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자주개발 없이 안정없다

“고유가시대 대비책 서둘러야”

글 / 羅柄扇 (라병선 한국 석유공사 사장)

제3의 석유파동이 우려된다

단군이래 최대위기라던 IMF 외환위기를 국민과 정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슬기롭게 극복하고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에 서있다. 그러나 최근 유가의 급상승은 우리경제의 재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배럴당 40달러의 유가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제3의 석유파동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70년대에 무방비 상태에서 2차례의 석유파동을 경험했다.

‘73년에 발생한 1차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 무역적자는 백40% 가량 증가했으며 년 17.9%의 고성장을 기록하던 경제 성장률은 1.7%선으로 떨어졌다’ 79년 발생한 제2차 석유파동시 우리나라 경제는 마이너스 4.6%의 경제성장, 국내유가 3백37%인상, 무역적자 2.5배 증가, 도매물가 38.9% 상승 등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보유한 해외유전이 전무하여 필요한 석유를 구하기 위해 정부고위층이 산유국을 찾아다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제2차 석유파동 당시 우리나라의 원유도입규모는 약 21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0배 이상 증가한 상태이다. 또 다시 석유파동이 발생한다면 그만큼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90년대 우리는 경제성장에 취해 세계 제1위의 석유소비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달갑지 않은 세계 6위의 석유 대소비국이 되었다. 이제 석유가 없는 우리경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석유의 중요성은 관련되는 모든 경제지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으면서 매년 총수입액의 18%에 달하는 2백20억달러를 석유수입에 투입해야 하고 우리가 쓰는 전체 에너지의 6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석유수입액이 국내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5%로 미국과 일본에 비해 5∼6배이상 크다.

최근의 유가상승으로 금년에 우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외화는 약 37억달러에 이르고 소비자 물가는 약 0.5%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어 정부의 물가상승 2%억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우리경제는 석유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그만큼 석유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현재 전체도입원유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지만 만일 중동지역 정세 불안이나 석유수급 문제로 제3의 석유파동이 발생한다면 우리경제는 IMF상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안정적 석유확보는 자주개발

전량의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하는 방법은 직접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석유개발사업을 통한 석유확보는 경제성 면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석유개발 비용은 기술발전으로 매년 하락하여 우리나라 석유수입 가격의 50% 수준이다. 다시 말해 직접 석유개발사업에 참여하여 석유 수입물량을 충당했다면 매년 약 1백억달러에 가까운 외화를 절감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해외석유개발사업에 참여하였으나 이를 통하여 공급하는 원유는 전체소비의 1.8%(4만배럴/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석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이 전체소비의 15%(70만배럴/일)정도를 석유개발사업 투자에 의해 공급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해외석유개발사업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이같이 해외석유개발사업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석유개발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사업참여기업의 능력 그리고 석유개발사업 지원방식과 규모에서 찾을 수 있다.

유가가 높으면 이구동성으로 석유개발의 필요성을 주장하다 유가가 낮아지면 많은 돈을 들여 리스크가 큰 개발사업을 할 필요가 있는냐는 식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석유는 식량과 같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따라서 석유개발사업은 국제유가의 변동에 관계없이 장기적인 계획하에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전략산업이며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정보,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장기투자 산업이다. 석유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석유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석유개발산업은 종합상사, 운송, 섬유 등 석유 개발분야의 기술이나 전문성이 없는 기업들의 단순 지분참여(Farm-in)형식으로 추진되었다. 기술인력 면에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해외석유개발사업 참여 기업들의 한계를 잘 파악할 수 있다. 25개 참여 민간기업 중 40%가 석유개발기술 인력을 단 한명도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2개 회사가 7∼8명의 전문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다.

IMF로 해외개발사업 좌초

초기 검토단계에서부터 기술력싸움이라 할 수 있는 석유개발사업을 기술도 경험도 없이 해나간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그나마 '97년말 이후 외환위기와 원유값이 배럴당 10달러의 약세가 계속되자 25개의 해외석유개발사업 참여기업 중 9개 기업이 사업을 포기한 상태이며 전체 55개 석유개발사업 중 15개 사업을 철수했거나 철수를 추진 중에 있어 한국의 석유개발산업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석유개발사업은 광구획득에서부터 사업종료까지 25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투자사업으로 단기 실적과 성과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민간부문이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럽의 비산유 소비국도 초기에는 국영 석유사를 중심으로 석유개발부문을 포함한 석유산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석유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석유자원의 확보라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국가이익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초기부터 정부의 대규모 자금지원, 석유자산의 현물출자, 국내시장 독점권 부여 등의 지원을 통하여 국영석유회사를 세계 10위권 석유회사로 성장시킨 예를 BP, Total, ENI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석유개발 산업을 경쟁력 있는 분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술, 정보, 경험면에서 능력을 갖춘 한국석유공사를 중심으로 한 집중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내 유일의 석유개발전문 회사로서 1백23명의 전문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20여년간 쌓아온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국내대륙붕 6-1광구에서 순수한 국내기술로 경제성 있는 가스전을 발견하여 생산준비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운영권자로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1조 2천억 입방피트의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석유공사의 석유개발 성공 실적과 운영능력은 우리의 석유개발기술 수준을 세계 석유업계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석유개발 산업을 주도해 나갈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음을 증명한다.

투자재원 확보가 가장 큰애로

그러나 공사는 적극적인 해외석유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부의 사업별 융자지원 제도하에서는 사업 성공시에도 원리금을 우선 상환해야하기 때문에 자체 투자재원 축적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현재 세계 석유광구 시장에는 유망 광구가 많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기회를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공사 자체적으로 수익을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성공 사업에 대한 사업비를 정부가 융자가 아닌 출자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생산 준비중인 리비아, 베트남사업의 경우 정부 출자가 이루어지면 사업 수익으로 참여사업 추진은 물론 신규유망광구에 참여할 수 있는 투자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충분한 투자재원이 확보된다면 정부에 대한 재정의존 없이 능동적인 자세로 석유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석유개발분야 지원 규모에서도 우리나라 석유개발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석유개발부문지원규모는 에너지특별회계예산 (약 2조원) 중 고작 5%이하인 연간 1천억원 수준이다.

세계 주요 석유회사들의 연간 탐사·생산부문 투자비만도 회사별로 10~30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총 7조원의 석특회계 예산 중 약 16%인 1조 1천억원을 석유개발사업에 지원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석유개발사 부문 지원 규모가 얼마나 적은지 짐작할 수 있다.

석유수급 안정과 석유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세운 해외개발 도입원유 10%확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약 4조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현재 5% 수준의 에특의 석유개발 지원자금은 최소한 20%이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업을 추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해외석유개발사업 지원자금 조성도 검토되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 및 세원 지원 절실

최근 석유산업계는 대변화의 물결속에 놓여져 있다. 기업합병으로 Exxon-Mobil, BP Amoco등 초대형 석유회사의 등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산교환 및 매매가 쉴새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속에서 국민경제에 매우 중요한 석유개발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정부의 재정지원 외에도 세제 지원제도의 정비, 한국석유공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부문에 대한 기술지원, 에특이외 자금 확보방안 강구등 풀어 나가야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정부, 석유공사, 관련기업들이 계속 연구하고 방안을 도출해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석유개발산업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필요할 때 우리나라 기업이 보유한 유전에서 원유를 직접 도입함으로써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제3의 석유파동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석유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석유 개발사업을 통한 석유확보는 국가경제, 국민생활, 그리고 안보를 위해서 쉼없이 추진해야할 과제이지만 우리가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확보 노력만큼 필요한 것이 절약과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지혜와 노력이다.

국민은 에너지 소비절약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만큼 우리의 경쟁력도 커진다는 인식을 가지고 합심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사진캡션 : 국내 석유개발 현황을 설명하는 필자.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