 초기의 혼란은 각오해야

지금까지의 의료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의약분업이 의사·약사는 물론 환자에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호견제를 통해 의·약인의 고유영역을 구분짓고 각자의 전문지식을 배양,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를 배푼다는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제도다.

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국민건강의 위해나 비용낭비, 환자의 종합병원 선호에 따른 시간·경제적 낭비, 의약품 유통구조의 난맥에 따른 국민의 불신과 제약산업의 침체 등의 제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라는 차원에서 의약분업에 대한 시각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약업계에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타사 제품을 배껴내 덤핑하는 제약업체는 자연도태 될 것이고, 로비 위주의 판매를 일삼아 온 도매업체들은 설 땅을 잃게 된다. 또 약국도 거듭 태어나야 한다. 처방전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구멍가게식 경영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특히 처방료와 투약료 추가 부담으로 인한 국민의료재정의 증대다. 정부는 의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여 이 비용 부담을 보전하려는 장기적인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초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시행착오와 불평불만을 해소하지 않으면 이 제도는 정착 될 수가 없다는 것이 의·약계는 물론 시민단체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사진-캡션 :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의사처방전을 받아야 약국에서 약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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