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호]

화장품 경제

글 / 兪相玉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사장)

광복 55년만의 독립법 제정

세상이 평화롭고 소득이 늘어가면 여성은 화장하는 즐거움을 더하게 된다.

화장의 역사는 오래지만 우리나라에서 화장품이 공업화된 시기는 1916년에 OB 맥주그룹의 창업자인 박승직 선생이 내직(內職)으로 박가분(朴家粉)을 생산하여 상업화하였는데, 납작한 골패짝에 포장한 각설탕모양의 분이 박물장사들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해방후 과도기를 지나 60년에 1억원에 이르던 화장품 생산은 10년뒤인 70년에는 44억원, 80년에 1천5백억원으로 급성장하였고, 90년에 1조원, 97년에 2조7천억원, 98년에는 IMF 영향으로 2조4천억원으로 감소하였다. 화장품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서 이젠 1%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수입화장품의 비중도 점차 늘어서 대략 4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화장품산업의 비중이 확대되고 외제 화장품과의 경쟁이 날로 격화되는 현실에서 화장품 관련법이 약사법에 포함되어 있어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법률적 장애가 많았다. 독자적인 화장품법의 필요성에 따라 정부와 국회에 독립법 제정을 청원하였다. 그동안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3년 8개월만인 지난 8월 12일 임시 국회에서 오양순 의원이 발의한 화장품법이 통과되어 화장품 산업은 광복 55년만에 비로소 독립법을 갖게 되었다.

2천년 7월부터 시행되는 화장품법의 내용은 화장품의 정의가 넓어졌으며, 그동안 규제 대상이었던 기능성 화장품 즉, 자외선 차단 화장품, 미백 화장품, 주름방지 화장품이 허용된다. 화장품의 안전성과 광고에 대한 부분이 강화되며 화장품심의위원회가 설치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엄격한 품질 관리를 받게 되었다.

유효성분을 확실하게 하여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화장품의 생산과 광고 선전을 함으로서 수입 화장품과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세계 10위권 중산국의 지위

세계적으로 화장품 생산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고 다음은 일본이다. 근래 일본 경제가 침체되어 경제 성장이 거의 멈춘 상태이며, 일본의 화장품 시장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다음이고 이탈리아, 스위스의 뒤를 한국이 잇고 있어서 한국의 화장품 생산은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중산국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은 프랑스제를 선호한다. 상품의 품질과 더불어 브랜드이미지가 상품의 선호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산 화장품의 질이 미제나 일제, 프랑스제에 비하여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디자인 면에서 덜 세련된 부분을 인정하더라도 더 큰 이유는 선입견에 있다. 지난 반세기 국내 화장품 산업이 발전하면서 국산 화장품의 기술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근래 뉴욕 메이블린이란 색조 화장품이 상륙하여 엄청난 광고와 전문점에 진열장을 무료로 지원하는 판촉 정책을 폈지만 소비자는 냉담하다. 미제이지만 국산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소비자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화장품값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수입제품이 국산에 비하여 훨씬 고가이다. 상품의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기준은 그 상품의 품질을 비교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보다 화장품 산업이 앞섰다고 생각하는 외제는 외제니까 비싼 것이 당연하고, 국산은 국산이니까 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이 같거나 더 나으면 국산이 싸야 할 이유는 없는 데도, 독창적 R&D의 산물로 개발한 국산의 고가 화장품은 수입품의 그것보다 훨씬 그 가치를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외환 금융 위기를 맞아 지난 한해동안 2만5천 개의 기업이 부도로 문을 닫았다고 발표되었다. 이 와중에 장업계도 예외일 수 없었다. 몇 개 업체가 부도를 내거나 워크 아웃 처리가 되었다. 평소에 재무구조가 취약하거나 관련 기업이 연쇄적으로 당하기도 하였다. 전년 대비 화장품 생산이 12% 줄었으니, 그간 매년 12%성장을 감안하면 24%가 감소한 셈이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구의 노력이 있었다. 인원의 감축, 급여 동결, 상여금 삭감, 광고비 등 경비감축, 신규투자의 중지 등은 거의 모든 회사가 취한 조치이며 일부 큰 업체에서는 계열회사의 처분, 프로스포츠팀의 해체 또는 매각, 각종 출연금의 감축 등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며 이 난국을 탈피하고 있는 상태이다. 다만 금년 들어 경기가 급격한 회복단계에 들어섰고 화장품이 경기와 민감한 소비재이므로 장업계 전체의 시장성은 밝아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98년 56%나 위축되었던 외제화장품의 거래가 백화점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으며 무명의 신규업자가 증가추세에 있다. 현재 화장품 제조회사는 1백30여개에 이르고 수입업자는 5백여개가 넘는 과열상태이지만 앞으로 신규업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명품주의 정도경영의 성과

한 세기를 보내는 한국경제는 IMF를 맞이하면서 하나는 재벌개혁 작업이 고 다른편으론 벤처기업의 지원으로 실업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동안 선진국이 1백∼2백년 걸려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30년만에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재벌이 IMF 사태를 맞게 된 핵심 요인중의 하나로 거론되면서 개혁의 첫째 대상으로 등장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현실에서 재벌의 폐단은 개혁하여 마땅하지만 그동안 재벌이 한국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재벌개혁은 그 폐단을 시정하되, 한국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비전이 제시되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과거의 공적이 묻혀버리고 기업인의 의욕을 상실케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필자는 30년의 경영 수업 끝에 정년의 나이에 창업하여 주위의 도움과 경영의 슬기로 짧은 기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가운데 IMF를 맞았지만 큰 어려움없이 난국을 벗어나고 있다. 우선 기업의 방향이 정도경영이었고 차근차근 회사를 키워나가는 방침이었다. 늦게 시작한 후발 기업이 선발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차별화 경영이다. 남이 하는대로 따라가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차별화 전략은 첫째, 명품주의로 제품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R&D 투자와 아웃소싱을 과감히 하였다. 그동안 수백종의 화장품을 명품으로 개발하였고, 그중에서 93년에 한국능률협회의 제1회 히트상을 받은 머드팩이 명품이랄 수 있겠고 금년에 히트상을 받은 엔시아 화이트닝제품은 미백화장품으로 그 원료가 뽕나무 가지에서 추출한 벌베린으로 미국특허를 받은 것이다.

둘째로, 고객만족경영이다. 97년과 98년 연속하여 고객만족상을 받았다. 능률협회는 매년 전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과학적인 조사를 통하여 고객만족상을 시상하고 있다. 소비자가 만족스럽게 상품을 쓰고 또한 응분의 서비스를 베풀어야 한다. 혹 피부에 맞지 않는 경우, 즉각 교환 또는 배상조치하여 고객을 소중히 하는 경영 방침이 수행되고 있다.

셋째는 마케팅의 차별화이다. 브랜드 광고보다 기업 이미지 광고에 더 투자하였다. 톱 클래스의 모델 기용과 직접판매제도(Direct Sale System)을 새롭게 개발하여 수만명의 주부사원들이 고객만족을 위하여 신바람나게 일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연간 매출 3천억원으로 20세기를 마감하며 다가오는 밀레니엄에 세계제일의 화장품으로 키울 것이고 한국이 화장품 산업의 선진국이 되는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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